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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러스트·박향미>

나이는 숫자일 뿐 고정관념 벗어나야

나이듦 시기, 방법, 사람 따라 달라

나이가 들수록 자신도 모르게 ‘이 나이에…’ 라는 표현을 잘 쓰게 된다. “이 나이에 새로 시작하라고?” “이 나이에 어떻게 그런 일을…?” 등등. 이러한 표현은 우리가 앞으로 나아가는 것을 방해하며, 인생의 여러 가지 도전을 피하게 한다. 결국엔 스스로 만들어 놓은 연령제한에 가로막혀 꼼짝못하게 된다.

그러나 주변에 보면, 이 ‘이 나이에’를 과감히 넘어서는 사람들도 많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들은 나이에 관계없이 하고 싶은 일을 한다. 그리고 나이를 의식하지 않고 다양한 대인관계를 즐긴다. ㄱ선생님은 내가 만났던 남자노인 중에서 ‘이 나이에…’로부터 가장 자유로운 분이다.

ㄱ선생님을 가까이서 뵈면서 재미있었던 것은 이 분의 삶의 방식이다. 이 분은 모든 공직으로부터 은퇴하신 후에도, 본인의 고향을 위해 이런 저런 일을 하면서 혼자 지내시는 때가 많다. 서울에 살고 계시는 사모님은 한 달에 반은 내려오기로 “계약”이 되어 있는데, 실제로는 서울 생활을 더 선호하는 사모님이 “계약을 잘 지키지 않기 때문에” 혼자 계시는 시간이 많다고 한다. 이쯤 되면 보통의 한국 남자라면 왠지 초라해 보이거나 혹은 “내가 이 나이에 혼자 살란 말이냐?”라며 화라도 낼 법 하지만, ㄱ선생님은 그렇지 않다.

ㄱ선생님은 영화를 매우 좋아하시는데, 한 번은 좋은 영화를 보고 난 후, 혼자서 맥주를 곁들인 저녁을 들며, “이 정도면 더 할 나위 없이 만족스러운 생활이다. 행복한 사나이의 삶으로서 손색이 없다”라고 생각하셨다나. 우리의 보통 생각으로는 혼자, 그것도 그 연세의 남자 노인이 혼자 영화를 보는 것, 더욱이 혼자 저녁을 먹는 것이 다 을씨년스러울 지경인데, 더 할 나위 없이 만족스럽다니….

ㄱ선생님은 또 매우 친절하다. 내가 전혀 연고 없는 지방의 대학에 가게 되어 망설이고 있었을 때, 동생을 통해 우연히 알게 된 선생님은 “직접 브리핑해주겠다”며, 나의 집 가까운 곳까지 와서 여러 가지 친절한 설명을 아끼지 않으셨다.

자연스러운 귀결이겠지만, 이 분 주변에는 남녀노소를 막론하고 많은 사람들이 모인다. 그 뿐인가. ‘그 나이에도’ 그토록 일에 대한 열정과 책임감을 가질 수 있다는 것 자체가 후배인 우리들에게는 커다란 자극이 되지 않을 수 없다.

ㅈ씨는 30대 후반에 남편과 사별하고 혼자서 세 아들을 키워왔다. 그녀는 아이들을 열심히 키웠으며, 돈버는 일도 열심히 하고, 운동도 열심히 하는 등 자신을 위한 투자도 게을리 하지 않으면서 즐겁게 살아왔다. 그러나 막내아들이 군대에 가게 되자 갑자기 우울해지고, 아들들을 모두 결혼시킨 후에 무슨 일을 하며, 어떻게 즐겁게 살아가야 할지, 아이들에게 짐이나 되지 않을지 걱정이 되었다고 한다.

그녀는 이제 노후를 위해 또 한번 야무진 계획을 세우고 있다. 새로운 사업을 개발하기 위해서 한 1년 동안 외국에 나가서 공부를 하겠다는 것이다. 취미를 살릴 수 있는 일도 좋고, 새로운 기술을 배우는 것도 좋다고 했다. 생활비를 벌기 위해서 한국 유학생들을 상대로 하숙을 치든지 하겠다는 야무진 계획도 가지고 있었다.

쉰 살이 넘은 나이에 외국에 나가서 공부하겠다는 진취적인 아이디어도 놀라웠지만, 단 1년이라도 돈을 쓰기만 할 수는 없기 때문에 하숙을 치겠다는 그녀의 태도는 생활력 없는 나로 하여금 많은 것을 생각케 했다.

“그 나이에… 두렵지 않으세요?”라는 나의 물음에 돌아온 대답.

“이 나이가 어때서요? 오히려 이 나이니까 할 수 있지요. 사실 젊었을 때는 이것저것 생각해야 할 일이 많아서 정말 내가 하고 싶은 일을 하면서 살기는 힘들었거든요. 지금 생각해 보면 왜 그렇게 남의 눈을 의식하며 살았는지…이제야말로 자유로워진 느낌이에요. 세상에 두려울 것도 없구요.”

그렇다. 노화는 일면적인 현상이 아니라 개인적 요인과 심리적 요인, 그리고 환경적 요인간의 복잡한 상호작용에 의해 나타나는 다면적인 변화의 과정이다. 따라서 노인이 되는 시기는 개인적으로 차이가 있다. 아니, 구태여 학자들의 연구결과를 인용하지 않더라도 우리는 느낄 수 있다. 나이 듦의 시기와 방법이 사람에 따라 얼마나 다양한지.

나는 요즘 “이 나이에…”라는 단어를 사용하지 않으려고 의식적으로 노력한다. 나이는 숫자일 뿐. 절대연령, 혹은 달력연령에 나를 맡긴 채, 지레 “이 나이에…”라며 물러서서는 안될 것 같다. 그보다는 신체적 성숙이나 건강수준에 따른 생물학적 연령, 심리적 성숙과 적응에 따른 심리적 연령, 사회규범에 따른 사회적 연령, 그리고 스스로 느끼는 자각적 연령을 종합적으로 고려하여 자신만의 노령선을 그어보는 것이 필요하지 않을까. 그러면, 우리는 더 자주 “이 나이니까…할 수 있다”고 말하면서 활기찬 노후를 보낼 수 있을 것이다.

한혜경/ 호남대학교 사회복지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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