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임 강승수 부회장 내정

한샘은 최양하 회장이 스스로 회장직을 내려놓았다고 31일 밝혔다.ⓒ뉴시스

‘국내 최장수 CEO’ 최양하(70) 한샘 대표이사 사장이 31일 자로 경영일선에서 물러난다. 지난 1994년 대표이사 전무에 오른 지 25년 만에 조용한 용퇴를 택했다.

한샘은 최양하 회장이 스스로 회장직을 내려놓았다고 31일 밝혔다. 최 회장은 업무 공백을 최소화하기 위해 조용히 퇴임을 준비한 것으로 알려진다. 그는 다음달 1일 사내 월례조회에서 직원들에게 자신의 퇴임을 공식화할 계획이다.

1949년생으로 올해 만 70세를 맞은 최 회장은 국내 가구업계에서 한샘을 ‘매출 2조 클럽 가입’이라는 성과를 일군 경영자다. 1973년 설립된 한샘에서 40년을 근무해 25년간 CEO 재직 기록은 국내 500대 기업 중 유일하다. 최 회장이 CEO로 재직하는 동안 매출과 시가 총액이 각각 15배, 50배 늘었다.

최 회장은 1979년 서울대 금속공학과를 졸업한 뒤 대우중공업을 거쳐 1979년 한샘에 입사했다. 30세 최양하 대우중공업 대리는 사표를 던지고 연매출 1000억원에 불과한 싱크대 제조기업 한샘의 생산과장으로 입사 당시 주변에서 말렸다고 전해진다. 그는 중소기업을 국내 대기업으로 키워 꿈을 실현하기 위해 “사장이 되려고 간다”라고 말했다고 한다. 한샘에 그가 입사할 때만 해도 국내 가구는 부뚜막에서 밥을 짓는 형태였다. 이후 대규모 아파트 단지 개발이 붐을 이루며 현대식 부엌이 보급되기 시작했다.

최 회장은 입사한 지 15년 만인 45세에 한샘에서 대표이사에 올랐다. 조창걸 창업주가 그를 눈여겨보다 파격 발탁한 것. 최 회장은 위기 상황에서 업이 가는 방향을 미리 읽는 탁월한 경영자로 꼽힌다. 그는 ‘가구가 아니라 공간을 판다’는 한샘의 경영 방향을 제시하면서 이케아 진출에 대비했다.

CEO에 오른 지 3년 후 1999년 한샘은 본사와 공장, 수백개의 유통 채널과 수천여명의 시공요원을 전산으로 통합관리하는 전사적 자원관리를 도입했다. 당시 불가능하다고 보았던 ‘3일 납기 1일 시공’을 한샘에서 가장 먼저 달성한 데 그의 공이 컸다. 한샘이 대형 매장 확대, 전국적인 유통망, 브랜드 인지도 제고, 영업력 등을 갖춰 급속도로 성장했다.

이후 25년 간 1997년 외환위기,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2014년 ‘가구 공룡’ 이케아 상륙, 사내 성추문 사건, 중국 시장 진출 부진 등 크고 작은 굴곡을 거쳤지만 위기 순간마다 과감한 사업 확장 전략으로 맞대응했다.

하지만 최 회장은 지난해 사내 성폭행 및 은폐 사건이 불거져 큰 부침을 겪기도 했다. 한샘 신입 여직원이 사내에서 교육 담당자와 인사팀장 등 2명에게 성추행 및 성폭행을 당했고 한샘 본사 측이 이 사건을 지속해서 회유하며 은폐, 조작했다는 의혹이 나오면서 불매운동이 일어나는 등 거센 비난을 받았다. 신입 여직원은 지난해 커뮤니티에 글을 올려 “회사 동기가 화장실에서 몰래 카메라를 찍었으며 이를 해결하기 위해 말한 과정에서 회사 교육 담당자에게 성폭행을 당했다”며 “당시 인사팀장이 성폭생 사건 이후 가해자가 진심으로 좋아하고 있는 것 같다, 사람 인생 하나 망치려고 하느냐”며 거짓 진술서를 쓰라고 강요해 파문이 일었다.

최 회장은 지난해 주주총회에서 사내 성범죄 사건에 대해 “사회와 가치관이 변화했는데 회사가 제대로 대응하지 못했다”라고 공개 사과했다.

한샘은 2010년 최전성기를 맞았다. 2010년부터 2016년까지 한샘은 연평균 20% 매출 성장률을 기록했다. 하지만 최 회장의 경영에도 위기가 찾아왔다. 2017년 사내 성추문 사건이 발생해 회사 이미지에 치명타를 입었다. 거기다 한중 간 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사드) 갈드응로 중국 사업 부진이 이어지고 있다. 중국 사업의 부진을 어떻게 만회할지가 최우선 과제다.

이런 상황에서 최 회장이 용퇴를 결정한 것으로 보인다. 최 회장의 역할을 이어받아 전문경영인인 강승수 부회장이 신임 대표이사 회장으로 바통을 이어간다. 재무를 책임졌던 이영식 사장이 연말게 부회장으로 승진할 예정이다. 한샘은 조 명예회장이 1994년 경영 일선에서 물러난 후 전문경영인 체제를 유지하고 있다.

최 회장은 “한샘은 사실 성공 사례보다는 실패 사례가 많은 회사”라며 “우리가 겪은 시행착오를 한 번쯤 정리해 다른 이들에게 전수하는 것도 내 역할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한다”라고 말했다. 향후 그가 걸어갈 행보에 관심이 집중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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