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예술, 성평등을 말하다] ③ 한국여성민우회 미디어운동본부

[문화예술 산업 내 성평등한 문화환경을 지원하고 조성하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전합니다. 여성문화네트워크가 주최하고 여성신문 주관, 문화체육관광부 후원으로 진행하는 '2019 성평등 문화캠페인 사업'으로 일환으로 진행됩니다.]

지난해 11월 30일 미투 언론 모니터링 발표회 모습. 한국여성민우회 미디어운동본부가 3개월간 포털 네이버와 다음 랭킹뉴스 30위까지 중 미투 기사를 추려 분석한 결과, 성폭력 사건을 선정적인 가십으로 다루는 제목을 쓰고, 가해행위만을 자세히 묘사하는 등 총 1058개 기사 중 356건(33.7%)에서 문제가 나타났다. ⓒ한국여성민우회 미디어운동본부
지난해 11월 30일 미투 언론 모니터링 발표회 모습. 한국여성민우회 미디어운동본부가 3개월간 포털 네이버와 다음 랭킹뉴스 30위까지 중 미투 기사를 추려 분석한 결과, 성폭력 사건을 선정적인 가십으로 다루는 제목을 쓰고, 가해행위만을 자세히 묘사하는 등 총 1058개 기사 중 356건(33.7%)에서 문제가 나타났다. ⓒ한국여성민우회 미디어운동본부

 

미디어는 힘이 세다. 옳고 그름을 따지지 않고 정보를 대중에게 퍼나르며 고정관념을 강화하기도 한다. 방송을 비롯해 사회관계망서비스(SNS), 스트리밍 플랫폼, 동영상 공유 사이트까지 급변하는 미디어 환경에서 그 위력이 특정 성별을 차별하고 혐오하는데 쓰이지 않도록 방지해온 단체가 있다. 1998년 설립 이후 한국여성민우회 미디어운동본부(이하 미디어운동본부)가ᅠ바꿔온 풍경은 미디어가 좀 더 성평등한 환경으로 개선되어가는 사건과 함께 한다.

지속적인 문제 제기를 통해 2002년부터 지상파에서 미스코리아 선발대회 중계를 중단시켰으며 2015년에는 ‘1시간짜리 성형광고’로 비판받던 메이크오버쇼 ‘렛미인’의 폐지를 이끌어냈다. 성평등한 방송심의 가이드라인을 발간하고, 2010년 여성연예인인권지원센터 개소 후에는 관련 분야 피해자를 지원했다. 미디어를 통한 성평등 교육 등 다양한 프로그램을 개발하고 매년 2000~3000명을 대상으로 성인지적 관점의 미디어 교육 또한 진행하고 있다. “변화를 목격하는 것이 활동가로서 가장 큰 보람”이라는 이윤소 부소장의 기억에 남은 대표적인 활동은 방송통신심의 활동과 케이블 채널의 환경 개선이다.

“오랫동안 성인지 관점에서의 모니터링 활동을 해왔어요. 방송통신위원회 발족 이후부터는 통신 심의 결과를 분석하면서 성평등한 심의가 얼마나 있는지 살펴보고, 성평등 조항이 개정되는 과정에도 참여했어요. 실제 심의 과정에서 여성위원이 많지 않고 주로 5,60대 남성 위주라 조항이 있더라도 적용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았는데 심의위원회에 들어가서 활동하면서 확실한 제재가 가능해졌고, 대표적인 사례를 만들어서 제작자들에게 참고할 수 있게 한 점을 긍정적으로 생각하고 있어요. 또 90년대 말 케이블 방송사들이 우후죽순 개국할 때 저질 프로그램들이 참 많았어요. 예를 들어 ‘그 속이 알고 싶다’처럼 여성들이 달릴 때 가슴이 어떤 모양으로 흔들리는지 촬영을 해서 보여주는 프로그램들도 있었죠. 이후에 ‘이 달의 나쁜 방송 프로그램상’을 만들고 지속적으로 문제 제기를 하면서 케이블 채널에서도 좋은 프로그램들이 생겨나기 시작했습니다.”

방송에서 뉴미디어로 영역 넓히다

케이블 채널이 자극적으로 새로운 시청자를 모으던 방식은 현재 뉴미디어를 타고 더 강하고 빠르게 전파되고 있다. 유튜브, 아프리카 TV 같은 동영상 공유 플랫폼과 팟캐스트 등의 1인 미디어는 방송 심의의 사각지대에서 성차별을 부추기고 각종 혐오범죄를 유발한다. 조회 수와 구독자 수가 곧바로 광고 수익과 연결되는 생태계 안에서 혐오는 단시간에 사람들을 모으는 성공 모델이며, 이러한 ‘혐오 비즈니스’에서 여성 혐오는 가장 뛰어난 효과를 자랑한다. 2017년, 남성 유튜버가 여성 유튜버를 향해 공개 살해 협박을 방송했고, 일정 금액 이상의 후원금이 모이면 살인을 하겠다며 실제로 여성 유튜버의 집을 찾아가는 걸 생중계할 정도다.

“경쟁이 치열해지고, 자본의 논리로만 미디어 환경이 굴러가는 것 그리고 공적 책임을 질 사람이 점점 사라지는 것이 가장 큰 원인이라고 봅니다. 방송 모니터링을 할 때는 방송국이라는 책임 주체가 명확하잖아요. 그래서 그들에게 공적인 책임을 다하라고 할 수 있었는데 유튜브 같은 경우는 유튜버에게 모든 책임을 물릴 수도 없고, 더군다나 국내 기업도 아니라 개입하기도 어렵죠. 이용자나 시청자, 제작자 모두가 시민 의식 없이 이윤을 내는 방식으로만 가는 상황에서 우리의 권리를 이야기하는 목소리 내는 것 자체가 점점 더 어려워집니다.”

뉴미디어 관련 교육에 집중

이러한 상황에서 미디어운동본부는 뉴미디어 관련 교육에 한층 더 역량을 모으고 있다. 유튜브와 가장 밀접하고 영향을 많이 받는 어린이와 청소년뿐만 아니라 모니터링 활동에 의지가 있는 성인까지 대상을 넓히고 있다.

“방송, 신문으로 시작해서 현재 유튜브까지 미디어는 계속 변하고 있지만 사람들이 많이 이용하는 매체를 통해서 성평등을 이야기 한다는 교육의 기본 골자는 거의 변하지 않았어요. ‘10대 유튜브를 말하다’ 같은 청소년 대상 교육에서는 성평등한 관점으로 유튜브를 본다는 건 뭘까, 라는 질문을 가지고 수업을 진행해요. 아이들이 동영상을 만들고, 보는 사람으로서 어떤 규칙을 가져야 하는지 스스로 생각해봅니다. 실제로 학교에 가보면 반에 꽤 유명한 유튜버가 있는 경우도 있고요, 아이들이 유튜브에 대해 토론하는 걸 흥미로워 해요. 그런데 페미니즘에 대해서는 무조건적인 거부 반응을 보이는 학생들도 많아서 어떤 방식으로 교육해야할지 많이 얘기해봐야 할 부분이죠. 최근에는 뉴미디어 크리에이터를 만나는 시간 가졌어요. ‘쏟아지는 콘텐츠 속 한줄기 빛’에서는 크리에이터를 꿈꾸는 사람이 성평등한 콘텐츠를 만드는 크리에이터를 만날 수 있도록 연결했죠. 성인 대상 교육의 경우에는 모니터링 방법론에 대한 요구가 많아요. 공공기관 광고물처럼 지역에서도 모니터링을 시작하려는 분들에게 그동안 저희가 해왔던 내용들을 말씀 드리러 가고 있어요. 그분들이 교육 이후에 모니터링 결과를 내고 또 다시 다른 분들이 모니터링 할 수 있는 표본이 되어주면서 지역에서 허브 역할을 하고, 일종의 선순환이 이루어지더라고요.”

세상은 조금씩 나아진다

미디어운동본부는 작년 한 해 동안 손목 잡아채기, 벽치기 등 폭력을 로맨스로 포장하는 4000편의 드라마를 모니터링 했다. 기사 제목에서 여성의 성별이 차별적으로 표기되는 수많은 언론 보도에 대해서도 꾸준히 문제 제기 하고 있다. 그러나 여전히 드라마에서 남성 주인공의 호감을 표현하는 ‘클리셰’(cliché·진부하거나 상투적인 표현)로 여성이 동의하지 않은 기습키스가 등장하고, 언론 역시 여성이 피해자 혹은 가해자가 되는 범죄를 보도할 때 2차 가해에 가까운 행태를 보이고 있다.

“순식간에 좋아지는 건 어렵다고 생각해요. 저희는 끊임없이 지적 하면서 언론사 내부에서 자정 능력을 갖추고자 하는 노력이 잘 굴러가게 사이클을 만드는 거죠. 특히 미투 운동과 성폭력 관련 보도 모니터링을 해오면서 느낀 건 확실히 나아지고 있다는 거예요. 여성 기자들이 정말 많이 고군분투 하거든요. 최근에 어떤 기자분이 기사 제목에 여성을 쓸지 말지 내부에서 토론했다고 하더라고요. 성별 표기를 기본적으로 하지 않는다는 방향이 있는데 여성의 업적을 부각시키고 싶은 기사였던 거예요. 상반된 의견들이 오고 갔다고 하는데, 내부에서 고민을 한다는 거 자체가 중요해요. 그런 고민으로 인해서 점점 나아진다고 생각합니다.”

AI 인공지능 대응까지

단체가 설립되던 21년 전만 하더라도 나중에 인공지능 기기의 개선을 위해 나설 거라고는 상상하지 못했을 정도로 미디어는 어떤 전문가도 단언할 수 없을 만큼 매번 다른 양상으로 확장되고 있다. 물론 미디어운동본부는 그 변화의 파고에 휩쓸리지 않을 원칙 또한 세워뒀다.

“올해 초 인공지능 스피커 대응 활동을 했어요. 고 윤정주 소장님 아들이 기가지니에게 자동차 좋아하냐고 물어봤는데 ‘전 여자라서 안 좋아해요’라는 답을 한 거예요. 그래서 인공지능 스피커들한테 성별이나 색깔에 관련된 다른 질문들도 해보니까 기가지니가 빅스비나 시리에 비해 성차별적인 답을 하더라고요. 이후 사례들을 모아서 KT에 문제점들을 개선하길 바란다는 공문을 보냈는데 긍정적인 답변이 왔어요. KT 내부에서 여러 가지 질문을 구성해서 성차별적이지 않은 답으로 변경했다고요. 지금도 인공지능과 알고리즘 쪽으로 계속 공부하고 있고, 세미나도 준비 중입니다. 이런 환경 속에서 페미니즘을 어떻게 녹여낼 수 있을지 고민하고 있어요. 사실 가시적인 성과를 내지 못할 때 불안해요. 단체활동을 지켜보는 사람도 많고, 어떤 활동을 했을 때 주목받을지를 아니까 조바심이 날 때도 있지만 그러지 않으려고 해요. 천천히 생각도 채워가고 논의도 활발하게 하면서 변화하는 시대에 걸맞은 미디어 운동을 준비하고 있습니다.”

이지혜‘텐아시아’, ‘맥스무비’ 등 매체에서 기자로 일하며 대중문화에 대한 글을 썼다. ‘뜨거운 사이다’, ‘무비스토커’ 등의 방송과 지면을 통해 여성과 영화에 대해 말하고 쓰고 있다.
필자 이지혜 객원기자 - ‘텐아시아’, ‘맥스무비’ 등 매체에서 기자로 일하며 대중문화에 대한 글을 썼다. ‘뜨거운 사이다’, ‘무비스토커’ 등의 방송과 지면을 통해 여성과 영화에 대해 말하고 쓰고 있다.

 

저작권자 © 여성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