[인터뷰] 한상엽 소풍 대표 파트너
투자 결정한 창업 팀에
여성 경영진 한 명도 없어 놀라
투자 생태계는 전적으로
남성들 세계
젠더 관점 담긴 투자 리포트 펴내

소셜 벤처 전문 임팩트 투자사인 소풍의 대표인 한상엽 대표는 공평한 투자 생태계를 만들기 위해 GLI(Gender Lens Investing) 리포트를 만들었다. 젠더의 렌즈로 투자를 바라보자는 의미다. ⓒ성혜련 사진작가
소셜 벤처 전문 임팩트 투자사인 소풍의 대표인 한상엽 대표는 공평한 투자 생태계를 만들기 위해 GLI(Gender Lens Investing) 리포트를 만들었다. 젠더의 렌즈로 투자를 바라보자는 의미다. ⓒ성혜련 사진작가

소셜 벤처(사회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설립한 기업) 전문 임팩트 투자(사회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는 기업 발굴 및 투자)를 해 기업의 성장을 목표로 하는 회사인 소풍(Sopoong)을 이끄는 한상엽(35) 대표 파트너는 2017년 여름 이상한 점을 한 가지 발견했다. 정기투자 회사 4팀을 뽑았는데 해당 팀 경영진에 여성이 단 한 명도 없었던 것이다. 당시 지원한 전체 팀의 20%가 여성 창업 팀이었다.

“투자를 통해 사회문제가 해결되길 바라는 건데 심사 과정 자체에서 문제가 있는 건 아닌지 생각하게 됐어요. 덕분에 투자 생태계에서 어떤 일이 일어났는지 보게 됐어요. 여성들이 투자 받기 어렵다는 걸 알게 됐어요.”

창업진흥원이 발표한 ’2015 창업기업 실태조사’를 보면 7년 미만의 창업 기업 가운데 여성이 설립한 기업은 38.4%이다. 벤처 캐피탈(위험성은 있지만 기대수익이 예상되는 사업에 투자하는 자금) 등의 투자를 이끌어낸 기업 가운데 남성 창업자는 90.6%였다. 반면 여성은 9.4%에 그쳤다. 스타트업 미디어 플래텀 분석에 따르면 2016년 투자를 받은 국내 스타트업은 244개다. 이 중 여성이 설립한 곳은 16곳에 그쳤다.

한 대표는 투자 쪽에서 벌어진 기울어진 운동장을 세워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렇게 해서 만든 것이 GLI(Gender Lens Investing) 리포트이다. 말 그대로 젠더의 시각에서 투자를 바라본다는 의미다. 투자를 결정하는 과정에서 여성 기업가의 대한 편견을 최소화하기 위한 항목을 담은 24쪽짜리 보고서다. ‘젠더 감수성 체크리스트’, ‘젠더 관점의 투자 프로세스’, ‘젠더 관점의 업무 환경 확인 질문’ 등이 담겨 있다.

보고서는 젠더 관점에 투자에 대해 “자본시장이 기울어진 운동장임을 자각하고 여성들에게 공평한 자본접근성을 제공하고 여성들의 삶에 유익한 영향을 주고자 하는 임팩트 투자다”라고 설명한다.

한상엽 소풍 대표가 여성신문과 인터뷰를 하고 있다. ⓒ성혜련 사진작가
한상엽 소풍 대표는 기업으로 사회문제를 해결하는 데 있어서 성(性)은 중요하지 않다고 말했다. ⓒ성혜련 사진작가

“여성 창업자들은 (남성들의) 편견을 피부로 느끼더라고요. 예를 들어서 투자 심사나 발표에서 어떤 투자사를 만났을 때 '남편이 돈을 잘 버나 봐요', '애는 누가 보나요?'라는 말을 들었다는 거예요. 그런 걸 보면서 사회적인 메시지가 필요하다고 느꼈어요. 그래서 ‘GLI 선언’을 하는 게 의미가 있을 거라고 생각 했어요“

한 대표가 GLI 리포트를 만든 이유는 투자 생태계에 공평한 환경을 만들기 위해서이기도 하지만 여성 창업자를 원하기도 하기 때문이다. 회사 전략인 셈이다. “여성 창업자들이 후속 투자 유치를 받는 경우가 높습니다. 다른 회사도 그렇습니다. 여성들이 남성보다 똑똑해서 그런 게 아닙니다. 여성들은 ‘유리천장’이라는 좁은 문을 뚫고 올라온 분들이에요. 역량이 좋을 수밖에 없는 거예요.”

소풍에서는 투자를 결정을 할 때 최소 1개 이상의 여성 대표 기업을 포함한다. 투자 과정에서는 심사 평가자들이 젠더 편향적인 발언을 하는지 점검하는 ‘젠더 관점 관찰자’가 참석한다. 심사를 마친 뒤에는 여성 창업자들에게 젠더 관점에서 불편함을 느꼈는지 피드백을 받는다. 결과는 달라졌다. 2018년 상반기 소풍의 투자 프로그램에 지원한 여성 창업 기업(남성 공동대표 포함)은 전체 30%로 2017년 하반기 19.2%보다 10% 포인트 이상 늘었다. “여성 창업자들이 조금 더 편안한 분위기가 될 수 있게 한다”는 것이 한 대표의 말이다.

하지만 여성 창업자를 우대하는 건 절대 아니라고 한 대표는 말했다. 한 대표는 “누군가는 차별이라고 말할 수도 있다. 하지만 (투자 쪽에) 여성이 너무 없다. 저희는 투자를 할 때 해당 회사 경영진에 여성이 없으면 다양성이 중요하다고 권고를 한다”고 했다.

그는 “반대로 (경영진에) 여성들만 있는 곳에는 남성이 필요하다고 권고한다. 다양성이 중요한 거다. 장기적인 관점에서 GLI 리포트는 모두를 위한 것이다. 성별 뿐 아니라 인종, 나이 등 차별적으로 사용될 수 있는 외부 변수들이 없어지길 바라는 거다”고 말했다.

대학교에서 경영학을 전공한 한 대표는 대학교 3학년 때부터 창업에 뛰어들었다. 그의 주변에는 여성 동료들이 많았다. 덕분에 젠더에 대한 편향적인 생각을 바로잡을 수 있는 기회를 여러 차례 접할 수 있었다. 한 행사에 가서는 “제가 청일점이네요”라는 발언을 했다가 여성동료들의 지적을 받기도 했다. “나중에 곰곰이 생각해보니 무의식적으로 남자와 여성을 구분하고 있는 거 아닌지 생각이 들더라고요.”

“(소셜 벤처) 창업은 사회 문제 해결을 하기 위해 하는 거예요. 문제 해결을 잘하는 사람이 하면 되는 거예요. 남성이냐, 여성이냐는 중요한 것이 아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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