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정폭력 가해자가 쪼그라드는 환상이 보였어요”
“가정폭력 가해자가 쪼그라드는 환상이 보였어요”
  • 김서현 기자
  • 승인 2019.10.04 15:50
  • 수정 2019-10-04 15:5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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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여성의전화
문화공연 프로젝트 ‘마음대로,점프!’
춤을 통해 마음치유

끔찍한 폭력의 외상후스트레스로
옆사람 닿기만 해도 진저리
춤추며 공포, 감정 풀리고
‘우리는 서로의 용기’ 인정
가정폭력 피해 여성이 직접 만드는 문화공연 프로젝트 ‘마음대로, 점프!’의 팀원 귀보와 임작가가 주먹을 들어보이고 있다.
가정폭력 피해 여성이 직접 만드는 문화공연 프로젝트 ‘마음대로, 점프!’의 팀원 귀보와 임작가가 주먹을 들어보이고 있다. 공연에서는 얼굴을 공개했지만 이들은 아직 언론매체에 이름과 얼굴을 드러낼 결심까지는 서지 않았다고 한다.

2일 서울 강남구 압구정동 CGV 영화관에서 열린 제13회 여성인권영화제 개막식 무대에는 특별한 춤판이 펼쳐졌다. 가정폭력 피해 생존자 10여 명이 꾸린 ‘마음대로, 점프!’ 팀은 싱어송라이터 정민아의 즉석 연주곡 2곡과 합창곡 ‘그리고 이젠’에 맞춰 강렬한 춤사위로 세상을 향해 발걸음을 내디뎠다. 

‘마음대로, 점프!’는 지난 3월 한국여성의전화 쉼터에 들어온 여성들이 만든 프로젝트팀이다. 이날 자유롭고 힘찬 무대를 선보인 귀보(가명)와 임작가(가명)가 환한 미소로 자신들의 생존기를 말했다. 

“즐겁고 기분 좋은 일을 찾기 힘들다 보니 주말이라도 가서 기분 전환을 할 생각으로 춤을 추게 되었습니다.”(귀보) “쉼터가 너무 답답하니까, 벗어나고 싶어서 팀에 합류했습니다. 가정폭력을 피해 뛰쳐나온 뒤 혼자 산 기간이 길어 쉼터에 있는 게 힘들었어요.”(임작가) 이들 말처럼, 쉼터는 가정폭력에서 벗어날 수 있는 안전한 공간인 동시에 익숙하지 않은 집단생활로 스트레스를 주었다. 그렇게 ‘쉼터를 벗어나고 싶어서’ 시작한 6개월 동안의 ‘마음대로, 점프!’에서의 경험은 이들에게 놀라운 변화를 가져다 주었다. 

귀보는 목숨까지 위협받는 극도의 가정폭력을 경험했다. 남편이 목을 졸라 소변까지 지렸다. 그런 일이 수년 동안 수십 번 일어났다. “신기한 경험을 했어요. 남편에게 당한 가정폭력 경험 때문에 극도의 외상후스트레스장애(PTSD)로 몸이 굳어 있었는데, 어느 순간 몸이 펴지고 마음이 편안해졌어요.” 몸이 그렇게 편해지던 어느날 귀보는 환상을 봤다. “거대하기만 했던 가정폭력 가해자가 점점 작아졌어요. 그를 작은 상자에 넣어 가두고 땅에 묻었다가 불태워버리는 모습이 영화의 한 장면처럼 뚜렷하게 떠올랐습니다.” 춤을 추러 나와 몸을 움직이는 동안 뜀도 뛰어보고 이완해보기도 하는 동안 생각이 정리됐다. ‘마음대로, 점프!’ 활동을 통해서 지난날의 ‘나’를 발견했다. “다른 무언가를 선택했어도 괜찮았겠다는 생각을 많이 했어요.”

임작가도 자신이 달라졌음을 느꼈다. 쉼터에 있던 동안 몸이 굳어 움직이지 않는 듯한 기분을 느꼈던 그는 함께 생활하는 사람이 살짝 스치거나 조금만 닿아도 진저리를 쳤다. 스스로도 자신의 예민함에 놀랐다. 시부모와 함께 산 4년 동안 시아버지가 시어머니를 때리고, 시부모가 성인인 남편을 때리고 욕하고 그 남편이 또 자신을 때리는 폭력 속에서 살았다. 언어 폭력과 신체 폭력은 집안이 아니라 길거리에서까지, 임신기간에도 무참히 일어났다. 자신이 노력하면 된다고 믿으며 누구에게도 말하지 않은 채 견디는 동안 임작가의 마음은 병들었다. 그러나 ‘마음대로, 점프!’ 활동을 하는 동안 자유롭게 몸을 움직이고 다른 사람과 체온을 나누면서  감정이 풀렸다. 그 자신도 변했다. “모두 웃다가 누군가 갑자기 툭 울어요. 그럼 그게 공감이 됐어요. 내 이야기였어요. 굉장히 나 다울 수 있고, 대접받을 수 있는 공간이고 나누고 나눔 받는 시간이었어요. 쉼터로 돌아가도 그 맘이 이어졌어요. 하기 싫던 음식 당번도 오버해서 열심히 했어요. 그 맘이 전해져 쉼터의 분위기도 변했어요.” 

‘마음대로,점프!’는 지난 6월 한국여성의전화 후원의 밤에서 첫 무대를 선보였다. 이때 대부분의 사람들이 얼굴을 가렸지만 10월2일, 여성인권영화제에서는 두 사람을 제외한 모든 사람이 얼굴을 공개했다. ⓒ한국여성의전화
‘마음대로,점프!’는 지난 6월 한국여성의전화 후원의 밤에서 첫 무대를 선보였다. 이때 대부분의 사람들이 얼굴을 가렸지만 10월2일, 여성인권영화제에서는 두 사람을 제외한 모든 사람이 얼굴을 공개했다. ⓒ한국여성의전화

공연을 나흘 앞둔 지난달 28일, 마지막 연습이 있었다. 임작가는 그때 변화를 자신만 겪은 게 아니었음을 느꼈다. “공연 마지막에 가면을 벗어던지는 장면이 있어요. 가면을 벗기로 한 사람만 벗으면 되는 연출이었습니다. 지난 6월 한국여성의전화 후원의밤 행사에서 짧게 공연할 때 대부분이 가면을 안 벗었어요. 그런데 이번에는 대부분이 얼굴을 내놓겠다며 가면을 벗어 던졌어요.” 그 때 임작가는 ‘우리는 서로의 용기’라는 말이 너무 와닿았다고 말했다. 그러나 아직 마음 한 구석 두려움이 남아있다. 공연에서의 얼굴은 공개를 결심했지만 언론매체에까지 이름과 얼굴을 공개하기에는 아직 마음의 준비가 덜 되었다고 한다.  

‘마음대로, 점프!’의 공식 활동은 2일 공연으로 모두 끝났다. 그러나 귀보, 임작가 등 이번 프로젝트에 참가한 10명은 “이대로 끝나기에는 아쉽다”고 입을 모은다. 서로가 서로에게 용기가 되고 힘이 되는 동안 탑처럼 거대하던 가해자가 작아지고 자신이 커지는 것을 느꼈기 때문이다. 프로젝트를 운영한 한국여성의전화는 지금의 만남과 활동을 계속 이어나갈 방법을 찾고 있다. 

임작가와 귀보는 가정폭력 생존자로서 다른 피해자들을 위한 경험을 전하고 싶다고 말한다. 특히 가정폭력을 대하는 경찰의 태도에 대해 할 말이 많다. 귀보는 “경찰을 믿지 말라”고 말한다. 귀보는 죽을 뻔한 위기에서 간신히 도망쳐 경찰에 신고했지만 신고했던 내용이 고스란히 가해자에게 전해져 더 큰 폭력으로 돌아왔다. 임작가도 경찰에 신고한 뒤 그날로 가해자가 있는 집에 돌아가야 했다. 두 사람은 입 모아 쉼터의 중요성을 말했다. “신고했을 때 쉼터에 대해 안내받았다면 좋았을 텐데라는 생각을 많이 했어요. 쉼터에 와서야 새로운 살길을 생각해볼 수 있었거든요.” 경찰청 통계에 따르면 2018년 112에 신고된 가정폭력 신고건수는 24만8660건이다. 이중 입건 처리된 건수는 4만1720건에 불과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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