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란 작가 리스트 참고했다”
인터넷 카페에 밝힌 T사
블랙리스트 존재 드러나

3년 전 김자연 성우가 올렸던 페미니즘 지지 티셔츠 사진. 해당 사진을 게시했다는 이유로 넥슨은 김자연 성우를 퇴출시켰고 사태를 규탄하고 김자연 성우를 지지했던 수많은 작가들이 게임 업계로부터 불이익을 겪었다. ⓒ김자연성우
3년 전 김자연 성우가 올렸던 페미니즘 지지 티셔츠 사진. 해당 사진을 게시했다는 이유로 넥슨은 김자연 성우를 퇴출시켰고 사태를 규탄하고 김자연 성우를 지지했던 수많은 작가들이 게임 업계로부터 불이익을 겪었다. ⓒ김자연성우

 

게임 업계의 페미니즘 ‘사상 검증이 사실로 드러났다. 모바일 게임을 제작하는 T사가 자사의 외주 일러스트 작가가 3년 전 페미니즘을 지지하는 글을 썼다는 이유로 사용 중이던 일러스트를 내렸다. 아울러 제작 단계에서 페미니즘 사상 검증을 위해 ‘리스트’를 참고했다고 밝혔다. 해당 리스트는 ‘메갈 작가 목록’ 등의 이름으로 인터넷 커뮤니티에 떠돌아다니는 것으로 취재결과 확인됐다. 

T사는 자체 운영하는 인터넷 카페에 “일러스트 외주 전에 사회적으로 논란의 여지가 있는 작가님들의 리스트를 먼저 찾고 그 작가님들을 제외하고 섭외를 하였는데 미처 이런 민감한 부분들에 대해 더 신중하지 못하고 선정이 된 점에 대해 대단히 죄송스러운 마음”이라고 게임 이용자들에게 사과했다. T스튜디오는 해당 작가의 일러스트를 전체 교체했다. 

T사는 외주 일러스트 작업을 맡은 작가 M씨가 개인 SNS에 페미니즘을 지지했다는 사실을 문제삼은 것으로 보인다. M씨는 3년 전 성우 김자연씨가 페미니즘 후원 티셔츠를 입었다가 게임업계에서 퇴출 된 이른바 ‘넥슨 사태’ 당시 SNS에 김자연씨를 지지하는 글을 한차례 올렸다. 16일 게임 유저들은 해당 글을 찾아내 카페에 거센 항의를 이어갔고 A스튜디오는 17일 오후 7시에 M씨에 계약 해지 및 일러스트 교체를 통보했다.

M씨는 “논란을 인지한 것은 17일 정오의 일인데 업체 측은 어떤 의견 확인도 없이 여론이 급하니 교체해야겠다며 해지를 통보했다”며 “이런 상황은 게임업계에서는 비일비재하기 때문에 놀랍지만은 않다. 향후 대책을 세우는 중”이라고 밝혔다. 

T사 관계자는 “사회적인 논란을 일으킨 작가들을 제외한 것은 사실이다. 리스트라는 잘못된 표현을 사용하긴 했지만 실제로 어떤 리스트가 있었던 것은 아니다”라며 “작가에게도 일방적으로 통보 하지 않았다. 논란 직후 입장 표명 의사를 물은 후 이를 거절하기에 공지 내용 방향까지 미리 알린 뒤 올렸는데 억울하다”고 말했다. 

게임 업계 내 페미니즘 사상검증은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페미니즘 ‘사상 검증’은 사측이 직무와 무관하게 노동자의 정치적 입장을 검열, 판별, 검증해 유무형의 불이익을 가하는 것으로 헌법에 명시된 ‘사상의 자유’를 침해하는 기본권을 침해하는 명백한 불법행위다. 그러나 이미 3년 전 넥슨 사태 직후 김자연 성우를 옹호하고 페미니즘을 지지하는 행보를 보인 숱한 작가들이 게임 업계에서 퇴출됐다. 국내 게임 업계 일러스트 작업을 전면 중단한지 2년 차가 되었다는 일러스트 작가 J씨는 “3년 전후로 게임업체와 계약을 할 때 개인 SNS 계정 아이디를 묻거나 공개하는 일이 잦았고 ‘‘메갈’하시는 거 아니죠?’라는 식의 질문도 받았다”며 “심지어 한 게임업체는 작업물 전송을 하고 한참 후 개인 SNS의 팔로잉 목록 중 페미니즘 계정 팔로우를 취소할 것을 요구했다”고 말했다. 또 다른 일러스트 작가 K씨 또한 유사한 증언을 했다. 그는 “SNS에 조금만 여성 인권 대한 글을 올리면 바로 논란이 일고 곧 외주 작업의 단절로 이어지다 보니 SNS를 작업물 올리는 용도 외에는 사용하지 않게 됐다”고 말했다. 이들은 국내 게임 업계에서 발길을 돌려 해외 시장을 개척하거나 기타 일러스트 작업만을 받는다고 증언했다. 

‘메갈 논란’에 대처하는 게임 업체의 속사정은 복잡하다. 게임 업계 관계자 L씨는 “이미 앞서 C모 게임이 페미니스트로 지목된 일러스트 작가를 감싸며 유저가 대거 빠져나가며 인기작에서 추락하고 S모 게임이 페미니스트로 지목된 일러스트를 바로 교체하며 유저가 대거 유입된 사례가 있었다”며 “특히 미소녀가 등장하는 남성 타깃 게임들은 앞선 사례를 유의미하게 보지 않을 수 없다. 어느 업체가 논란에 맞서고 싶겠는가”라고 말했다. 그는 “‘블랙리스트’가 없다는 것은 사실이기도 하고 거짓말이기도 하다. 넥슨 사태 당시 성우를 옹호한 일러스트 작가들은 모두 업계에서 계약을 꺼리는 것이 사실이고 해당 작가들의 목록은 인터넷에 이미 네티즌들에 의해 정리돼 떠돌고 있다”고 말했다. 실제로 포털 사이트에 검색 결과 ‘메갈 일러스트 작가’ 등의 이름으로 수십 명의 일러스트 작가와 웹툰 작가 등이 목록화돼 누구나 확인할 수 있었다.  

앞서 ‘사상 검증’ 논란을 일으키며 일러스트 작가를 교체한 T사의 대처는 득이 됐을까? 논란이 인 해당 게임은 16일 구글 플레이스토어 기준 86위였으나 18일 95위까지 추락했으며 20일 오전 10시 현재 99위까지 떨어졌다. 관계자에 의하면 18일 전일 대비 매출 또한 절반 이하로 추락했다. 일러스트 교체가 논란을 잠재우지 못 한 것이다. 

지난 10월 아이지에이웍스 모바일인덱스가 내놓은 ‘대한민국 모바일 게임 시장 분석’에 따르면 모바일 게임 사용자의 성별 구성은 남성 50.3%, 여성 49.7%이며 모든 연령대에서 유사한 비율을 보인다. 또한 성별에 따라 좋아하는 게임 장르가 다를 것이라는 고정관념과 달리 같은 연령대에서는 성별과 무관하게 동일한 장르의 게임을 선호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또다른 게임 업계 관계자 O씨는 “‘페미’ 논란이 일어서 교체 등을 하지 않으면 게임이 망할 수 있다고 이야기 하지만 반대로 교체를 하지 않고 정면으로 돌파해 오히려 순위권에 진입한 게임도 존재하는 것이 사실”이라며 “게임 업계는 굉장히 마초적이고 남성중심적이다. 나는 이번 사태의 제작사가 유저들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일러스트를 교체했다는 말을 믿지 않는다. 정말 ‘페미’를 거르고 싶었던 건 유저가 아닌 제작사였을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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