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슬예나 한국교육방송공사(EBS) PD ⓒ차윤회 여성신문 사진작가 

“저에게 미지상(미래의 여성 지도자상)은 여성 PD로서 자신감을 더욱 갖게 된 계기가 됐습니다. 사실 여성으로서 콘텐츠를 만든다는 것에 대해서도 책임감을 느끼는 부분이 있었는데요. 이를테면 제가 여성 PD로서 사람들에게 메시지를 전하는 역할을 하며 여성 사회에 누가 되지 않게 잘 전달하고 있을까 하는 것이죠. 또 제가 큰 팀이든 작은 팀이든 제가 리더로서 역할 하는 부분과 후배 여성 PD들의 앞길을 잘 닦고 있는지에 대해 돌아보게 했습니다.”

EBS를 대표하는 두 마리의 펭귄이 있다. 하나는 어린이를 위한 펭귄 ‘뽀로로’이고, 다른 하나는 어른들을 위한 펭귄 ‘펭수’다. 이슬예나(34) 한국교육방송공사(EBS) PD는 EBS1 어린이 교양예능 프로그램 ‘자이언트 펭TV’의 연출을 맡고 있다. 펭수는 현재 유튜브에서 139만명의 구독자를 보유하고 있을 정도로 그 인기가 뜨겁다.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이슬예나 피디님 덕질 계정’이 생겼습니다.
“펭수와 관련된 게시물을 검색하다가 해당 계정의 존재를 알게 됐습니다. 보자마자 앞으로 저 스스로 행실을 바르게 하고 다녀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웃음) 자이언트 펭TV 못지않게 저도 주목받더라고요. 저희 프로그램은 리얼리티 예능이다 보니까 제작진이 등장할 수밖에 없는 포인트들이 있어서 많이들 알아봐 주시는 것 같아요. 저 또한 우연히 출연하게 됐는데 생각보다 유명해져서 놀라웠어요. 아마도 시청자분들께서 이제는 콘텐츠를 만드는 과정을 잘 알고 계시니까 그 배후의 제작진들에게도 관심을 가져주시는 것 같아요. ‘이 콘텐츠가 나오기까지 PD나 편집자들은 이렇게 구성 했겠구나’하는 생각들을 해주시는 것 같아서 감사하기도 하고요.”

-EBS 내 여성 PD 비율은 어떤가요. 여성 PD라서 남달리 겪었던 일이 있습니까?
“남성 PD들이 많긴 하지만 그래도 최근에는 ‘자이언트 펭TV의 PD가 여성이네?’하고 더 주목해주는 부분도 있더라고요. 무엇보다 많은 여성분들이 저를 응원해주고 콘텐츠로 인해 좋은 기운을 얻는다고 말해 주는 것으로 큰 힘을 얻어요. 그러나 힘든 점도 분명히 존재하죠. PD는 아무래도 많은 사람들과 만나서 스태프들과 어떠한 기획이나 연출을 설득해야 하는데 제가 지금보다도 연차가 어렸을 때는 제 스스로의 두려움인지 모르겠지만 어리고, 여성이라서 더 어려운 부분이 있었던 것 같아요. 소통하고 통솔하는 측면에서 어린 여성이 하는 말을 귀담아 주지 않을 때가 가끔 있었죠.”

이슬예나 한국교육방송공사(EBS) PD ⓒ여성신문
이슬예나 한국교육방송공사(EBS) PD가 11일 경기 고양시 EBS에서 여성신문과 인터뷰를 진행하고 있다. ⓒ차윤회 여성신문 사진작가

-펭수의 성별이 드러나지 않습니다.
“실제로 펭귄은 암수 구별이 어려워요. (웃음) 그래서 저는 그 부분이 마음에 들었어요. 젠더 같은 경우 사회에서 민감하게 다루는 것이 얼마 되지 않았잖아요. 제가 어렸을 때도 미디어에서 보이는 여성과 남성의 모습은 확실히 구분됐어요. 저도 그걸 자연스럽게 받아들이며 컸죠. 그런데 이 자연스러움을 깨고 싶었던 것도 사실입니다. 펭수가 다양한 현장에서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는 것이 콘텐츠의 핵심인데 여기에서 ‘펭수가 여성이냐 남성이냐’는 중요하지 않다고 생각했어요. 저희 제작진들도 콘텐츠를 제작할 때 성인지 감수성을 공유하며 기획을 하기 때문에 틀에 박힌 고정관념을 보여주고 싶지 않았습니다.”

-사람들이 ‘펭수’에 열광하는 이유는 무엇이라고 보시나요.
“‘자기 자신을 있는 그대로 사랑하고, 그렇게 살아갈 수 있게 용기를 주는 존재’입니다. 사실 자이언트 펭TV를 시작할 때 제작진 모두 가벼운 마음이었어요. (웃음) 저는 콘텐츠를 만들 때 너무 무겁지 않는 메시지를 전달하면서 시청자에게 자연스러운 웃음을 드리고 싶었거든요. 그래서인지 많은 시청자분들이 ‘지쳐 있었는데 펭수를 통해 힐링이 됐다’, ‘사회적 편견과 잣대에 휘둘리지 않는 펭수를 보며 용기를 얻는다’는 등의 피드백들을 주고 계세요. 저는 이런 분들에게 펭수가 오랜 친구가 되는 것이 소망입니다. 펭수의 인기가 가파르게 상승했기 때문에 양은 냄비처럼 열이 식기보다는 뚝배기처럼 오래도록 갔으면 좋겠어요. EBS나 저 또한 이러한 팬덤의 인기는 처음 겪는 부분이라 미숙한 점이 많은데 무엇보다 우리만의 색깔을 잃지 않아야 한다는 마음이에요.”

-자이언트 펭TV의 콘텐츠 아이디어는 어디서 나오나요?
콘텐츠 회의 자체가 엄숙하지 않고 편안한 분위기예요. 오히려 회의 시간 말고 함께 밥 먹고 차 마실 때 대화하면서 웃긴 코드가 많이 나와요. 개인적으로는 멍 때리다가 생각나거나 이전에 만들었던 콘텐츠의 댓글을 보면서 얻을 때가 많아요. 또 펭수 생각하다가 아이디어가 나올 때도 많고요. 

-자이언트 펭TV 연출 이전의 삶도 궁금합니다
“PD 시험을 준비하면서 ‘역시 나는 안 되는 건가’하는 생각을 할 때쯤 같이 공부하는 사람들이랑 서로 자기소개를 한 적이 있었어요. 저는 그때 순수한 마음으로 ‘사람들에게 위로와 감동을 주는 PD가 되고 싶어요’라고 했는데 듣기에 따라 제 자기소개가 와닿지 않았나 봐요. 어떤 구체적인 근거도 없고, 밑도 끝도 없이 말한 것이니까 지금 생각해보면 일리가 있긴 해요. (웃음) 그런데 저는 말 그대로의 의미였어요. 그것이 가장 중요한 가치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지금도 제가 연출한 콘텐츠에 녹아있는 것이 아닐까 싶어요.”

-앞으로의 계획은.
“저는 성격 자체가 미리 계획을 세우는 스타일이 아니에요. 지금도 하루하루가 정신없이 흘러가서 미래에 대한 자세한 고민을 하지는 못했어요. 우선은 자이언트 펭TV가 길게 갈 수 있도록 다져 놓는 작업이 필요한 것 같아요. 갑자기 사라지는 콘텐츠가 되지 않도록 하는 것이 첫 번째 목표입니다. 또 다른 목표는 펭수의 접점을 늘려나가는 것인데요. 기업이나 채널과의 콜라보를 하는 여러 가지 측면이 있겠지만 해외에도 진출해서 넷플릭스에 유통되는 기회가 있었으면 좋겠어요. (웃음) 저희끼리 농담처럼 하는 상상이지만 지금도 이렇게 꿈처럼 많은 분들에게 사랑받고 있잖아요. 지금보다 더 큰 관심을 받았을 때 허둥지둥하지 않고 저희 팬덤도 유지해가며 잘 대처하고 싶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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