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인연령 높아지며
‘성차별 명절’ 거부 커져
함께 일하고 함께 즐기는
‘평등 명절’ 실현 늘어

며느라기의 한 장면. 남성들은 고스톱을 치고 있지만 여성들은 음식 장만에 여념이 없다. ⓒ며느라기
며느라기의 한 장면. 남성들은 담소를 나누고 있지만 여성들은 음식 장만에 여념이 없다. ⓒ며느라기

 

1980-90년대 외동이들이 성년이 되고 1인 가구 비중이 늘면서 명절 풍경이 달라지고 있다. 성평등에 주목하는 페미니즘 확산도 명절의 변화에 큰 영향을 미치고 있다. 

여성신문이 20-60대에게 올 추석 연휴 계획을 물어본 결과 (▲관련기사 3면), 명절 음식 준비 등 집안일을 남성이 함께 하고 친인척이 한 집에 모이기보다 각자 집에서 쉬거나 여행을 통해 힐링 시간을 갖는 모습들이 나타났다. 명절 스트레스를 호소하는 남성들도 새로운 문화 만들기에 동참 중이다. 

유명 웹툰 작가 ‘서늘한 여름밤’(필명) 이서현씨는 2016년 결혼 이후 추석에 시가에 가지 않았다. 지난해에는 ‘제사 가지 말고 나랑 놀자’라는 행사를 주최하고 추석 차례에 참여하지 않는 여성끼리 추석 당일에 모여 점심식사를 하자고 제안했다. 이씨가 자신의 블로그에 글을 올린 지 4시간 만에 40여명이 신청했고 10여명이 함께 모였다. 

이러한 변화의 바탕에는 젊은 부부의 주축을 이루는 30대(1980~89년생) 자식 세대와 그 부모세대인 50대 중반~60대 중반(1954~1965년생) 부모 세대의 변화가 있다. 통계청에 따르면 1960년대 합계 출산율은 평균 6.0명. 그러나 1980년대 합계 출산율은 2.1명 수준으로 한 가정에 한두명의 자녀만 갖는 것이 일반화 됐다. 도시화의 진행으로 가족 당 구성원 수는 더욱 적어졌다. 인구학적으로 이전처럼 사촌 팔촌까지 모여 떠들썩한 풍경을 만들기 어려워진 셈이다. 20여년 전 ‘명절 증후군’, ‘역귀성’ 같은 신조어를 탄생시켰던 부모세대는 자신이 겪은  명절의 번거로움을 거부한다. 여기 더해 외동 혹은 두 자녀들이 결혼으로 결합하면서 이들은 친가와 시/처가 방문을 놓고 경합하는 긴장을 거부하고 있다. 평균 결혼 연령이 남성 33.15세, 여성 30.4세(2018년 통계청 인구동향조사)로 늦어지면서 ‘젊은 부부’의 목소리가 이전보다 더 힘을 얻게 된 구조적 요인도 있다. 비혼 1인 가구가 증가하면서 이들 역시 명절에 큰 관심을 보이기 않는 것이 현실이다. 김경희 중앙대학교 사회학과 교수는 “전통적인 가부장 의식이 약화되며 전통을 벗어나 합리적인 것을 추구하려는 움직임이 커졌다”고 설명했다.

16년 전인 2003년 9월 741호 여성신문은 <우리도 명절엔 어김없는 일 며느리>라는 제목의 기사를 실었다. 한국여성단체연합, 한국여성민우회에서 활동하는 여성운동가들의 추석 계획을 묻는 기사였다. 기사는 “여성운동가들도 차례는 보통 남자 집에서 지낸다. 시댁(시가)과 친정을 번갈아 차례를 지내는 움직임도 있지만, 이들에게도 아직  먼나라 얘기”라며 “명절은 여전히 시댁 중심이다”라고 전한다. 

불평등은 쉽게 해소되지 않는다. 서울시여성가족재단이 지난해 시민 1170명 조사 결과, 여성 응답자 88.8%가 “명절에 성차별적 관행을 겪었다”고 답했다. 여성 53.3%는 대표적인 성차별 사례 1위로 ‘여성만 하게 되는 가사노동’을 꼽았다. 남성 43.5%도 여기에 동의했다. 그러나 최근 실제 행동으로 명절 문화를 바꾸는 여성들이 늘고 있다. 인터넷 여성 커뮤니티에는 명절 노동에 시달리던 여자 친척들을 데리고 ‘대탈주’를 했다는 무용담부터 성차별적 잔소리를 피하는 ‘꿀팁’이 넘쳐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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