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존자의 목소리] ⑧ ‘지금’의 가영
[생존자의 목소리] ⑧ ‘지금’의 가영
  • 가영
  • 승인 2019.11.10 18:27
  • 수정 2019-11-10 18:2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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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들의 생존이 또 다른
생존자의 삶을 응원하고
지지하고 있다는 걸
잊지 말아주세요”
2004년에는 성폭력생존자말하기대회가 ‘그녀들의 목소리 세상을 울리다’라는 주제로 진행됐다. ⓒ한국성폭력상담소
2004년 열린 성폭력생존자말하기대회. ‘그녀들의 목소리 세상을 울리다’라는 주제로 열렸다. ⓒ한국성폭력상담소

 

안녕하세요. 저는 가영이라고 합니다. 지금 이 글을 쓰고 있는 중에는 대학원 종강 시즌에 맞춰 무척 바쁘고 정신없는 하루하루를 보내면서 가끔 넋을 놓기도 하는 시간인데요. 일상을 잘 꾸려서 한 절기를 마무리하는 심경이 복잡한 모양입니다.

누군가의 목소리가 내 목소리가 되어 돌아올 때 저 역시 치유라는 작업은 평생을 가야할 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자주 들어요. 여성으로부터 받았던 상처를 다시 회복시켜준 연대의 공간이기도 한 한국성폭력상담소에서 저도 언젠가는 제가 받았던 연대를 나눌 수 있는 기회가 한 번 쯤 찾아왔으면 하고 간절히 바라면서 살아왔어요. 또 언젠가는 좀 더 완성된(?) 모습의 상담사로서 여성들과 만남의 작업을 하고 싶었습니다. 감사하게도 저에게 그 벅찬 순간을 맞이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졌어요. 2019 성폭력 피해자 치유회복프로그램 ‘내 안의 나 만나기’의 보조진행자로 생존자들과 함께 할 수 있었답니다.

이 글을 쓰겠다고 마음먹었을 당시에는 무척 호기롭게 글을 시작할 수 있을 줄 알았지만, 막상 시작하니 생각보다 마음이 복잡했습니다. 즐겁고 화기애애한 시작과 마무리가 될 줄 알았건만, ‘생존’이라는 두 글자가 주는 무게는 생각보다 저를 넋 놓게 하기도 하고, 아프게 하기도 하더라구요. 컴퓨터 앞에 앉아 자판기의 타자를 이리저리 눌러보려 했지만 옴짝달싹 할 수가 없었어요. 그래서 고민했어요. 나는 치유가 잘 이루어진 회복자이고, 여성들을 지원할 수 있는 치유자로서 잘 가고 있는 것일까? 과연 그렇게 말하는데 ‘부끄러움’이 없을까 하고 말이에요. 그래서 괜히 이 작업을 시작한 건 아닐까? 내가 ‘생존자의 목소리’를 낼 수 있는 자격이 있는 걸까? 두려움이 일었어요.

다만 지금의 ‘가영’을 부정하고 싶지는 않았어요. 이 모든 것이 그냥 ‘나’이고, 그것을 받아들이자고 마음먹었어요. 그리고 솔직하자고요. 그렇게 다시 자리에 앉아 침착하고 솔직하게 나 자신을 들여다보고자 해요.

사실 우리는 누군가로부터(혹은 나로부터) 절망하고 도망치고 싶을 때에도, 나의 생존의 무게를 견디면서 타인을 돌봤던 또 다른 치유자였을 것이고 그건 여성연대의 모습이었을 거에요. 아니 그랬던 거죠. 그래서 생존자들이 자신의 생존의 무게를 감당하는 모습을 지켜보면서 저 스스로를 감히 ‘치유자’라고 쉽게 부르지 못하는 이유가 아닐까 생각해요.

치유회복프로그램에 함께 하면서 ‘제가 큰 역할을 했습니다. 짜잔~!!’같은 건 없었어요. 주 진행자와 상담소 활동가의 헌신하는 모습에 감탄하고, 무엇보다 생존자들 스스로가 서로에게 또 다른 치유자가 되어주는 모습을 곁에서 함께할 수 있다는 행복감이 또 한 스푼 더해져 저에게도 생존의 연대가 되더라고요.

성폭력과 관련된 피해 경험뿐만 아니라, 여성 가해자를 가해자로 인정하는 시간 동안 여성으로 인해 무너졌던 제 경험이 다시 여성들의 연대로 회복되는 과정을 지켜보면서 정말 감사했고, 이게 바로 ‘우리’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부족한 저에게 현실적인 어려움을 함께 하는 사건지원부터, 저를 치유의 길로 들어서게 해준 활동가들과 상담 선생님께 무척 감사한 마음이에요. 이번에는 ‘지원을 받는’ 위치가 아니라 ‘지원과 지지를 하는’ 위치에서 이제는 치유자로서 저 역시 한 걸음을 용기 있게 밟아보는 시도를 해 볼게요!

모두 연결되어 있음을 느껴요. 당신들의 생존이 또 다른 생존자의 삶을 응원하고 지지하고 있다는 걸 잊지 말아주세요. 거기에는 치유자의 한 걸음을 떼는 저 역시 포함되어 있고요. 언제까지나 이 연대는 제가 다음 걸음을 내딛을 수 있는 용기의 ‘부추김’이 될 거에요.

모두 나대고 부추겨요.

오늘도 일상 안에서 ‘하루’를 살고, 이것저것 치열한 고민을 하며 살아가는 당신들에게.

사랑해. 그리고 안녕:)

<여성신문은 한국성폭력상담소 <나눔터>를 통해 공개된 [생존자의 목소리]를 매주 전제합니다. 이 코너는 성폭력 피해자가 아닌 생존자로서 아픔과 치유 과정을 직접 쓴 에세이, 시 등 다양한 글을 전합니다.> (편집자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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