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덕여대 등 여대 게임 동아리 6곳
여대연합게임대회 ‘W.U.L’ 개최
‘단지 여자라는 이유만으로’
게임 실력 의심하며 증명 요구하고
‘혜지’ 등 여성 게이머 혐오 표현
공공연하게 사용하며 성희롱
“차별·혐오 없이 게임하고파”

서울여대 e스포츠 동아리OverPower가 지난 5월 19일 주관한 교내 리그오브레전드 대회 ‘SWU CHAMPS’에 참가한 동아리원들이 게임을 하고 있다.  ⓒ서울여대 OverPower 블로그
서울여대 e스포츠 동아리OverPower가 지난 5월 19일 주관한 교내 리그오브레전드 대회 ‘SWU CHAMPS’에 참가한 동아리원들이 게임을 하고 있다. ⓒ서울여대 OverPower 블로그

 

‘여성은 게임을 못한다’는 편견과 차별에 시달리던 여성들이 아예 여성들만의 게임 대회을 열었다. “여성이 게임 못하는 건 ‘팩트’(fact·진실)기 때문에 욕 먹어도 싸다”며 “불만이면 실력으로 증명하라”는 일부 남성 게이머(게임 이용자)들의 억지에 여성대학 e스포츠 동아리가 반기를 들고 여대연합게임대회 ‘W.U.L(Women’s University League)’를 개최했다.

이번 대회에 참가한 대학 동아리는 동덕 OCG, 덕성 Eternal Duksung, 서울 OverPower, 성신 Crytical, 숙명 E-SNOW, 이화여대 KLASS EWHA 등 총 6곳이다. 8월 19일 개막해 31일까지 12일 동안 ‘리그 오브 레전드’, ‘오버워치’, ‘배틀그라운드’로 경쟁한다.

대회 슬로건은 ‘we have nothing to prove(우리는 아무것도 증명할 필요가 없다)’. 여성이라는 이유로 증명할 것은 아무 것도 없다는 의미를 담았다. 영화 ‘캡틴마블’에서 브리 라슨이 연기한 캐롤(캡틴 마블)의 대사 ‘I have nothing to prove’에서 영감을 받았다. “여성 게이머에 대한 편견을 타파하고 친목과 공정한 경쟁을 통한 커뮤니티를 구축하겠다”는 것이 이번 대회 취지와도 연결된다.

서울여대 ‘OverPower’ 회장 안은영(24)씨는 “기존 여성 아마추어 대회는 많았지만, 서울에 위치한 여대 여섯 곳이 모여 대회를 연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라며 “이번 W.U.L.은 서울의 여섯 여대가 모두 모인 첫 연합이라는 것에 큰 의의가 있다”고 강조했다.

흔히 게이머하면 ‘남성’을 떠올리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실상은 다르다. 한국콘텐츠진흥원이 발표한 ‘2019년 게임이용자 실태조사’ 결과를 보면 전체 응답자 3037명 중 여성 게임이용자는 전체의 61.3%, 남성은 전체의 69.9%로 격차가 크지 않았다. PC게임 이용자 1279명 중 여성은 34.9% 이고, 모바일 게임을 하는 1794명 가운데 여성은 47.4%를 차지한다.

2019년 게임이용자 실태조사 ⓒ한국콘텐츠진흥원
2019년 게임이용자 실태조사 ⓒ한국콘텐츠진흥원

 

게임을 즐기는 여성이 상당하지만 편견과 성차별적인 게임 문화는 크게 달라지지 않고 있다. 여성 게이머를 향한 ‘혜지’, ‘여왕벌’ 등 혐오 표현은 게임 내 공고한 성차별과 편견을 고스란히 보여준다. ‘혜지’는 인기게임 ‘리그 오브 레전드’에서 많이 쓰이는 표현으로, ‘실력이 부족하면서, 게임을 잘 하는 다른 (남성) 게이머의 덕을 보거나. 지나치게 의존적인 플레이를 하는 (여성) 게이머’를 말하는 게임 내 여성 혐오 표현이다. 성별과 관계없이 게임을 잘 하지 못하는 순간, 그 게이머는 ‘여성’이 되기도 한다

여성 게이머 비율이 높다고 알려진 오버워치도 사정은 다르지 않다. 음성통화(보이스톡)를 통해 여성 이용자의 목소리가 공개되면 “신음소리를 들려 달라”, “오빠라고 불러봐”라며 성희롱을 당하기 일쑤다.

게임을 잘하는 여성 게이머들은 남성 게이머들로부터 ‘햄최몇?’이라는 또 다른 성차별 표현을 맞닥뜨린다. ‘햄최몇?’은 ‘햄버거를 최대 몇 개까지 먹냐?’는 뜻으로 그들은 ‘게임을 잘하는 여성 게이머는 분명히 뚱뚱할 것이다’라는 편견으로 무장한 채 상대방을 비하한다.

게임 내 가득한 성차별과 편견은 여성 게이머가 게임을 그만 두거나, 게임에 소극적으로 임하게 만든다. 결국 여성프로게이머 육성과 여성 게이머 발전을 막는 걸림돌로 작용한다. 실제로 지금 국내에서 인지도 있는 여성 프로게이머는 ‘게구리(본명 김세현)’ 등 손에 꼽을 정도다.

여대생들이 손을 잡고 만든 여성들만의 게임 대회 W.U.L이 주목받는 이유도 이 때문이다. W.U.L에 참여한 덕성여대 ‘Eternal Duksung’의 매니저 최윤총(26)씨는 “대부분의 아마추어 대회는 남성 게이머를 위한 대회”라고 지적했다. 최씨는 “남성 게이머가 게임을 잘 해서남성 게이머를 위한 대회가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상대적으로 여성 게이머 비율이 낮고, 그 안에서 여성들이 실력이 뛰어나야 한다는 부담감을 느낀다”며 성차별적인 게임 환경을 지적했다. 최씨는 “여성 게이머들을 위한 대회가 많이 생겨야 여성들도 e스포츠를 자신들의 문화로 받아들일 수 있을 것”이라며 “W.U.L과 같은 대회가 더 많이 생기기 바란다”고 말했다.

서울여대 ‘OverPower’ 부회장 노지윤(23)씨도 “W.U.L은 여성 게이머들에게 아마추어 게임 대회 참여의 벽을 허무는 시작점이 될 것”이라며 “이번 대회를 통해 앞으로 여대 e스포츠동아리 간의 교류가 활발해지고, 여성들 사이에서도 e스포츠 바람이 불기를 바란다”고 소망했다.

여대연합게임대회 W.U.L 공식 포스터.
여대연합게임대회 W.U.L 공식 포스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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