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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씨족총연합회는 지난 20일 오전 느티나무까페에서 호주제 폐지를 반대하는 ‘한국문화와 가족제도해제정책에 대한 선언문’을 발표하는 기자회견을 가졌다. 사진이 참가자들이 향후 일정에 대해 논의 하고 있는 장면. <사진·민원기 기자>

지은희 여성부장관이 지난 12일 호주 승계순위·혼인여성 입적 폐지를 골자로 한 호주제 폐지안을 발표한 데 이어 여성부 등이 포함된 ‘호주제폐지특별기획단’이 본격활동을 개시하는 등 호주제 폐지 작업이 급물살을 타고 있다.

그러나 법개정을 둘러싼 관계부처간 이견과 일부 단체의 반대운동 등으로 낙관만 할 수는 없는 판국이다. 호주제 폐지를 둘러싼 쟁점과 논란을 살펴본다.

쟁점① 관계부처간 이견

여성부가 아버지 성 강제조항을 삭제, 부모의 성을 자유롭게 선택할 수 있도록 하자는 의견을 내놓은 반면, 법무부는 호주 승계 순위와 혼인한 여성이 남편 호적에 입적해야 하는 규정, 아버지 성 강제 조항 등에 대해서 현실적으로 어렵다는 이유를 들어 ‘검토하겠다’는 태도다.

호주제폐지특별기획단 국민참여분과 남윤인순 공동분과장은 “민법개정안과 호적개편방안을 동시에 진행하기에는 물리적으로 시간적으로 어렵다는 결론을 내렸다”며 “호주제 폐지가 된 후 기존 호적을 개인별신분등록부, 가족부 등 대체 방안을 마련할 것”이라고 밝혔다.

특별기획단 법제정비분과 한 관계자는 부성강제조항 삭제여부 논란에 대해 “부성 강제조항을 삭제하는 것에 대해서는 공식적으로 입장을 밝힌 바 없다”며 “호주제가 남녀차별적이라는 것에 동의하기 때문에 호주제는 폐지돼야 한다는 입장이지만 부성강제 조항 폐지에 대해서는 다각적인 검토를 하겠다”고 말했다.

남윤인순 분과장은 법무부에서 자체 민법개정특별위를 구성, 호주제 폐지 등 다른 민법 관련 사항도 논의할 것이라며 폐지를 전제로 한 호적개편방안을 논의할 것이라고 밝혔다. 또한 대법원에서 이미 호적이 전산화됐기 때문에 개인별신분등록부, 가족부 등 대처방안만 정해지면 수월할 것으로 본다며 호주제 폐지 후 발의할 계획이라고 전했다.

쟁점② 유림의 저항

성균관 유림과 각 종친회 등으로 이뤄진 ‘정통가족제도수호 범국민연합’은 20일 호주제 폐지 반대 1000만명 서명운동에 돌입하고 여성부 차관과 면담에 나서는 등 거세게 반발하고 있다. 이들은 기자회견을 통해 “호주제 폐지를 주장하는 단체들의 논리는 한국문화의 바탕인 가정과 가족을 해체하는 것”이라며 23일 1000만명 서명 발대식을 시작으로 호주제 폐지를 저지하겠다고 벼르고 있다.

여성단체들은 이처럼 일부 단체가 ‘가족이 해체될 것’이라고 주장하는 것에 대해 “호적과 족보를 구별한다면 오해를 불식시킬 수 있을 것”이라고 지적하고 있다. 특별기획단 국민참여분과 박소현 공동분과장은 “현 호적제도는 민법상 호주를 내세우고 개인의 출생·혼인·사망 등 신분 변동사항을 기록한 공문서일 뿐”이라며 “족보는 문중의 가계를 기록한 사적인 기록부로 호적과 별개”라고 말했다. 신분에 관한 기록방식이 바뀜으로 가족이 해체된다고 주장하는 것은 어불성설이라는 것이다.

남윤인순 분과장은 “일부 단체의 반발에 대해서는 문화관광부 등에서 설득작업을 해 나갈 것”이라며 “호주제폐지특별기획단은 각 분야에서 폐지를 전제로 한 집행역할을 맡은 만큼 이에 집중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쟁점③ 호주제 폐지=가족해체?

현행법은 호주가 사망하면 아들-미혼인 딸-처-어머니-며느리 순으로 호주승계 순위를 규정하고 있다. 호주제 폐지를 주장하는 단체들은 아들을 1순위로 두는 이 제도가 아들이 딸보다 더 중요하다는 법감정을 품고 있어 남성이 여성에 우선한다거나 아들을 낳아서 ‘대를 이어야’한다는 남아선호사상과 가부장제 이데올로기를 부추기고 있다고 말한다.

현행법상으로는 자녀의 성과 본은 원칙적으로 아버지를 따르도록 돼 있어(민법 제781조) 자녀의 성 결정에 있어 여성의 권리를 차별하고 있으며, 이는 국제협약의 기준에도 미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여성과 자녀는 남편호적에 입적하도록 강제함으로써 부가에 입적하는 것을 당연시 여기는 풍조를 만들어내고, 모가에 입적한 자녀에 대해 차별의식을 불러일으킨다는 것. 또한 남편의 자녀를 데리고 재혼을 하게 될 경우도 자녀의 성씨 호적을 재혼한 남편의 것으로 변경할 수 없어 새 호주제가 아버지와 다른 성씨를 가져야만 하는 자녀들에게 혼란감을 가중시키고 있다는 것도 호주제를 폐지해야 하는 당위성을 높이고 있다.

호주제폐지운동본부는 이는 부계혈통을 우선하고 상대적으로 모계혈통을 무시하는 여성차별조항의 가장 핵심적인 조항으로 부계혈통만을 인정하도록 법적으로 강제하는 나라는 한국이 유일하다고 강조한다.

쟁점④ 호적 대안

여성부는 ‘부계 성 강제 조항’을 폐지할 것을 주장하는 반면, 법무부는 호주제는 폐지하되 부계 성 강제 조항을 없애는 데는 신중한 태도를 보이고 있다. 부계 성 강제 조항이 폐지되면 자녀의 성은 부모의 협의에 의해 아버지 혹은 어머니의 성을 따를 수 있다. 부모가 협의할 수 없거나 협의가 이뤄지지 않는 경우에는 아버지 혹은 어머니의 청구에 의해 가정법원이 정하게 된다.

호주제폐지운동본부와 호주제폐지특별기획단 국민참여분과는 호주제도가 폐지될 경우 호적의 편제기준과 편제범위를 새로 정해야 한다고 말하고 있다. 현재 정부와 시민단체 등에서 논의되고 있는 안은 ‘개인별신분등록제’와 ‘주민등록제도 수정·보완안’, ‘가족부’등 크게 세 가지.

‘가족부’는 부부와 미혼 자녀를 기본 단위로 해 부부의 성명을 모두 기재하고 새로운 신분등록부를 만드는 것이다. 남편과 아내 둘 중 한 명이 협의하에 가족 대표가 된다. 이혼할 경우 부부의 기록이 나뉘고 미성년인 자녀는 친권자로 지정된 부모와 호적을 함께 한다.

‘주민등록 수정·보완안’은 호적과 주민등록으로 이중 기록하던 제도를 하나로 통합하는 방안이다. 호적을 폐지하고 주민등록제도를 보완해 신분등록제도로 활용하는 것. 이는 신분사항란에 결혼 등 본인의 변동사항을 기록하며 호적의 편제 단위를 부부와 미혼 자녀로 하는 방안이다.

‘개인별신분등록부’는 개인의 출생 이후 모든 신분변동 사안을 개인 중심으로 기록하는 제도이다. 개인의 성명과 주민등록번호로 검색이 가능하고, 본인을 중심으로 생부·생모와 배우자 및 자녀, 결혼·이혼·재혼 등의 사실을 알 수 있다.

나신아령 기자arshin@women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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