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토킹‧지나친 통제 나타나

‘우발’ 주장하지만
대부분 계획살인

ⓒ픽사베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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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홧김에 죽였다” “싸우다가 우발적으로” 아내나 연인을 살해한 남성 가해자가 살해 동기로 하는 말들이다. 그러나 남성들이 친밀한 관계의 여성을 살해하는 과정에서 계획과 전조 현상이 있다는 연구결과가 최근 영국에서 나왔다.

영국의 제인 몽크톤 스미스 범죄학 박사는 영국에서 벌어진 살인 사건 372건을 연구한 결과 연인에게 피살된 이의 80% 이상이 여성이었다. 이들 사건 대부분 가해자는 남성이었다.

1. 본격적으로 연인 관계가 되기 전, 가해자에 의한 스토킹이나 괴롭힘

2. 연애가 진지한 관계로 빠르게 발전함

3. 강압적인 통제. 두 사람의 관계를 강압적인 통제가 장악

4. 상황 발생. 연애가 끝나거나 가해자가 금전적으로 어려워지는 등 가해자가 피해자를 통제하기 힘들어지는 상황 발생

5. 갈등 고조. 스토킹이나 자살 협박 등 통제하려는 수법이 다양해지고 빈도가 증가

6. 생각 변화. 가해자가 복수나 살인 등을 실행에 옮기기로 결심

7. 계획. 가해자가 살인에 쓸 도구를 구입하거나 희생자가 혼자 있는 기회를 엿봄

8. 살인. 연인을 살인. 이 과정에서 희생자의 아이나 다른 이들도 피해를 입음.

스미스 박사는 연인을 통제하려고 드는 행동이 살인으로 이어질 가능성을 보여주는 중요한 지표가 될 수 있다고 밝혔다. 특히 살인을 설명할 때 격정의 범죄나 갑작스러운 분노 등의 표현을 사용했지만 이는 사실과 다르다는 것이다. 그는 “실제 사례들을 살펴보면 계획하고 결심하는 단계가 있다”며 “그리고 항상 강압적으로 상대방을 통제하려는 행동이 있었다”고 말했다.

이와 관련 국내에서는 남성 범죄자가 살해동기를 우발적이라고 응답하는 비율이 높았다. 경찰청에 따르면 전체범죄와 살인범죄의 범행동기에서 ‘우발적’이라고 한 응답한 비율은 30.8%로 가장 높은 비중을 차지했다. 다만 피해자가 남성인지 여성인지 명확히 구분된 수치는 아니다. 그러나 경찰청 범죄통계에 따르면 2011년부터 2016년까지 검거한 살인범죄(기수)의 범죄자 성별을 살펴봤을 때 남성이 약 80%였다.

또한 우리나라는 친밀한 관계에서의 폭력(intimate partner violence, IPV)이 외국에 비해 상대적으로 조금 더 비율이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2017년 한 해 동안 살인범죄로 사망한 피해자 10명 중 3명이 남편이나 애인 등 ‘친밀한 관계’의 남성에게 살해된 여성이라는 조사 결과도 있었다. 한국여성의전화가 1년간 언론에 보도된 살인범죄사건을 분석한 결과 남편이나 애인 등 친밀한 관계인 남성에게 목숨을 잃은 여성은 최소 85명이다.

성폭력 사건에서도 주로 가해자 남성보다 체격이 작은 여성들이 타깃이 되는데 이 또한 계획의 일종이라는 주장도 있다. 조은희 한국성폭력상담소 활동가는 “성폭력 사건에서 남성의 주체할 수 없는 성욕 때문이라고 하지만 피해자를 저마다의 기준에서 고르기도 한다”고 했다. 그러면서 “피해자의 체구나 성향 등을 고려하기도 하고 피해가 있을 시 자기주장을 뚜렷하게 할 것 같은 사람은 쉽게 건드리지 못하는 경향이 있다”며 “살인도 이와 유사하지 않을까 싶다. 남성들도 대상에 따라 살해를 계획하고 선택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반면 여성의 살인은 비교적 계획적이다. 남성이 술에 취해 잠든 상태이거나 약물을 사용하기도 한다. 이에 대해 허민숙 입법조사처 조사관은 “체력적으로 여성이 남성과 직접 맞서 싸우기 어렵기 때문에 ‘취약한 상황’을 만드는 것이다. 맞서 싸우다 살해에 실패했을 때 보복 폭력을 당할 것을 더 위험한 상황으로 인식하기 때문이다. 또 남성의 정당방위권이 될 확률이 높다”고 밝혔다.

그러나 무조건 남성만 우발적이라고 할 수는 없다는 견해도 있다. 이수정 경기대 범죄심리학 교수는 “(우발적 살인과 계획적 살인을) 형사절차에서 어떤 형태로 반영돼야 하는지는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라며 “그러나 20여 년 동안 많은 것들이 변화했고 다양한 판결이 나왔기 때문에 남성만 우발성으로 감형 받는다고 획일화할 수 없다. 경우에 따라서는 살인죄를 적용하는 케이스도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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