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예술이 젠더를 말하다’ 열려
성평등 주제로 한 시민 참여 행사
여성문화예술연합 등 9곳 참여
예술계 내 성폭력 문제 알리고
일상 속 성불평등
글과 그림으로 소통

 

부산문화예술계반성폭력연대가 6일 대학로에서 열린 '문화예술이 젠더를 말하다' 캠페인에서 성폭력피해 발생 시 대응할 수 있도록 키트를 만드는 행사를 진행했다.
부산문화예술계반성폭력연대가 6일 대학로에서 열린 '문화예술이 젠더를 말하다' 캠페인에서 성폭력피해 발생 시 대응할 수 있도록 키트를 만드는 행사를 진행했다. ⓒ서원 작가

“살아 있어줘서 고마워요”, “피해자다운 것은 없다”, “미투 이후의 삶을 함께 상상할 수 있기를”,

“내가 문단에서 얼마나 무서운 사람인지 아느냐”, “예술을 하려면 탈선을 해야 한다”,
“원래 남자 작가랑 여자 편집자는 그런 관계야”

6일 오후 서울시 종로구 대학로 이음 한국장애인문화예술원 일대에서 열린 성평등 문화 캠페인 ‘문화예술이 젠더를 말하다-시즌3’에서 각 예술 단체가 마련한 부스를 돌아다니다보면 만날 수 있는 문장들이다. 왜 이런 문장들이 나왔을까. 성폭력 피해를 입은 여성들을 지지하고 기울어진 성 의식과 만연한 성폭력 문화를 사람들에게 알리기 위해서다. 성평등한 세상을 만들기 위한 과정이다.

‘양성평등주간’(7월1~7일)을 맞아 열린 이 행사는 (사)여성문화네트워크가 주최하고 여성신문사가 주관하며 문화체육관광부가 후원했다. 여성주의 예술가 그룹 연대체 여성문화예술연합(WACA)과 공동 기획했다. 우리 사회 성불평등한 문화를 허물기 위해 문화예술단체 9곳이 손을 잡았다. 낮 기온이 35도가 넘는 뜨거운 여름 날씨에도 대학로를 찾은 시민들은 부스 행사와 워크숍에 직접 참여하며 높은 관심을 보였다.

이번 행사를 공동기획한 여성주의 예술가 그룹의 연대체 ‘여성문화예술연합(WACA)’은 이날 ‘Smash the patriarchy’(가부장제를 부수자)라는 주제로 워크숍을 마련했다. 참가자들에게 문화예술·대중문화에 나타난 여성혐오에 관한 내용을 메모지에 적도록 하자 다양한 내용들이 쏟아졌다.

6일 오후 서울시 종로구 대학로 이음 한국장애인문화예술원 일대에서 열린 성평등 문화 캠페인 '문화 예술이 젠더를 말하다'에서 시민들이 부산문화예술계반성폭력연대가 연 부스에서 성폭력피해 발생 때 대응할 수 있는 키트 제작에 참여하고 있다. ⓒ서원 작가
6일 오후 서울시 종로구 대학로 이음 한국장애인문화예술원 일대에서 열린 성평등 문화 캠페인 '문화 예술이 젠더를 말하다'에서 시민들이 부산문화예술계반성폭력연대가 연 부스에서 성폭력피해 발생 때 대응할 수 있는 키트 제작에 참여하고 있다. ⓒ서원 작가

시민들은 ‘(일본 만화) 짱구 엄마는 여보 식사하세요 라고 말하지만 짱구 아빠는 반찬이 이게 뭐야 라고 말한다’, ‘여성 캐릭터는 메이크업 방식으로 결정된다’는 등의 문구를 썼다. 중학생 이지현(15) 양은 “웹사이트에서 여자 아이돌을 검색하면 몸매에 관한 게시물이 많이 나오는 게 불편하다”고 했다.

문단 내 성폭력에 대응하기 위해 결성된 ‘우롱센텐스’는 시민들과 문장을 완성하는 모자이크 작업을 했다. 왜곡된 성관념 문장이 적힌 스티커를 시민들에게 고르게 한 다음 찢어 ‘WRONG SENTENCE #다른 세상을 상상하라 #우리가 문학이다’라고 써진 문장에 붙여 완성하는 작업이었다. ‘예술을 하려면 탈선을 해야 한다’, ‘내가 문단에서 얼마나 무서운 사람인지 아느냐’, ‘글 쓰려면 성적인 일탈을 해야지’ 등이 쓰인 스티커가 있었다.

김다혜(28), 임재석(29)씨 커플은 ‘너가 나의 뮤즈다’ 스티커를 골랐다. 김씨는 “뮤즈라는 단어가 싫다. 남자가 어떤 미의 기준을 만들어서 그렇게 부르는 것이라고 생각한다”고 했다. 임씨는 “뮤즈라는 단어가 꼭 아니어도 감명을 받을 수 있는 건 많다. 그런 생각을 제고해야 된다”고 했다.

페미니즘 소모임 ‘오픈 페미니즘’은 미디어 속 여성과 현실 속 여성의 옷차림에 대해 비교하는 자리를 마련했다. 시민들에게 최근 본 드라마나 영화, 연극, 뮤지컬, 애니메이션 등을 고르게 한 뒤 해당 작품의 여성 캐릭터와 본인의 현재 모습을 각각 설문지에 그림을 그리게 했다. 미디어 속 여성이 현실의 여성보다 머리·옷 스타일이 대체적으로 화려했다. 최근 개봉한 영화 ‘알라딘’의 여성 캐릭터 자스민을 그린 시민들이 많았다.

페미니즘 소모임 '오픈 페미니즘'이 서사매체 속 여성 옷차림과 성격에 대해 묻는 설문지. 응답자들은 자신이 최근에 본 매체 속 여성 캐릭터와 현재 자신의 옷차림을 각각 그림으로 그렸다. ⓒ김진수 여성신문 기자
페미니즘 소모임 '오픈 페미니즘'이 서사매체 속 여성 옷차림과 성격에 대해 묻는 설문지. 응답자들은 자신이 최근에 본 매체 속 여성 캐릭터와 현재 자신의 옷차림을 각각 그림으로 그렸다. ⓒ김진수 여성신문 기자
‘오픈 페미니즘’이 6월말 대학생 80명을 상대로 조사한 같은 내용의 설문 결과를 토대로 미디어 속 여성과 현실 속 여성의 모습을 사진으로  미디어 속 여성은 긴 머리에 치마에 굽 있는 구두를 신고 있는 반면 현실 속 여성은 앞머리가 짧은 단발에 긴 바지에 운동화를 신고 있었다. ⓒ김진수 여성신문 기자
‘오픈 페미니즘’이 6월말 대학생 80명을 상대로 조사한 설문 결과를 토대로 미디어 속 여성과 현실 속 여성의 모습을 각각 사진으로 표현했다. 미디어 속 여성은 긴 머리에 치마에 굽 있는 구두를 신고 있는 반면 현실 속 여성은 앞머리가 짧은 단발에 긴 바지에 운동화를 신고 있었다. ⓒ김진수 여성신문 기자

‘오픈 페미니즘’은 6월 말 대학생 80명을 상대로 같은 내용의 설문 조사를 했다. 결과를 토대로 미디어 속 여성과 현실 속 여성의 모습을 각각 사진으로 표현했다. 미디어 속 여성은 긴 머리에 치마에 굽 있는 구두를 신고 있는 반면 현실 속 여성은 앞머리가 짧은 단발에 긴 바지에 운동화를 신고 있었다.

이날 설문에 참여한 김지영(25)씨는 미국드라마 ‘기묘한 이야기’의 여성 캐릭터 '일레븐'을 그렸다. 그는 “폭력적인 장면이 있는 영화는 안 보려고 한다”고 했다. 동갑친구 임진희씨는 “(영화에) 여자가 많은 것만 본다”고 말했다.

‘페미니스트 디자이너 소셜 클럽(FDSC)’은 ‘당첨! 여성 디자이너’라는 주제로 복권을 긁는 행사를 마련했다. 지난 3월 그래픽 디자이너 신인아씨가 141명의 디자이너와 114개의 기업(3인 미만 사업장 제외)의 정보를 토대로 한 조사에 따르면 여성 디자이너는 직급이 올라갈수록비율이 적었다. 일반 사원 디자이너와 대리 및 주임급 디자이너는 각각 76%였다. 중간 관리자급 디자이너는 55%로 떨어졌고 임원급 디자이너는 26%에 그쳤다. 복권을 긁으면 각 직급의 여성 디자이너 성비를 알 수 있다.

예술가, 디자이너 연구가들이 모인 ‘리슨투더시티’는 2016년부터 지난해까지 문화예술계에서 제도적으로 성폭력 문제를 예방하기 위해 만든 자료들을 시민들이 가져갈 수 있게 했다. ‘해외 문화예술계 행동강령 사례’, ‘지금, 미술계에는 어떤 표준계약서가 필요한가?’ 등의 자료를 시민들이 직접 고르게 한 뒤 책처럼 하나로 묶어 가져갈 수 있게 했다.

부산문화예술계반성폭력연대는 시민들이 속한 공동체나 조직, 주변에서 성폭력피해가 일어났을 때 대응하는 방법이 담긴 키트를 만드는 자리를 마련했다. 성폭력의 개념을 알려주고 성폭력이 발생했을 때 해결방안과 피해 상황, 가해자들의 사회적 지위·소속을 쓸 수 없는 키트를 만들어 문제 해결 시 도움을 줄 수 있게 했다. 이 단체의 송진희 활동가는 “단지 작성하는 게 아니라 일상생활에서 사용했으면 하는 바람에서 했다”고 말했다.

 

배우다컴퍼니 소속 배우들과 피아니스트가 6일 대학로에서 낭독 버스킹 퍼포먼스 "여:詩(시)"를 하고 있다. 왼쪽부터 최고은씨, 최미향씨, 송원씨. ⓒ김진수 여성신문 기자
배우다컴퍼니 소속 배우들과 피아니스트가 6일 대학로에서 낭독 버스킹 퍼포먼스 "여:詩(시)"를 하고 있다. 왼쪽부터 최고은씨, 최미향씨, 송원씨. ⓒ김진수 여성신문 기자

예술계 성폭력에 대항하기 위한 만든 예술인들의 연대체 여성예술인연대(AWA)는 가정폭력과 관련한 단어들로 매니페스토(선언) 블록을 만드는 시간을 열었다. 가정폭력 관련 기사와 자료 등에서 뽑아낸 ‘불안’, ‘폭력’, ‘가정’, ‘관계’ 등을 조합해 문장을 만드는 자리였다. 유재인 AWA 대표는 “시민들이 블록을 통해 가정폭력에 대해 떠올릴 수 있다. 페미니즘을 말하면 공격당하는 분들도 있다 보니 밝은 기획을 하고 싶었다”고 했다.

배우들이 여성과 관련한 시를 읽는 자리도 있었다. 전라북도 전주에서 활동하는 예술단체 배우다컴퍼니의 배우 송원, 최미향은 김승희 시인의 시‘엄마의 발’, 미국 시인 엘라 휠러 윌콕스의 시‘고독’등을 낭독하는 퍼포먼스를 했다. 단체 소속 피아니스트 최고은씨는 배경음을 연주했다. 이들 셋은 배우다컴퍼니 소속 여성 유닛팀 ‘여:時(시)’소속이다. 역사 속에서 지워진 여성 시인들의 시를 거리에서 읽는다. 송씨는 “여성 예술인들이 밖으로 나가서 줄 수 있는 메시지가 무엇이 있을까 고민했다”며 “여성 예술인들의 이야기를 하고 싶었다”고 했다.

(사)여성문화네트워크 유슬기 팀장은 “문화 예술 종사자들이 성평등과 젠더이슈를 자신들의 방법과 작품으로 풀어내 일반인과 서로 공유하고 공감을 이끌어 내는 것이 차별화된 행사”라며 “우리 사회가 풀어내야 하는 젠더이슈를 함께 공유하며 일반인들이 무겁지 않게 마주할 수 있는 문화예술 프로젝트로 자리 잡았으면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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