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하라 비보 이후 논란 된 재판부
범죄 피해 사진 기록부터
피해자 신상 유출까지
성인지 감수성 필요해

법원. ⓒ곽성경 여성신문 사진기자
법원. ⓒ곽성경 여성신문 사진기자

 

법원이 성범죄 2차 가해자 노릇을 한다는 비판이 높다. 사람들은 범죄 피해자의 보호에 적극적으로 나서야 할 사법부가 오히려 2차 가해에 나서는 일이 만연해 있다며 성 인지 감수성 있는 대책을 요구하고 있다. 가장 가까운 사례가 가수 구하라(28)씨와 헤어디자이너 최종범(28)씨 간의 재판 과정과 선고 때 법정에서 벌어진 일이다.

지난 8월, 서울중앙지법 형사20단독(오덕식 부장판사)는 재물 손괴, 상해, 협박, 강요, 불법 촬영 등의 혐의를 받는 최씨에 징역 1년 6개월에 집행유예 3년을 선고했다. 선고 당시 재판부는 재판에 관련 없는 20여 명의 일반인이 법정에 있음에도 불구하고 구씨와 최씨의 만남 계기, 동거 사실, 성관계 장소 및 횟수 등 판결문을 모두 낭독했다. 한 법조인은 “피고인이 강간 사건에서 무죄를 주장하기 위해 이전 관계에서의 성관계 여부를 언급해 판결 중 짧게 언급되는 경우가 가끔 있는데, 이번 사건은 맥락상 왜 언급이 되는 건지 이해를 할 수 없다”라고 의문을 표했다. 

해당 재판부는 재판 과정 중에도 “영상의 내용이 중요한 것으로 판단된다”며 최씨가 언론에 제보하려 했던 성관계 영상을 재판정에서 비공개로 확인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구씨 측 법률 대리인이 “2차 가해”라며 강하게 반발했으나 재판부는 법관 단독으로 해당 영상을 확인했다. 

우리사회의 성범죄에 관한 인식이 급격히 변했지만 사법부의 성인지 감수성은 과거에 머물러 있다. 지난 19일, 레깅스를 입은 여성의 뒷모습을 촬영한 혐의로 기소된 남성에 “레깅스는 ‘성적 수치심’을 주지 않는다”며 ‘무죄’를 선고해 논란이 일었던 당시 재판부도 여러차례 판결문에 불법촬영물을 실은 것이 알려져 파장이 일었다. 해당 재판부(의정부지법 고양지원 형사2단독 장원석 판사·형사1부 오원찬 재판장)는 화장품 가게와 여자화장실, 대중 교통 등에서 불법촬영 된 사진을 판결문의 범죄 일람표에 실었다. 해당 사건 판결문들은 법원 내부는 물론 대법원 도서관 판결문 검색 시스템을 이용해 일반인들도 열람할 수 있다. 이같은 사실이 알려지자 뒤늦게 대검찰청은 불법촬영 사진을 공소장과 불기소장에 첨부하지 말라고 일선청에 지시했다. 

지난해 11월 ‘해군 상관에 의한 성소수자 여군 성폭력 사건’을 판결한 고등군사법원의 가해자 A소령과 B대령에 대한 무죄 선고 이후 많은 언론은 판결의 부당함을 보도했다. 그러자 A소령은 언론사 10여 곳을 상대로 언론중재위원회에 정정보도와 각 5억여 원의 손해배상을 청구했고 피해자의 실명과 주민등록번호가 기재된 의무기록자료까지 첨부했다. A소령은 사실조회촉탁을 법원에 내 법원 명령으로 해당 의료기관에서 의무기록을 입수했다. 기관과 법원이 사실조회신청에 응할 의무가 없는 데도 A소령의 요청에 응함으로써 보호 받아야 할 성범죄 피해자 개인의 사적 정보를 유출해 2차 가해를 가한 셈이다.  

성폭력 피해자는 본인의 인적사항을 조서 등에 드러내지 않고 조사를 받을 권리가 있다. 성폭력범죄의 처벌등에 관한 특례법 제23조(제피해자, 신고인 등에 대한 보호조치)와 특정범죄신고자등보호법 제7조(인적사항의 기재 생략)에 따라 성범죄 피해자는 수사절차부터 판결에 이르기까지 실명과 거주지 주소 등을 모두 숨겨 보호받을 수 있다. 그러나 앞선 사례들은 어느 것도 피해에 대한 보상을 물을 길이 없다. 법원의 판단으로 내려진 결과들이기 때문이다.

판사 출신인 조현욱 변호사는 사실상 재판부에 의한 2차 가해에 대해서는 피해자가 구제받을 방법이 없다고 말했다. 그는 “판사는 객관적인 사실 정황을 확인해 유·무죄판단을 내릴 의무도 있기 때문에 사실상 범죄 증거의 확인 자체를 2차 가해로 판정할 수만은 없다”며 “그러나 분명한 것은 일부 법관들의 성인지 감수성이 부족하다는 사실”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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