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남] 여성 인권 분야 세계적 석학 캐서린 매키넌
한국 성착취 시장 ‘창조적’
성폭력은 자연스러운 발달 아냐
친밀성·상호성·존엄성 없는 성매매
‘섹스’도 ‘노동’도 될 수 없어
‘비동의간음죄’ 도입은 신중해야
“‘동의’만 강간죄 요건으로 두면
피해 여성에게 입증책임 묻게 돼”

한국 페미니스트, 세상 움직이는
‘나비효과’ 일으키는 나비
40년 여성운동의 동력은 여성…
주변 여성들 목소리 경청해야

캐서린 맥키넌 교수는 “미투 이후 어떤 변화가 일어날지 제게 묻지 말아달라. 지금 여기에서 벌어지고 있는 바로 그 일이 변화”라며 “미투 운동이라는 마술이 권력 특권 행위였던 성폭력을 끔찍하고 혐오스러운 수치로 바꿔놨다”고 말했다. ©한국여성인권진흥원
캐서린 맥키넌 교수는 “미투 이후 어떤 변화가 일어날지 제게 묻지 말아달라. 지금 여기에서 벌어지고 있는 바로 그 일이 변화”라며 “미투 운동이라는 마술이 권력 특권 행위였던 성폭력을 끔찍하고 혐오스러운 수치로 바꿔놨다”고 말했다. ©한국여성인권진흥원

 

“아주 놀라워요(amazing). 창조적인 포주 문화네요.”

여성 인권 분야 세계적 석학인 캐서린 매키넌(73) 미시간대 로스쿨 교수는 한국 ‘성매매 알선 후기사이트’에 대한 설명을 듣고는 한숨을 쉬고 이마를 짚었다. 1970년대에 성희롱이 사적 사건이 아닌 구조적 성차별임을 논증하며 성희롱의 법적 개념을 정립한 법학자이자 40여년간 성착취 문제를 다룬 현장연구자에게도 한국의 성착취 문화는 충격적인 듯 했다. 성매매 알선 후기 사이트에는 지역별·유형별 성매매 업소 광고부터 업소 예약, 불법촬영한 여성의 사진을 올려 외모·서비스를 품평하는 후기글까지 올라온다. 매키넌 교수는 “미국에서도 대학교 남학생들이 채팅방에서 동료 여학생들을 품평하며 순위를 매기는 일이 있었고, 백페이지닷컴 등 성매매 광고 사이트가 있었으나 한국처럼 남성들이 성매수 경험을 후기로 남기고 업소 여성을 품평해 순위를 매기는 것은 어디서도 보지 못했다”고 했다.

사법연수원 초청을 받아 4~8일 한국을 찾은 매키넌 교수는 방한 기간 내내 한국 여성단체 활동가와 당사자 활동가, 페미니스트들을 부지런히 만나 그들의 목소리에 귀 기울였다. 그가 성희롱 문제에 관심을 갖게 된 것은 40여년 전인 1970년대 예일대 로스쿨을 다니던 무렵, 코넬대 행정비서인 카미타 우드의 경험에 대해 알게 된 직후다. 우드는 상사의 성희롱으로 병원에 입원까지 했고 이 문제를 인사팀에 신고해 전근신청까지 했지만 거절 당해 직장을 그만둬야 했다. 당시 사회는 우드의 사직 사유(성희롱)를 단지 ‘개인적인 사정’이라고 보고 실업급여도 주지 않았다. 매키넌 교수는 우드의 상황을 통해 성희롱도 성차별이라는 생각이 가졌고 이후 『일하는 여성에 대한 성희롱(성적 괴롭힘): 성차별의 일례』를 펴냈다.

“여성들의 이야기를 들으며 40년 넘게 활동할 수 있었다”는 매키넌 교수는 한국의 페미니스트들에게도 “주변 여성들의 이야기는 물론이고, 그들이 하지 않는 이야기에도 귀 기울여보라”고 조언했다. 7일 성매매문제해결을위한전국연대 등 여성단체가 주관한 강연과 같은 날 열린 기자간담회 내용을 정리했다.

-한국은 첫 방문이다.

“제가 방문했던 어느 나라들보다 한국에서 가장 많은 ‘나비’를 만났다(맥키넌 교수는 작은 개입 행위가 장기적으로 근본적인 체제 변화를 만들어낼 수 있다는 취지에서 ‘나비 정치학’이라는 용어를 써왔다). 강한 한국 여성들의 미투 운동이 인상 깊었다. 한국은 물론 전 세계적으로 확산된 미투 운동은 성불평등한 조건 속에서는 성적 자유를 포함해 어떤 자유도 존재할 수 없다는 점을 드러냈다. 미투를 통해 피해자의 말에 귀 기울이려는 분위기도 자리잡았다. 과거에는 직장이나 학교에서 성폭력이 발생하면 피해자가 떠나야 했지만, 이제는 조직이 법에 호소하기 전에 먼저 내부에서 가해자를 징계하려 한다. 미투 이후 어떤 변화가 일어날지 제게 묻지 말아달라. 지금 여기에서 벌어지고 있는 바로 그 일이 변화이고 그 변화는 이미 와있다. 미투 운동이라는 마술이 권력 특권 행위였던 성폭력을 끔찍하고 혐오스러운 수치로 바꿔놨다. 상류층 백인 남성들도 수치스러운 가해 행위가 주변에 있으면 안된다고 판단할 정도다.”

캐서린 맥키넌 교수는 “미투 이후 어떤 변화가 일어날지 제게 묻지 말아달라. 지금 여기에서 벌어지고 있는 바로 그 일이 변화”라며 “미투 운동이라는 마술이 권력 특권 행위였던 성폭력을 끔찍하고 혐오스러운 수치로 바꿔놨다”고 말했다. ©여성신문
캐서린 맥키넌 교수. ©여성신문

 

-미투 운동 이후 성인지 관점을 반영한 판결이 늘었나.

“그렇다. 미국에서는 변호사들이 과거에는 성폭력 피해자의 형량 등 처벌 수위가 예측 가능했지만 지금은 예측 가능성이 떨어졌다고 말한다. 법원이 성폭력 사건에서 피해자가 성별 간 불평등을 포함해 위계질서 안에서 어떤 위치에 처해있는지 이해하는 것이 성인지 감수성이다. 성인지 감수성을 반영한 대표적인 사례가 코미디언 빌 코스비 성폭력 사건이다. 당초 법원은 피해자 한 명의 증언만 들었다. 당시 배심원들이 결정을 내리지 못하면서 코스비는 유죄 판결을 받지 않았다. 그러나 미투 운동 이후 비슷한 피해를 입은 여성 5명도 증언하도록 했다. 이들의 증언은 피해자 진술의 신빙성을 높여줬고 결국 코스비는 유죄 판결을 받을 수 있었다.”

-한국 여성단체는 강간죄 조항 개정 운동을 펼치고 있다. 강간죄 구성 요건을 ‘폭행 및 협박’ 대신 ‘동의’ 여부로 바꾸려고 한다.

“강간죄 구성요건을 ‘동의’로 바꾼다고 달라질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은 환상이다. 그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동의만을 요건으로 하면 결국 피해 여성이 ‘노(No)’ 했다고 증언해도, ‘동의하지 않은 것 맞느냐’고 의심한다. 입증할 책임도 여성이 떠맡게 된다. 그렇게 되면 결국 원점으로 돌아와 법원은 여성에게 ‘저항한 것이 맞느냐’고 묻게 된다. 댓가를 받은 것으로 여겨지면 합법적이라고 받아들여질 수도 있다. 오로지 ‘동의’만을 강간죄 구성요건에 넣은 영국의 경우, 신고 사건의 5.7%만이 유죄 확정 판결을 받았다. 젠더·빈곤·인종·계층 등 강간을 가능하게 하는 권력 불균형을 고려하는 법 체계가 필요하다.”

-일부에선 성매매를 ‘성노동’이라고 하거나 착취 대신 욕망하는 주체라고 표현하기도 한다. 또한 반성폭력, 반성매매, 반포르노그래피를 주장하면 ‘여성을 피해자화하는 것 아니냐’고 비판하기도 한다.

“사람들이 여성이 가진 권력이 많다고 생각하는 것에 항상 놀란다. 우리에게 여성을 피해자로 만들 권력있는 것처럼 말이다. ‘성노동’이라는 용어는 거짓말이다. (그런 표현이)인간의 존엄성이 아예 없는 상황에서 존엄성을 부여잡으려는 시도일 수 있다. 그러나 성매매에서 생존하기 위해서는 탈성매매가 이뤄져야 한다. 성매매 생존자들에 따르면 성매매는 친밀성과 상호성이 없기 때문에 성이 아니고, 생산성과 존엄성이 없기 때문에 노동도 아니다. 그래서 놀랍다. 성매매·인신매매 당사자, 생존자와 함께하는 우리가 그들을 피해자화한다니요. 그들을 사고 팔고 강간하고 폭행하는 그들이 피해자로 만드는 것이 아니고요?”

-폭력과 불법촬영 피해를 호소한 가수 구하라씨가 죽음에 이르렀다.

“포르노그래피든, 불법촬영이든 남성들이 ‘여성이 동의했다’고 전제한다. 구하라씨의 극단적인 선택은 촬영에 동의하지 않았다는 것을 표현한 것이 아닌가 생각이 든다. 거부하지 않은 영상 촬영이었다면 그는 왜 죽게 됐겠나.”

-성인 여성의 신체를 본뜬 성인용품 ‘리얼돌’의 수입이 허용돼 많은 여성들이 규제를 요구하고 있다.

“남성들이 마침내 ‘완벽한 여성’을 찾은 것이다. 리얼돌은 단순한 ‘섹스돌’과는 다르다. 누군가는 리얼돌이 성폭력을 감소시킬 것이라고 하지만 현실은 정반대다. 포르노에 대한 많은 연구에서 성폭력을 줄이는 ‘카타르시스 효과’는 없다고 밝히고 있다. 리얼돌은 죽어있을 수도 있는, 극단적으로 수동적인 여성과 성행위를 하는 훈련 도구다.”

-박능후 보건복지부 장관이 ‘성남 어린이집 성폭력 사건’에 대해 “발달과정에서 나타나는 자연스러운 모습일 수 있다”고 했는데.

“그 행위는 성적 침해이며 성폭력이 맞다. 분명한 것은 여자아이가 성적 침해를 당했다는 사실이다. 그 장관의 말은 여자 아이를 성적으로 학대하지 않고서는 정상적인 성인 남성으로 자라날 수 없다는 것인가. 이것이 어떻게 발달과정의 일부인가. 학대를 보통의 일인 것처럼 말해선 안 된다. 왜 많은 사람들이 ‘남성은 가해자로 태어난다’고 주장하는 것인지 모르겠다. 남성들은 폭력적인 성향을 갖고 태어나지 않는다. 그렇기 때문에 남자 아이가 왜 그런 행위를 하게 됐는지 조사해야 한다.”

-척박한 환경에서 40여년 간 여성인권 옹호활동을 유지할 수 있었던 원동력은.

“지금까지 활동을 하게 된 까닭은 여성들이 그렇게 해달라고 제게 말해줬기 때문이다. 여성들이 다른 사람들에게는 말하지 않던 자신들의 경험을 제게 말했고, 그 상황에서 제가 할 수 있는 것은 없었다. 그래서 성희롱 법이 탄생했고, 반포르노 조례가 만들어졌다. 보스니아 내전 성폭력을 제노사이드로 명명한 것도, 스웨덴 노르딕모델을 도입한 것도 마찬가지다. 여성들이 말하는 것을 기반으로 고민해서 나올 수 있었던 법제도들이다. 주변에 있는 여성들의 말에 귀를 기울여야 한다. 그들이 말하는 이야기에도, 말하지 않는 이야기에도 귀를 기울여야 한다. 제가 지금까지 수십년 동안 버틸 수 있었던 원동력은 피해자들과 이야기하고 귀 기울이는 것이다. 이 일을 하기 위해 필요한 힘은 생존자들 곁에서 나온다.”

*캐서린 매키넌

미국 커네티컷주 변호사이자 미시간대학 법학전문대학원 종신교수. 역사상 가장 많이 인용된 32인의 법학자 중 한 명이다. 국제법, 헌법, 법과 정치 사상과 법철학 전문가로 40여년 간 성평등·여성인권·여성폭력 문제에 천착해왔다. 특히 반포르노그래피 운동이 잘 알려져있다. 1980년대 포르노그래피 영화 ‘목구멍 깊숙이(Deep Throat)’에 출연한 린다 보어만이 촬영을 강요당한 사실이 드러나자 페미니스트 작가 앤드리아 드워킨과 함께 반포르노 법안의 초안을 작성했다. 당시 법안은 미니애폴리스와 인디애나폴리스에서 통과됐으나 결국 연방 차원에서 기각됐다. 주요 저서로는 『일하는 여성에 대한 성희롱(성적 괴롭힘): 성차별의 일례』(1979), 『페미니스트 국가론을 항하여』(1989), 『나비의 정치학』(2017) 등이 있다. 내년에는 40여년간 매키넌이 변호인으로 참여해 세상을 바꾼 사건들의 변론서면을 모은 『남성들의 법정 속 여성들의 삶: 변화를 부르는 변론(Women’s Lives in Men’s Courts)』이 출간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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