탁현민 위원, 박상기 장관
어떻게 이해할 수 있나?

이해와 용서 요구하는 것은
권력 쥔 자들의 특권이다

 

지난 6월 12일 박상기 법무부 장관이 1년 6개월 간 진행된 검찰 과거사위원회의 활동 종료와 그 결과를 브리핑하는 기자회견을 진행했다. 기자회견장은 텅 비어있었다. 아무런 질문도 받지 않겠다는 박상기 법무부 장관의 입장에 출입 기자단이 기자회견을 보이콧한 것이다. 법무부의 입장문은 과거사위의 목적이 무색할 정도로 너무도 간소하다. 1년 6개월 동안 진행된 과거사위원회 활동은 허무하게 끝나버렸다. 박상기 장관도 입장문에서 유감이라고 밝히며 국민들의 깊은 이해를 부탁했다.

이해를 구하는 사람이 여기 또 있다. 탁현민 대통령 행사기획 자문위원이다. 그는 유튜브방송 ‘유시민의 알릴레오’에 출연하여 여성혐오 발언에 대한 입장을 밝히며 “제가 느끼는 감정은 일단은 죄송합니다, 그런데 진짜 어쩌라는 건지 잘 모르겠다”고 말했다. 할만큼 한 본인의 처지를 이해해달라는 것이다.

탁현민 자문위원과 박상기 장관을 이해하기 위해 노력해보았다. 탁위원은 개인적으로 억울할 수도 있을 거라는 생각까지 해봤다. “룸살롱 아가씨는 이야기를 해야 하니까 너무 머리 나쁘면 안 되겠다”, “가슴없는 여자가 탱크톱 입는 것은 테러”라고 말하는 등의 여성혐오적 발언을 활자로 남긴 것이 무슨 그렇게 큰 흠결인가 싶기도 하겠다. 부족한 성인지 감수성은 탁위원만의 문제가 아니다. “돼지발정제” 홍준표도 대선 후보로 출마하지 않았는가?

여기까지 애써보다가 포기했다.

탁현민 자문위원이 ‘알릴레오’에 나온 것처럼 생각한다면 그는 지금 당장 모든 자리에서 물러나야 한다. 여성비하적 발언을 했던 자가 대통령 자문을 맡고 행사 기획을 한다는 게 가당키나 한 것인가? 이것이 여성 혐오적 발언이 아니라 반민주주의 발언이나 친일 발언이었다면 이해될 내용이었을까?

탁위원이 정말 국민께 죄송하다면 현재 진행하고 있는 여성신문에 대한 본보기식 제소를 취하해야 한다. 그리고 여성혐오적 발언으로 출판한 책의 인세나 수익을 가늠하여 여성단체에 기부를 해야 한다. 또한 대통령 자문위원으로 나서지 않고 일선에서 물러나 조용히 지내며 젠더 감수성을 높이기 위한 성인지 교육을 받아야 한다. 그 과정이 반성이다. 제대로 반성해야 이후에 또 다른 길이 열린다. 이대로 대중 앞에 나서며 “어쩌라는 건지” 되묻는다면 본인에게 ‘여성혐오 발화자’라는 꼬리표가 계속 달릴 것이다.

박상기 장관은 노무현 정부 시절에 사법제도 개혁추진위원회 위원으로 활동하고 한국형사정책 연구원장이기도 했다. 학자 출신의 비법조인이기 때문에 검찰개혁을 잘 이끌 것이라는 평을 받았다. 과거사위 발족 당시에는 “더 나은 미래를 위해서 검찰이 스스로 과거의 잘못을 찾아내 진실을 규명하고 이에 대한 진정한 반성을 통해 다시 태어나야 한다”고 밝히기도 했다.

그런데 왜 결과는 이렇게 났나? 무능한 것인가, 의지가 없는 것인가? 둘 다인가?

어느 쪽이든 박장관은 국민에게 이해를 바라면 안된다. 사죄하고 무릎을 꿇을 일이다. 차라리 솔직하라. 왜 법무부가 과거사 규명에 실패했는지를 국민 앞에서 소상히 설명하고 법무부 장관이 나서서 특검을 설치하겠다는 등의 의지를 밝혀야 한다.

탁위원과 박장관의 입장을 생각하며 상대에 대한 이해는 어렵다는 것을 다시 한번 깨닫는다. 오죽하면 동서양할 것 없이 경전을 통해 상대를 이해하고 배려하고 용서하라는 위대한 가르침을 전파할까. 그러나 한편으로는 이해와 용서를 요구하는 것은 권력을 쥔 자들의 특권이다. 목소리 없는 약자들은 그 요구조차 하지 못한다. 소리치고 외쳐도 묵살당할 뿐이다

박상기 장관의 기자회견이 11일 지나고 용산참사 철거민 김모씨는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밀양 송전탑 사건도, 김학의 사건도 진실이 규명되지도, 피해자의 억울함이 풀리지도 않았다. ‘장자연 리스트’ 존재와 장씨의 성폭행 피해 의혹에 대해 진상 규명이 불가능하다고 결론 내렸다. 법무부와 검찰은 무엇을 했는가.

탁현민 전 행정관이 사의를 표명했을 때 청와대 핵심관계자는 탁 행정관의 복귀를 바란다며 그것이 “인간에 대한 예의”라고 말했다. 잘못으로 인해 규탄받고 사의를 표명한 행정관이 한달도 안돼 청와대 자문위원으로 다시 돌아가는 것이 인간에 대한 예의라면, 공권력 남용으로 인해 십 수년 간 고통 받고도 원래의 삶으로 돌아가지 못하는 과거 사건의 피해자들에 대한 예의는 어디에 있어야 하는지 현 정부는 고민해 보길 바란다.

신지예 녹색당 서울시당 공동운영위원장 ⓒ이정실 여성신문 사진기자
신지예 녹색당 공동운영위원장 ⓒ이정실 여성신문 사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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