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법촬영물 유포 협박 혐의
무죄 선고한 재판부 비판

걸그룹 카라의 구하라 씨를 폭행하고 불법 촬영한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전 남자친구 최종범씨가 7월 18일 오후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방법원에서 열린 2차 공판에 출석하기 위해 법정으로 들어서고 있다. ⓒ뉴시스·여성신문
걸그룹 카라의 구하라씨를 폭행하고 불법 촬영한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전 남자친구 최종범씨가 7월 18일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방법원에서 열린 2차 공판에 출석하기 위해 법정으로 들어서고 있다. 1심 재판부는 최씨에게 징역1년6개월 집행유예 3년을 선고했다. ⓒ뉴시스·여성신문

 

24일 가수 구하라(28)씨의 비보가 전해진 가운데 온라인에서는 “성범죄 양형기준을 재정비 하라”는 요구가 빗발치고 있다. 구씨가 전 애인 최종범(28)씨로부터 불법촬영물 유포 협박을 받으며 고통을 겪었으나 정작 최씨는 제대로된 처벌을 받지 않은 사실이 재조명되면서다.

트위터 등 사회관계망서비스(SNS)를 중심으로 구씨를 폭행하고 불법촬영물을 유포하겠다고 협박한 혐의로 소송을 벌인 전 애인 최씨의 1심 선고 내용이 다시 논란이 되고 있다.

지난 8월 29일 서울중앙지방법원 형사20단독(부장판사 오덕식)은 성폭력범죄 처벌 등에 관한 특례법 위반 및 협박 혐의로 기소된 최씨에게 징역 1년 6개월, 집행유예 3년을 선고했다. 최씨는 상해·협박·강요·재물손괴·성폭력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특례법 위반(카메라 촬영) 등 5개 혐의로 재판에 넘겨졌다. 재판부는 다른 혐의들은 모두 유죄로 판단하면서도 불법촬영 혐의에 대해서는 무죄로 판단했다.

오덕식 부장판사는 “피해자가 촬영된 사진을 보고도 성관계 동영상과 함께 삭제하지 않은 점과 피해자 또한 피의자의 사진을 촬영했던 당시 정황 등을 볼 때 명시적으로 촬영에 동의했다고는 할 수 없으나 피해자의 의사에 반해 찍은 것으로 보이지 않아 공소사실을 인정하기 어렵다”고 무죄 이유를 들었다.

오 부장판사는 “피고인은 피해자와 헤어지는 과정에서 피해자를 폭행해 상해를 입히고, 언론에 성관계 동영상을 제보해 연예인 생명을 끊겠다고 협박하는 등 범행을 저질렀다”며 “여성 연예인인 피해자가 극심한 정신적 고통을 받았을 것으로 보인다”고 밝혔다.

그러면서도 “피고인이 일부 범행을 시인하고 반성하고 있는 점, 피해자가 할퀸 상처에 화가 나 우발적으로 협박과 강요를 한 것으로 보이는 점을 고려해 양형했다”고 설명했다.

앞서 지난해 9월 최씨는 구씨와 다투는 과정에서 구씨를 폭행하고 “성관계 동영상을 유포하겠다”고 협박한 혐의로 불구속 기소됐다. 당시 최씨는 구씨에게 “연예인 인생 끝나게 해주겠다. 언론에 제보하겠다”고 알린 다음, 실제로 유명 연예매체에 제보 메일을 보냈다. 다만 관련 영상 등을 전송하지는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구씨에게는 과거 두 사람이 함께 찍은 사적인 영상을 전송한 것으로 조사됐다. 구씨는 최씨에게 영상을 전달받고는 엘리베이터에서 최씨 앞에 무릎을 꿇고 빌기까지 해야 했다.

최씨는 지난 9월 1심 판결에 불복하고 항소장을 제출했다. 항소심 기일은 아직 정해지지 않았다.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

 

구씨 사망 소식이 전해지자 SNS에서는 1심 판결 내용과 주심판사를 비롯해 자극적인 기사를 쏟아낸 언론과 기사와 구씨 SNS에 악성댓글을 단 누리꾼에 대한 비판이 쏟아지고 있다. 누리꾼들은 “최종범에게 집행유예 선고한 사법부도 공범이다”, “피해자 영상을 공개적으로 틀라고 했던 사법와 윤리보도 안 지킨 언론도 문제다”, “사건 당시 피해자 동영상을 실시간 검색어 1위로 만들던 파렴치한 남성들”, “구하라는 사회적 타살” 등의 글을 게재했다.

누리꾼들은 비판 글과 함께 지난 15일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 올라온 ‘가해자 중심적인 성범죄의 양형기준을 재정비해주세요’(http://me2.do/IG495EoW)라는 청원을 공유하고 있다.

해당 청원은 대학 선배에게 성폭력 피해를 입은 여성 A씨가 올린 글이다. A씨에 따르면 대학 선배 자취방에서 술에 취해 성폭행 미수 피해를 당했지만 강간미수가 아닌 강제추행으로 고소가 진행되고 해당 혐의에 대해서는 기소 유예 처분이 났다. A씨는 “우리나라의 성범죄 처벌은 아직도 가해자 중심적”이라며 “성범죄의 성립조건이 ‘비동의’가 아닌 ‘항거 불능할 정도로 폭행과 협박’으로 이를 피해자가 직접 증명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A씨는 이어 “‘호감이라서 감형’, ‘폭행과 협박이 없어서 무죄’, ‘그 후 피해자가 피해자답지 않아서 감형’ 등 이 모든 가해자 중심적 성범죄 양형기준의 재정비를 바란다”고 호소했다. 24일 오후 10시 기준 해당 청원에는 14만3229명이 참여했다.

청와대 국민청원 ‘가해자 중심적인 성범죄의 양형기준을 재정비해주세요’
https://www1.president.go.kr/petitions/5836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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