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년 전 처음 발을 디뎠던 작은 마을에 얼마 전 다녀왔다. 기대가 크면 실망도 크다고 했던가? 처음 공부했던 곳이라 한껏 기대를 품고 마을을 본 순간 아쉬움을 넘어 안타까운 마음이 들었다. 젊은이들이 떠난 마을은 활력을 잃고 있었다. 마을에서 조금 벗어나면 버려진 농가, 문을 닫아 녹슨 주유소, 간판이 떨어진 옛 우체국, 오랫동안 동네 사람들이 생활용품을 사던 마트는 문을 닫은지 오래됐는지 문 유리에 먼지가 뽀얗게 앉아 있다. 기차를 타고 스톡홀름 남쪽으로 달리거나 북쪽으로 노르웨이와 핀란드 국경 지역으로 가보면 이런 마을들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나타난다. 『닐스의 모험』이 문득 생각났다.

노벨문학상 수상자인 스웨덴 여성 작가 셀마 라게르레프(Selma Lagerlöf)가 쓴 『닐스의 모험』은 주인공이 거위등을 타고 남쪽 끝 말뫼에서 북쪽 끝 케브네카이세까지 2200km를 여행하면서 농촌과 도시의 모습을 생동감있게 보여주는 작품이다. 어린이 동화로 쓰여진 이 작품은 라게레프가 교사 생활과 양육을 하며 아이들에게 재미있게 읽어줄 수 있는 이야기 거리로 사용하기 위해 쓴 작품이다. 라게레프는 『말광량이 삐삐』를 쓴 아스트리드 린드그렌과 함께 양대 아동작가로 인정받고 있다.

이 작품에서 작가는 스웨덴 각 지역의 문화와 전통, 자연환경 등을 생동감있게 전하기도 하지만 주로 스웨덴 농촌과 도시의 대조적 모습, 계급사회, 남성 우위 사회 등을 아동의 시각에서 재미있게 서술하고 있다. 이 책에서 농촌은 전통적 농경사회, 도시는 현대적인 문명사회로 소개된다. 이 책이 발표된 1906년과 1907년은 스웨덴에서 자유주의 운동이 싹트기 시작한 시기다. 새로운 선거제도인 비례대표제가 도입됐고, 남성 노동자의 참정권이 도입된 시기도 이 때다. 평등투표제 도입은 한참 더 늦은 1920년부터 시작했다.

100여년이 지난 지금 고도산업화와 함께 농촌사회는 공동화 현상이 급격히 진행됐다. 농촌의 대형목재소가 사라지고 현대화된 기계로 산림사업이 운영되면서 계절노동자가 생겨나게 되었고, 산림지역의 거주시설은 공동화가 빠르게 진행되었다. 어촌은 어업에 종사하는 인구가 사라지니 아예 인적이 뜸해졌고, 농촌은 한두마리 가축으로 운영하는 농가는 사라지고 대형농기구로 농사짓는 농민경영인만 남아 농작물을 생산하다 보니 자연스럽게 인구는 축소될 수 밖에 없었다.

최근 일간신문인 다겐스 뉘헤테르지에서 다룬 기사는 스웨덴의 우울한 모습을 보여준다. 다국적기업이 떠난 어느 북쪽 한 마을에서는 사람들이 사는 집보다 빈집이 더 많아 일씨년스럽기까지 하다. 몇달치 임대료를 받지 않는 유인책을 써도 효과는 전혀 없다. 일자리가 없어 젊은이들이 들어올 수 있는 가능성은 전혀 없어 보인다. 반대로 스톡홀름과 예테보리 등 대도시 주변 소도시들은 지속적으로 인구가 팽창하고 있다. 농촌 지역은 이제 거주하는 사람이 없어 동사무소, 경찰서, 보건소, 우체국, 탁아소 같은 공공시설과 각종 생활 서비스시설들이 사라지고 있어 남아 있는 사람들도 언제 떠날지 모르는 상황이라 미래는 더 암울해 보인다.

농촌 공동화 현상이 긍정적 영향을 미친 것도 있다. 바로 민주주의 발전이다. 산업화와 민주주의 발전사의 상관관계를 연구한 헤롤드 라스키는 자유민주주의의 발전은 도시화와 함께 진행되었다고 진단했다. 라스키는 산업화와 도시화가 없었다면 민주주의는 탄생하지 못했을 것이라 보았다. 그리스 아테네에서 민주주의가 일찌감치 발전될 수 있었던 것도 도시였기 때문이라는 논리로 설명한다. 왜 도시에서는 민주주의가 농촌보다 더 잘 발달할까? 농촌중심사회는 전통적 신분계급과 수직적 관계로 맺어진 혈연 관계 위주의 사회였지만, 일자리를 찾아 도시로 이주한 노동자는 자신이 가진 기술과 노동의 제공으로 임금을 받는 수평적 계약사회이자 기능분화사회이기 때문에 가능했다는 것이다. 의무교육제도를 통해 지식능력이 높아져 임금도 상승하면서 누구나 중산층으로 진입할 수 있는 것이 가능해져 신분과 계급의 의미는 점차 쇠퇴하게 되었다고 본 것이다.

탈농촌으로 민주주의가 발전했다면, 탈도시로 민주주의를 살찌울 방법은 없을까? 젊은이들이 인공지능과 결합한 새로운 신산업을 창출해낼 수만 있다면 블루오션인 산업이다. 1960년대 스웨덴의 인기가수였던 테드 예데스타드가 이렇게 노래했다.

”태양, 바람, 물, 높은 산, 깊은 바다는 내 꿈의 실타래를 짜는 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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