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존자의 목소리]⑨
이 추한 가해의 세계에서
자신을 사랑하는 일이,
내가 해야 하는 최선의 일

 

갑오년 첫 일출 ⓒ여성신문 DB
ⓒ여성신문

 

하루하루 지치고 주저앉고 싶은 일상 속에서 나를 위한 시간을 내는 일이 참 힘들었다. 항상 긴장된 몸, 피로로 누적된 상태에서 무언가 배운다는 에너지조차 내기 쉽지 않았다. 그렇게 일상은 늘 전쟁 같았다. 일상회복 프로젝트에 그림을 배우고 싶다는 지원서를 제출했다. 그림은 오랫동안 미뤄왔던 숙제 같은 것이기도 했고, 나에게 주고 싶은 선물 같은 것이기도 했다. 언어로 표현하기 힘든 이 마음들을 그림으로는 그릴 수 있지 않을까? 그런 희망이 내게는 있었다. 집 근처에 미술학원에 수강을 하고, 선생님의 첫 마디, “이렇게 지원해주는 곳이 있다니 정말 좋으시겠어요?” 그 말이 참 낯설었다. 정말 좋아서 기쁜 마음도 있었지만, 얼른 나를 회복해야 한다는 강박이 내 안에 있었구나, 마치 미션을 치러내듯이, 내가 그렇게 조급했구나 생각이 들었다. 피해자들에게 회복이란 무엇일까. 회복의 시간이란 어쩌면 죽을 때까지 이어지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첫 수업에서 선 하나를 긋고, 선과 선이 만나서 무수한 선들을 그었다. 선을 그으면서 딱딱해진 내 몸이 느껴졌다. 몸이 긴장하니 선들도 삐긋거리기 시작했다. 도형들을 그리고 명암을 넣고, 울퉁불퉁 안간힘을 쓰고 있었다. 그때 선생님이 지긋이 어깨를 누르시며 ‘제가 마무리 해볼 테니 잘 보세요’라고 말했다. 울퉁불퉁한 선들을 지우개로 누르고, 다시 슥슥슥, 선을 긋고 도형들을 제자리를 찾아 나갔다. 그 과정들을 선생님의 뒤에서 지켜보고 있는데 참 기분이 좋았다. 내가 잘 하지 못해도, 누군가 도와줄 사람이 있다는 것. 그런 걸 참 오랜만에 느껴봤다. 사건을 진행하고, 피해를 말하고, 대응계획들을 짜고. 늘 그렇게 나에게 선택과 결정이 돌아온다. 어떨 때는 도망치고 싶고, 어떨 때는 후회한다. 그럴 때 손을 내미는 사람들, 그 사람들에 온전히 기대고 싶은 마음이 들어도 그러지 못했다. 미안해서, 그리고 고마워서.

수업이 지날수록 온전히 집중할 수 있다는 것이 좋았다. 그림을 그리는 시간에는 오로지 내 앞에 있는 스케치북이 세상의 전부이다. 그림을 잘 그리지 못하지만, 그런 나를 탓하지 않아도 되는 마음이 생겼다. 그러니 그냥 이곳에서 그리고 있는 내가 꽤 괜찮은 사람이라고 생각이 되었다. 수업이 조금씩 진행될수록 나는 무엇을 그리고 싶을까 생각이 들었다. 내가 왜 그렇게 힘들고 아팠는지 좀 더 집중하고 싶었다. 말로 해버리면 아무것도 아닌 것이지만 그림으로 그리면 좀 더 은유적이고 감각적으로 공감할 수 있다. 마음이 가리키는 색깔, 밝음과 어둠, 크기와 시선. 어디에도 구애받고 싶지 않았다. 그리고 나면 엄청 속이 시원해질거 같아서

나는 오랫동안 예술을 해왔다. 주로 영상, 설치, 사진 작업을 위주로 하다 보니 그림은 잘 그리지 못한다. 예술을 계속하다 보면 어떤 기준에 갇히는 느낌이 있다. 이렇게 찍어야 하고, 포커스를 맞춰야 하고, 크게 뽑아야 하고. 내가 그림을 선택한 것은 그냥 잘 하지 못하니까, 잘 하지 않아도 되는 것. 나에게 어떤 기준도 없는 것이기 때문이다. 나를 위한 예술을 하고 싶었다.

얼마 전 서지현 검사님의 인터뷰 영상을 보았다. 그 말이 너무 마음에 와닿았다. “피해자들에게 용기를 내라고 말할 수 있을까요? 저는 할 수 없을 거 같아요. 그럼에도 무언가 피해자들에게 말을 해야 한다면, 자기 자신을 사랑하라고 말하고 싶어요” 나도 모르게 고개를 끄덕거렸고 눈물이 맺었다. 이 추한 가해의 세계에서 자신을 사랑하는 일이, 내가 해야 하는 최선의 일이기 때문이다.

그림을 그린다는 것, 나를 사랑하는 일이자 나를 위한 최선의 세계이다.

 

<여성신문은 한국성폭력상담소 <나눔터>를 통해 공개된 [생존자의 목소리]를 매주 전제합니다. 이 코너는 성폭력 피해자가 아닌 생존자로서 아픔과 치유 과정을 직접 쓴 에세이, 시 등 다양한 글을 전합니다.> (편집자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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