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년째 사건을 다루다보니 이제는 특이한 사안보다는 엇비슷한 내용의 사례들을 훨씬 많이 접하게 된다. 최근 관여했던 여러 건들이 특히 그랬다. 당사자만 다를 뿐 내용이 대동소이하다. 남녀 두 사람이 술을 먹다보니 여성이 많이 취하게 되었다. 그러자 남성이 집에 데려다 주겠다면서 어디론가 데리고 가서는 간음을 한다. 여성이 뒤늦게 그 사실을 알게 됐을 때 남성이 보이는 반응도 비슷하다. ‘그때 여성은 만취해 있지 않았고 정상적으로 말도 다 하면서 자기 의사를 표현했어요! 내가 하자고 했을 때 좋다면서 그러자고 말도 했다니까!’

필자는 술을 좋아한다. 가끔씩 ‘정신줄’을 놓고 마시고 싶은 때는 필자도 ‘나’를 잊어버릴 때까지 마실 때도 없지 않다. 그런데 가끔 이런 경우가 있다. 분명히 어느 시점부터인가는 기억이 ‘안드로메다로 출장을’ 가버렸는데 나와 함께 마셨던 사람들은 ‘너 어제 멀쩡하게 집에도 잘 갔잖아? 어제 무슨 얘기했는지 진짜 기억이 없냐?’라고 의아해 하면서 물어올 때. 한 번은 누군가의 결혼식이 언제 어디서 있을 예정인지 술자리에서 필자에게 다 이야기를 해줬다고 하는데 필자는 그런 말을 들은 기억이 하나도 없었던 적도 있다. 이런 ‘지우개 속의 내 머리’ 같으니라고! 이렇듯, 술에 만취하여 ‘나’를 망각할 정도의 명정상태에 빠져 있는 동안에도 겉보기로는 멀쩡한 듯 보이는 상태가 분명히 있을 수 있다. 필자가 그 산 증인이다. (양심에 따라 선서를 거부하고 말씀드리건대 매일 이러는 것은 결코 아니다. 정말이다. 믿어주시라. 어쨌거나, 그래도 독자 여러분께서는 이러시면 안 됩니다.)

필자가 수년 전에 변론했던 어느 피고인의 이야기다. 후배 여직원을 포함한 몇 명이 회식을 했단다. 물론 술도 거나하게 몇 순배씩 마셨다고 했다. 회식을 마치고 집에 가자고 했는데 그 여직원이 세상만사 다 귀찮다는 듯이 가만히 앉아서 집에 가지 않고 있더란다. 때는 한겨울, 마침 이 피고인의 집이 그 회식자리 음식점에서 멀지 않았다. ‘당장에 집에 들어가기 싫으면 우리 집에 가서 몸이라도 좀 녹이고 갈래?’

공교롭게도 그 피고인의 집이 오래된 연립주택 같은 곳이어서 엘리베이터가 없었는데 무려 5층까지 걸어 올라가야 했단다. 변론요지서를 제출하기 전에 필자가 물었다. ‘솔직하게 말씀해 보세요. 여성이 이미 인사불성이 됐는데 등에 업고 올라간 건 아닌가요?’ 오히려 피고인이 눈을 동그랗게 뜨면서 필자에게 되물었다. ‘변호사님은 다 큰 성인을 5층까지 등에 업고 올라가 보신 적이 있으신가요? 업고 갈 상황이면 차라리 엘리베이터 있는 모텔에 가지, 제가 미쳤습니까?’ 곰곰이 생각해 보니 그 말에도 일리는 있었다. 심지어 그 피고인의 집에는 피고인의 모친과 누이도 함께 살고 있었고, 사건 당시에도 집 안에 같이 있었다고도 했다.

그리고 피고인은 결정적인 주장을 했다. ‘변호사님, 그때 그 친구는 집안까지 멀쩡하게 잘 걸어 들어갔고요. 그리고 물 한 잔 달라고 해서 먼저 방에 들여보내 놓고는 물 잔을 들고 방으로 따라 들어갔더니 혼자 옷을 벗고 있길래, 하고 싶냐고 제가 물어봤죠. 저는 그 대답을 듣고서 성행위를 했던 것뿐이에요. 그러고 나서는 지금에 와서는 하나도 기억이 없다고 얘기하고 있는 것뿐이라고요.’

‘술에 취해서 정신을 잃은 사람을 간음하려고 마음먹었다면 굳이 5층까지 끌고 올라가서, 그것도 모텔 같은 곳도 아니고 굳이 모친과 누이가 사는 자신의 집으로 데리고 갔을까? 피고인의 말에도 일견 수긍할 만한 점이 있어 보이는군.’ 이렇게 생각한 필자는 피고인의 주장을 토대로 변론을 했다. 결과는? 재판부는 변호인의 주장을 하나도 믿어주지 않았고 피고인은 구속됐다.

남성의 입장에서는 간혹 정말로 억울한 경우도 없지 않을 것이다. 신이 아닌 담에야 사람이 타인의 일을 사후적으로 재구성해서 평가하고 판단하는 데 어찌 완벽한 진실을 있었던 그대로 밝혀낼 수 있겠나. 사고와 행동을 스스로 제어하지 못할 정도로 상대방이 술을 많이 마셨던 줄은 미처 모른 경우도 세상에는 없지 않을 것이고, 그런 상태에서 그 상대방이 최소한 겉보기에는 멀쩡해 보이는 모습으로 대꾸와 반응을 하는 경우도 또한 없지 않을 것이다. 그러니, 정말로 남성의 입장에서는 상대방의 상태를 오인할 만한 나름의 사유가 있었던 것이라면? 참으로 어렵고도 복잡한 문제다. 필자도 이에 관해서는 아직 확고한 입장을 세우지 못했다.

그렇더라도 우리는 여기서 적어도 두 가지는 생각해 볼 수 있을 것이다. 기분 좋을 정도로 적당히 술을 몇 잔 마신 수준이 아니라, ‘부어라 마셔라’ 하는 상황에서 ‘죽자 살자’ 마시다 보면 사람은 당연히 술에 취할 수밖에 없다. 이렇듯 술을 상당히 많이 마셨음이 명백한 상태에서라면 그 동의를 표현했다는 것이 과연 그 사람의 진의라고 함부로 단정해도 좋을까? 그렇지는 않다는 점만큼은 모두가 수긍할 수 있을 것이다. 이처럼 상대방의 진의를 추단할 수 없을 때는 상대방이 확정적으로 동의한 것이 아닐 수 있다는 전제 하에서 상대방을 향한 행동에 좀 더 주의를 기울여야 함이 옳지 않을까.

한 가지 더. 위와 같이 상당량의 술을 이미 마신 상태였음에도 객관적으로 상대방이 동의를 한 것이라고 판단을 했던 것이라면, 동의가 실제로 있었음을 주장하는 쪽에서는 다음의 물음에 충분한 해명을 해야 마땅할 것이다. ‘상대방이 그렇게 멀쩡해 보이고 말도 다 하고 걸음도 정상적이었다고 했는데, 그러면 애초에 집에까지 데려다줘야겠다고 생각한 이유는 대체 뭔가요?’ 진실은 이 물음에 대한 대답 속에 숨어있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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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찬성 변호사. ⓒ본인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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