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애인단체, “예산 증액 없는 장애등급제 폐지…'껍데기'” 지적도

국민연금공단 충정로사옥 앞에 장애등급제 폐지를 요구하는 장애인단체의 농성장이 설치돼 있다. ⓒ조혜승

7월부터 장애등급제가 단계적으로 폐지되면서 기존 장애인 정책과 어떻게 달라지는지 궁금증이 커지고 있다.

국민연금공단 서울북부지역본부는 지난 3일 장애등급제 개편과 관련해 언론사들을 초청해 장애등급 단계적 폐지에 따른 제도 개편 내용과 이후 공단 장애인 사업의 변화에 대해 설명하는 자리를 가졌다. 국민연금공단은 전국 109개 지사에서 장애인 신청자 개별로 ‘서비스 지원 종합조사’를 수행하는 기관이다.

지난 1989년 도입된 장애등급제는 15개 장애유형별로 동일한 의학적 관점에 입각해 기능 제한 수준만을 평가한 장애인 서비스 지급 기준으로 활용돼 왔다. 장애인을 일률적으로 1~6등급으로 세분화해 등급에 따른 차등적인 복지서비스로 제공하는 중이다. 장애등급제 폐지는 의학적 판단이 복지서비스 제공에 절대적인 영향을 미침에 따라 당사자의 필요나 욕구 등이 반영이 안 된다고 장애계는 지적해 온 오랜 요구사항이다. 등급만으로 장애인의 어려움을 구체적으로 파악할 수 없고 적절한 지원을 하기에 한계가 있어서다.

이에 따라 정부는 ‘장애인등급제 단계적 폐지’를 국정 과제로 채택하고 장애인 정책을 수요자 중심으로 장애인 지원 체계를 구축하기 위해 민관협의체를 구성하는 등 관계부처 공동 준비 과정을 거쳐 단계적 폐지를 추진했다. 지난 1일부터 기존 1~6등급인 장애등급제를 폐지하고 ‘장애 정도가 심한 장애인(중증)과 심하지 않는 장애인(경증)’으로 단순하게 개편해 시행 중이다. 모든 장애인이 신청할 수 있어 장애인 복지 사각지대를 줄일 수 있다는 의도가 있기도 하다.

정부 정책에 발맞춰 장애인 등록 심사를 진행하는 국민연금공은 장애인등급제 개편 후 현행 6등급 체계에서 2단계로 단순화해 감면·할인제도 등에 활용하는 방식으로 장애인 등록제를 시행하겠다고 밝혔다. 객관적 기준에 의한 장애 인정과 복지서비스 지원을 위해 의학적 평가에 따른 기존 장애인 등록제도를 유지하기로 했다.

공단 측은 서비스 지원 종합조사 시 현물지원 등 장애인 복지서비스는 장애등급 기준이 아닌 서비스 필요도에 대한 종합조사를 통해 개별 서비스를 지원하겠다고도 했다. 장애 정도에 따라 감면, 할인 등 서비스는 1~3급 장애인 우대혜택 유지, 신청 편의성 등을 고려해 장애정도 기준으로 활용하겠다는 계획이다.

뿐만 아니라 공단은 등급 간 사각지대에 놓여 서비스를 받을 수 없었던 장애인들을 발굴하고 읍·면·동 등으로 찾아가는 상담을 확대할 방침이다. 장애인 전담 민관협의체를 시군구에 설치해 복지수혜 대상을 늘릴 방침이다.

세부적으로 장애인 등록 심사 과정을 보면, 추가심사가 없던 현행 제도에서 장애인연금, 보행상장애, 장애인의무고용 등 3가지 추가심사를 진행한다. 추가심사는 장애 정도 판정 시 자동으로 연계, 결정되도록 장애심사절차를 마련해 업무 효율화를 도모하겠다는 게 공단 측 설명이다.

공단은 장애인 서비스 적격조사를 위해 장애인 욕구, 환경 등을 고려한 ‘서비스 지원 종합조사’를 도입했다. 그간 활동지원만을 제공했으나 활동지원을 비롯해 거주시설·보조기기·주간활동·응급안전 등 5가지 일상생활지원서비스로 범위를 확대, 장애인이 지역사회서 독립생활에 필요한 서비스를 빠짐없이 제공하는 전달체계를 강화하기로 했다. 조사대상은 2022년까지 27개 서비스로 확대할 예정이며 조사항목은 성인 36개, 아동 27개다. 같은 장애등급이라고 해도 집에서 케어만 받는 등 대외적인 활동이 적다면 욕구 등을 고려해 시간을 좀 더 할애하겠다는 것이 이번 종합조사의 취지라고 공단 측은 설명했다.

이밖에도 최소 47~최대 441시간 급여량이 장애인등급제 폐지 후 최소 60~최대 480시간으로 늘어났다. 긴급지원도 월 94시간에서 월 120시간으로 확대됐다.

하지만 공단 측은 모든 장애인들이 전등급에서 신청을 자유롭게 함에 따라 청구 인력 대비 인력 배치에 물리적 한계가 있음을 시인했다.

공단 관계자는 “1~3급에 해당하는 장애인만 약98만명이다”라며 “조사인력이 하루 3명 장애인을 돌보고 있는데 실 근무시간이 1년 평균 190시간 정도 된다”라고 말했다.

공단 관계자는 이어 “장애유형별 특성이 반영될 수 있도록 조사항목을 구성해 당사자들의 수요 욕구와 생활환경이 최대한 반영되도록 요청할 것”이라며 “이번 개편으로 기존 활동지원을 받는 장애인에게 활동지원 대상 제외 등 불이익이 없도록 조치하겠다”라고 말했다.

장애인단체, 장애인등급제 폐지가 달갑지 않다?

보건복지부에 따르면 장애인 복지를 담당하는 복지부 장애인정책국의 올해 예산이 약2조7000억원으로 장애인정책국 예산을 5000억원 가량 증액해 내년 3조원이 넘는 예산을 확보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내년 예산이 올해보다 약19%가 늘어난 격이다.

그런데 일부 장애인 단체들은 요구했던 장애등급제가 폐지됐으나 반가움이 아닌 불안과 우려를 보이고 있다. 수요자 중심의 맞춤형 복지제도가 도입되면 예산이 늘어나야 하는데 그에 걸맞는 장애인 활동지원 예산이 부족하다는 것이다.

장애인 활동지원 예산은 지난해 6907억원에서 올해 1조35억원으로 늘었지만 서비스 단가 인상과 이용 대상자 확대 등으로 개별 장애인이 받는 서비스는 별반 차이가 없다고 주장했이. 약9만4000명에 달하는 장애인이 복지 서비스를 신청할 것으로 예상되지만 정부는 약8만8000명에 대한 예산 확보를 했다는 게 장애인계의 목소리다.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이하 전장연)은 <여성신문>과 통화에서 “장애인등급제 폐지 자체를 반대하는 것은 아니고 몇 가지 우려 사항이 있어 비판적인 입장”이라며 “장애인등급제 예산이 대폭적으로 늘어나지 않는 이상 장애인등급제 폐지는 '껍데기'에 둔갑한 것에 불과하다”라고 말했다. 정부 임기 내 장애인 예산이 2022년까지 국민 총생산 대비 OECD평균 약8조원까지 증액돼야 하는데 예산은 한정지은 채 제도 외형만 바꾼 그 부분을 비판하는 것이라고 그는 설명했다.

이 관계자는 이어 “작년 2조2000억원에서 올해 2조8000억원으로 보건복지부의 장애인 정책 예산이 확대된 것은 맞다”라면서 “다만 예산 증액 많은 부분이 최저임금 인상에 따른 활동보조서비스 수가 인상이 대부분이라 장애인 당사자와 가족들이 체감할 수 있는 변화가 없다”라고 강조했다.

장애인등급제가 폐지됨에 따라, 활동지원 서비스에 대해  신청자격이 있던 기존 1~3급 장애인에서 모든 등록 장애인으로 대상이 확대돼 예산상 서비스 수급까지 이어지기엔 어렵다고 전장연은 보고 있다. 보건복지부가 집계한 올해 활동지원서비스를 받을 수 있는 장애인 수가 8만1000명인데, 정부가 실시한 장애인 실태조사로 추정하면 약38만명이 활동지원서비스를 필요료하는 중증장애인으로 조사됐다는 것이다.

이밖에도 장애인 중에서도 이중차별을 겪는 여성 장애인들에 대한 관심을 촉구해야한다는 의견이 나오고 있다. 여성 장애인이 고용 등 사회활동 영역에서 장애 남성보다 상대적으로 차별적 상황에 놓여져 장애 여성들의 낮은 고용률과 실업률로 빈곤하게 살아가고 있다는 사실은 각종 통계자료로 확인되고 있다는 것.

장애인 단체 관계자는 “정부나 지자체가 장애 여성 정책에 접근하는 방식이 모성권을 중심으로 한 양육지원 등으로 제한적이다”라며 “장애 여성이 아이를 출산했을 경우 활동지원서비스만 해도 출산 이후 추가 지원이 6개월까지만 지원돼 한정적이라 부족한 것이 사실”이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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