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알고 있는 북한은 같은 모습일까? 이 질문은 이미 답을 안고 있다. 우리가 이야기하는 북한은 다를 수 있으며, 북한은 하나가 아닌 복수의 모습으로 우리 안에 존재한다는 것이다. 서로 다른 세 개의 북한이 있다. 김일성의 북한, 김정일의 북한 그리고 김정은의 북한이 그것이다. 그러나 어떤 이들은(아마 대다수가) 지도자의 이름만 바뀌었을 뿐 다를 바가 없다고 반박할 것이다. 북한은 예나 지금이나 핵무기와 군사력을 앞세워 세계 평화를 위협하고 인권을 유린하고 공포정치를 자행하고 있는 독재국가나 전체주의국가일 뿐이라는 것이다. 정치체제라는 거시적 관점에서 보면 북한은 복수가 아닌 이런 모습의 단수로 존재한다. 그러나 정치체제가 아닌 북한에 사는 사람들의 입장에서 보면 북한은 단수가 아닌 복수이다. 1990년 중반 소위 고난의 행군이라는 경제위기에 의한 장마당의 등장은 북한주민들의 일상에 전환기적 변화를 초래하였다. 그 후 20년이 지난 김정은의 북한은 김일성-김정일의 북한과는 다른 북한의 모습이 되었다.

김정은의 북한에서 사람들은 성별에 따라서 다른 변화를 겪고 있다. 북한시장경제 종사자의 70%이상이 여성인 시장의 여성화현상이 그것이다. 시장의 여성화현상은 북한체제의 특수한 요인들에 기인한 불가피한 결과였다. 기혼여성만이 직장에 다니지 않아도 되었기 때문이며, 현재에도 만 45세 이상(지역에 따라 나이와 상관없이 기혼여성도 가능)의 기혼여성만이 시장에서 장사를 할 수 있다. 직장에 출근하지 않으면 단련대나 교화소에 보내지는 처벌을 받아야 한다. 북한에서 기업소나 직장은 생산단위이면서 사상교육과 주민통제가 이루어지는 정치단위이기 때문이다. 결과적으로 “남편은 사회주의경제, 아내는 시장경제”라는 성별 이중경제구조를 갖게 되었다.

김정은 시대의 북한 사람들의 생활방식은 좀 더 시장 지향적이게 될 것이다. 이는 김정은이 시장요소를 과감하게 도입하고 있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무엇보다도 새로운 주체의 성장과 그들의 시장에의 진입에 기인한다. 그것은 고난의 행군 전후에 태어나 지금의 40~50대와는 전혀 다른 경험, 즉 배급이 아닌 시장에서 성장한 장마당세대이다. 2015년 현재 29세 미만의 장마당세대가 북한전체 인구의 44%이고 10년 뒤엔 절반 이상을 차지하게 될 것이다. 장마당 세대는 부모들의 상업 활동을 어깨너머로 배운 것만이 아니라 이들 모두 장사나 밀수와 같은 상업 활동을 직접 경험하면서 성장했다. 장마당 세대의 기억 속에는 벗어나고 싶은 김정일의 북한만이 있을 뿐 부모세대처럼 돌아가고 싶은 김일성의 북한에 대한 경험이 없다. 장마당세대는 시장이 없는 북한사회를 더 이상 상상할 수 없게 되었다. 성인이 된 그들 앞에 놓여 있는 시장은 더 이상 20년 전 혹은 10년 전의 조야한 시장이 아니다. 여전히 통제와 단속이 따르고 자본주의문화와 사상에 대한 투쟁을 외치고 있지만 이들에게 시장은 이제 일상이 되었다.

가까운 개성이나 평양으로 장보러 가면 어떨까? 아예 정기적으로 보름에 한 번씩 열리는 ‘보름장’을 만들어 남북여성들이 일상을 교류할 수 있도록 하면 어떨까? 대북제재와 북미 간 비핵화협상의 결렬이후 난마처럼 꼬여있는 남북관계를 풀어줄 상상력이 필요한 시점이다. 북한에는 500여개에 달하는 시장(장마당)이 활발하게 운영되고 있어 시장사회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며, 특히 그 시장의 중심에 여성이 서있다. 여성은 소비자로서만이 아니라 생산자와 유통자로서, 다양한 형태로 시장과 연관되어 있다. 따라서 시장을 매개로 한 다양한 남북여성교류를 기획해볼 필요가 있다. 개성이나 평양 시장나들이와 같은 프로젝트는 소비자로서의 남한여성과 생산자(유통자)로서의 북한여성 혹은 그 역의 형태로 만날 수 있는 장을 제공하여 생활자로서의 남북여성들의 공감대를 형성할 수 있는 기회가 될 것이다. 평양 보름장에서 만나 ‘82년 김지영’을 주제로 이야기를 해보는 상상도 덧붙여 본다.

*외부 필자의 글은 본지 편집 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김은주 한국여성정치연구소 소장
김은주 한국여성정치연구소 소장

 

 

저작권자 © 여성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