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방자치에 여성 참여 확대는
지방 분권화·활성화 필요 조건

 

10년 만에 미국 보스턴을 방문했다. 이 곳은 자유와 평등이 살아 숨 쉬는 곳이다. 1620년 9월 16일 102명의 청교도들은 종교적 박해를 피해 메이플라워를 타고 대서양을 건너 신대륙으로 향했다. 이들은 66일간의 항해 끝에 보스턴 근처 플리머스에 도착했다. 41명은 도착전 배 안에서 협약을 체결했다. 질서와 안녕을 유지하기 위해 스스로 하나의 시민 정치체제를 만들고 필요한 법률과 공직을 제정하여 이에 복종한다는 것을 서명했다. 서로가 합의를 이루지 못할 경우 다수결의 원칙을 따를 것을 약속했다. 이것이 그 유명한 ‘메이플라워 협약’이다. 메이플라워 협약에 바탕을 둔 다수결의 원칙이 미국 민주주의의 기초가 되었다. 더구나 이들 청교도들이 세운 정착지는 미국 민주주의의 역사와 원형이 되었다.

프랑스 사상가 알렉시스 드 도크빌은 1831년 9개월간 미국을 여행하면서 미국의 민주주의를 관찰했다. 그는 『미국의 민주주의』라는 책에서 자신의 조국인 프랑스는 피를 흘리는 혁명을 하고도 민주주의를 이룩하지 못한 반면 미국에서는 갈등이나 혼란 없이 민주주의가 순조롭게 뿌리내리게 된 이유로 지방자치와 평등을 지적했다. 왕이 전권을 휘두르는 유럽 대륙과는 달리 미국에서는 타운(town)과 주(state)가 연방에서 분권화되어 자치적으로 운영되는 풀뿌리 민주주의 전통이 강했기 때문이라고 이해했다. 한 마디로 분권화와 평등한 생활 조건이 민주주의 핵심적인 실체라는 것을 확인했다.

최근 광역 및 기초 자치 단체 위원회 위촉직 여성 참여의 평균 비율이 매년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다. 여성가족부 분석에 따르면, 2013년 여성들의 위원회 참여는 광역 26.7%, 기초 27.8% 였다. 그런데 2018년에는 각각 44.4%와 39.1%로 크게 상승했다. 여가부는 “지방자치 단체 소관위는 교통, 환경, 문화 등 주민 생활과 밀접한 정책 결정이 이뤄지는 곳인 만큼 여성 참여율이 지속적으로 증가하는 것은 의미있는 성과”라고 평가했다.

지방자치는 생활 정치고, 생활 정치의 핵심에는 여성 정책이 자리 잡고 있다. 따라서 지방자치에 여성의 참여 확대는 지방 분권화와 활성화에 절대적으로 필요한 조건이다. 그러나 실질적인 평등 사회가 이뤄지기 위해서는 지방자치 차원에서의 여성 참여 확대에만 그쳐선 안 된다. 내년 총선에서 여성의 대표성이 획기적으로 늘어나야 한다.

여가부는 지난 7월 26일 시이오스코어에 의뢰해 매출액 상위 500대 기업의 여성 임원 비율을 발표했다. 2014년에는 2.3%(35명)에 불과했지만 지속적으로 증가해 2018년에는 3.6%(518명)에 이르렀다. 여가부는 향후 여성임원 확대를 위해 기업들과 ‘성별 균형 포용 성장 파트너십(동반 관계)’ 자율 협약을 추진하기로 했다. 이는 “민간 기업 내 유리천장이 해소되고 사회 전반에 성평등 문화가 정착될 수 있도록 하기 위한 노력의 일환이다”라고 설명했다. 아직 미미한 수준이지만 기업 내 여성 임원 비율이 지속적으로 증가하고 있다는 것은 바람직하다. 그러나 여성의 국회 진출이 확대되지 않는 한 유리천장은 결코 해소되기 어렵다.

여성의 정치 세력화가 절대적으로 필요한 이유다. 필자는 이번 미국 여행 중 미국을 대표하는 최고 여자대학 중의 하나인 스미스 칼리지도 방문했다. 미국 여성 운동의 선도적 역할을 했고, '여성의 신비' 작가인 베티 프리단, 미국의 저명한 여성 잡지 미즈(Ms.)의 창간자이자 뛰어난 여성 운동가인 글로리아 스타이넘의 모교다. 프리단은 1966년 ‘여성을 위한 전국 기관’(NOW)을 설립해 남자와 동등한 권한으로 미국 사회의 주류에 참가하는 것을 목표로 삼았다. 그는 “여성이 자아실현을 하지 못해 불행한 것은 개인의 잘못 때문이 아니라 사회의 책임이다”라고 주장했다.

여야 정당들은 이를 깊이 숙고해서 내년 총선에서 ‘실질적 성평등 사회’가 실현될 수 있도록 치열하게 경쟁해야 한다. 만약 이것이 실현될 조짐이 보이지 않는다면 남성과 여성이 함께 “거대한 변화의 물결인 평등 사회를 위한 위대한 투쟁”을 시작해야 한다. 스타이넘의 주장처럼 분노만으론 세상을 바꿀 수 없기 때문이다.

*외부 필자의 글은 본지 편집 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 이정실 여성신문 사진기자
© 이정실 여성신문 사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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