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주제 폐지 팔 걷어부친 법무부

“호주제는 남녀차별적 제도로 양성평등 사회의 걸림돌이 된다는 것이 호주제폐지의 근본 이유다. 열린 자세로 모든 방안을 검토하겠다.”

법무부가 달라졌나. 호주제특별기획단에 참석한 법무부 관계자들은 빠른 시일 안에 호주제를 폐지하기 위해 노력하겠다고 공언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동안 유림의 반대 등 국민감정을 이유로 차일피일 미뤄왔던 태도에 변화가 일고 있는 것.

그동안 법무부 호주제 관련 담당자들은 여성계의 믿음을 얻지 못했던 게 사실이다. 대통령 공약이었던 호주제 연내 폐지가 지난 2월 사회적 이슈로 떠오르면서 정부개정안 마련에 대한 여성계의 기대가 컸다. 하지만 정작 정부안을 만들어야 할 법무부에서 이렇다 할 움직임이 없었다.

호주제폐지를위한시민의모임 고은광순 운영위원은 당시 호주제 폐지에 대한 법무부 계획을 물었지만 “정부안은커녕 호주제 폐지의 필요성조차 인식하지 못하는 전 법무부 법무심의관실 호주제 담당 검사의 답변을 들어야 했다”고 전했다.

법무심의관실 담당 검사가 고은 위원과 전화통화에서 “호주제폐지가 결정 나면 대책을 세울 것이고 법무부는 폐지가 시기상조라는 의견을 낸 바 있다”며 “호주제의 폐해라고 주장하는 여자아이 낙태는 그 엄마의 잘못으로 여성단체는 그들에 대한 의식계몽이나 할 일이다”고 말했다는 것.

신임 강금실 법무부 장관이 호주제 폐지 뜻을 밝히면서 상황은 바뀌었다. 물의를 일으켰던 전 법무심의관이 자리를 옮겼고, 여성계는 법무심의관실 후임자가 더 개혁적이고 양성평등한 의식을 갖고 있기를 기대했다.

그러나 새 심의관은 지난달 22일 국회 간담회에서 “현행 호주제는 공시방법으로는 최적의 기능을 갖는다”, “전통적 관념에서 보면 성을 바꾸는 것은 치욕스럽게 생각되는 것이며 아버지 성을 따르지 않는 어린이는 후에 고통 받을 수도 있다”, “호주제는 현실적으로 구체적인 피해사례를 만들지 않는다” 는 말을 해 여성계의 기대를 저버렸다.

지난 16일 호주제폐지특별기획단 첫 회의에서 법무부를 비롯한 정부부처와 여성단체 관계자들이 만났다. 이날 여성단체들은 민법개정안 마련의 실무를 담당하는 법제정비분과에 가정법률상담소 등 단체의 참여를 요구했다. 시기상조를 주장해 온 법무부 담당자들이 주도하는 법제정비분과에 여성단체가 목소리를 내기 위한 것.

법무부가 호주제폐지특별기획단에 참여한 만큼 여론을 귀담아 들으라는 지적이다. 고은 위원은 “법무부는 시기상조론을 과감히 떨쳐내고 참여정부에서 기획단이 만들어진 의의와 양성평등에 대해 고민했으면 한다”며 “법무부는 양성평등 마인드가 부족하다는 불안감을 불식시킬, 제대로 된 개혁적인 활동을 보여주길 바란다”고 말했다.

김선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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