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넷에서 친밀감 쌓고
성착취하는 ‘온라인 그루밍’
미국, 영국, 캐나다, 독일 등
온라인 그루밍 처벌 법제화
중학생 11% “누군가 성적 접근해”
가해자들, 아동과 온라인 대화
8분만에 정서적 유대 형성

국내외 그루밍 성폭력 법 관련 조항들 

 

지난 16일부터 가출 또는 학대 등으로 의식주 해결이 어려운 13세 이상 16세 미만의 아동·청소년에게 숙식을 제공하는 대신 성관계를 맺는 등의 성범죄를 합의 여부와 상관 없이 처벌하는 ‘아동·청소년의 성 보호에 관한 법률’ 개정안이 시행됐다. 그루밍 성폭력을 막겠다는 여성가족부의 의지다. 그루밍 성폭력은 칭찬과 호의를 통해 친밀감을 쌓고 비밀을 털어놓게 하는 등 대상을 길들여 의존하게 만들고 성착취까지 하는 행위를 뜻한다. 그러나 해당 개정안으로는 늘어나는 ‘온라인 그루밍 성폭력’까지 제재할 수 없어 우려의 목소리가 높다. 

18세 미만 아동·청소년을 대상으로 한 온라인 그루밍 성폭력이 늘어나고 있다. 온라인 그루밍 성폭력은 온라인에서 피해자를 물색해 길들인 후 성적 관계를 갖는 성폭력이다. 가해자는 SNS, 온라인 게임 사이트, 채팅 앱, 블로그/카페, 개인 방송 등 온라인 환경에서 피해자와 신뢰 관계를 형성하고 1대 1 대화가 가능한 다른 플랫폼에서 자신과 대화할 것을 요구한다. 이에 응하면 가해자는 피해자에게 성적 대화를 시도하고 성적인 이미지 전송, 만남, 성행위 등을 요구한다. 한국사이버성폭력대응센터에 따르면 최근 상담한 성폭력 상담 가운데 3건 중 1건꼴로 ‘온라인 그루밍’ 수법을 보인 것으로 드러났다.

탁틴내일과 GSGT(Good Students&Good Teachers)가 2017년 초등생과 중학생 1098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온라인에서 누군가 성적으로 접근한 적 있다’고 응답한 중학생은 11.8%에 이르렀다. 중학생 대상 설문 조사결과 ‘온라인에서 알게 된 낯선 사람과 대화를 나누어본 적 있다’에 대해 ‘그렇다’고 응답한 비율은 84.7%였으며 ‘실제로 만났다’고 대답한 비율도 23.8%에 이르렀다. 초등생 또한 ‘낯선 사람과 대화를 나누어본 적 있다’고 대답한 비율이 69.1%에 달했다. 

온라인 그루밍 성폭력은 매우 빠른 속도로 일어나는 것이 특징이다. 국제실종및착취아동센터가 발표한 ‘성적목적의 아동 온라인 그루밍:모델법 및 외국 법제 검토’ 보고서에 따르면 가해자들은 불과 30분 만에 만남을 위해 아동·청소년을 설득할 수 있고 어떤 경우에는 18분밖에 걸리지 않았다. 영국 미들섹스 대학교의 연구에 따르면 가해자들은 온라인에서 아동들과 채팅을 할 때 불과 3분 만에 성적인 주제를 꺼내며 8분 만에 아동과 유대를 형성했다. 

피해를 입은 아동·청소년이 피해 사실을 인지하지 못하기도 하고 가해자가 성적 만남을 반드시 목표로 하지 않고 성적 대화나 촬영물이 목표로 하는 경우가 많아 신고율도 낮다. 2018년 한국사이버성폭력대응센터 지원통계에 따르면 온라인그루밍 피해를 입은 피해자 중 경찰에 신고한 비율은 31%에 불과했다. 육아 관련 카페에 사연을 올린 A씨는 지난 해 우연히 초등학생 딸의 휴대전화에서 처음 보는 사람과의 대화 내용을 보고 상대를 경찰에 신고했다. 딸은 상대가 같은 나이라고 말했으나 상대는 꾸준히 딸과 성적인 대화를 하며 딸에게 신체 일부분을 사진으로 찍어 보낼 것을 요구하고 있었다. 

해외의 경우 그루밍 행위 자체를 범죄화 하고 강력하게 규제에 나서고 있다. 국제실종아동센터(ICMEC)에 따르면 196개국 중 63개국의 나라가 아동·청소년 대상 온라인 그루밍 법을 만들었다. 2003년 잉글랜드는 성범죄법 제15조에 ‘성적 그루밍 뒤 아동과의 만남’을 중범죄로 규정했다. 아일랜드는 2017년 ‘아동 그루밍법’을 통과시키고 가해자가 오프라인상의 만남으로 관계를 발전시키고자 하는 의도 여부와 관계 없이 모든 종류의 아동 그루밍을 범죄화 했다. 스코틀랜드는 ‘아동보호와 성범죄 예방법’을 통해 ‘특정한 예비 접촉 후 아동과의 만남’을 범죄로 규정했다. 미국 또한 연방 헌법을 통해 성범죄를 목적으로 16세 이하 아동에 관한 정보를 전자기기를 이용해 전달하는 것을 금지한다.

한국은 온라인 그루밍 처벌이 법에 명시돼 있진 않지만 현행 법을 제대로 적용하면 처벌할 수 있다는 게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청소년성보호법 제13조 2항은 아동·청소년의 성을 사기 위하여 아동·청소년을 유인하거나 성을 팔도록 권유한 자는 1년 이하 징역 또는 1000만원 이하 벌금에 처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문제는 법을 협소하게 적용하면서 온라인 그루밍은 법 사각지대에 놓여 있다는 점이다.

그러나 신고 후에도 처벌 대다수가 집행유예에 그친다. 지난 4월 여성가족부가 발표한 ‘2017년도 아동·청소년 대상 성범죄 발생추세와 동향분석 결과’에 따르면 아동·청소년의 성을 매수한 성범죄자의 64.2%, 강제추행을 하거나 음란물을 제작한 범죄자 56.6%, 유사강간 범죄자 45.6%가 집행유예를 선고받았다. 심지어 강간 범죄자 또한 3명 중 1명 꼴(33.4%)로 집행유예를 선고받았다. 이는 아동·청소년을 대상으로 범죄를 저지를 때 굳이 폭행·협박을 수반하지 않아도 위력이나 이미 형성된 그루밍을 통해 범죄를 저지를 수 있기 때문으로 설명된다. 

이러한 이유로 성범죄의 통로가 되는 ‘채팅 플랫폼’ 규제의 필요성도 제기 된다. 일부 앱의 경우 특정 연령대 이하의 접근 자체를 막거나 채팅앱 이용자가 최소한의 신상 정보를 필수로 입력하게 하고 문제 발생시 이를 사업자가 즉각 수사기관에 제공하는 등의 조치가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높다.

이효린 한국사이버성폭력대응센터 대표는 “온라인 그루밍이 발생하는 배경에는 정서적 취약성이 있다”며 “가정환경, 교우관계 등에서 취약점이 있을 때 친밀감을 충족시키며 성적 착취가 일어나므로 평상시 온라인 공간에 대한 자녀교육을 하고 동시에 정서적 유대관계를 잘 형성해두는 것이 중요하다”고 조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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