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슴 속의 말을 다 하고 사는 사람은 없다. 인간관계를 무난하게 유지하고 미움이나 따돌림을 받지 않기 위해 다들 할 말이 있어도 참고, 하기 싫은 일도 한다. 우리문화의 집단주의는 남들 하는 대로 하라고 가르치고, 위계질서는 윗사람에게 ‘말대꾸’하지 말라고 명령한다. 그런데 어디까지 참아야 할까? 너무 참으면 화병이 난다. 부당한 일에 맞서지 못해 정의가 훼손되기도 한다. 소위 갑을관계에서 일어나는 수많은 일들이 모두 그 예다. 

가끔 이 답답한 상황을 깨는 사람이 있다. 그 한 사람의 용기가 변화의 시작이 되어, 주위 사람들도 바꿔놓고 문화의 혁신을 초래하고 정의를 세운다. 조약돌 하나가 연못에 수많은 파문을 일으키듯이. 1960년대 미국의 역사적 흑인 인권운동은 백인에게 자리를 양보하고 버스 뒤로 가라는 기사에게 “노!”라고 말한 한 승객에서 시작되었다. 백화점 점원으로 일하는 중년여성 로자 파크스였다.

어느 대학원생이 담배 좀 사다달라는 지도교수에게 “선생님, 그 심부름은 해드릴 수 없습니다. 선생님만은 그러시면 안 됩니다”라고 했다. 그 학생이 무사했을까? 교수는 자기가 잘못했다고 바로 사과하고 그렇게 말해줘서 고맙다고까지 한 후, 바삐 하던 일을 내려놓고 담배를 사러 나갔다. 그 일로 교수는 학생을 더 소중히 여겼고, 그 후로 수십 년 두 사람은 더없이 가까운 사제간으로 지내고 있다. 그 학생은 다른 교수들의 담배 심부름은 부당하다고 생각하면서도 한 적이 있었다. 하지만 자기가 진심으로 좋아하는 그 젊고 민주적인 선생님만은 그러지 않기를 바라 충언을 했고, 그 충언이 통했다.

한 신입사원은 오늘 회식할 것이니 오라는 권위적인 부장에게 어제 술을 너무 먹어 오늘은 먹기 싫다고 하고 그냥 집으로 가버렸다. 부장은 그런 경우를 처음 당해서 당황했고, 직원들 많은 데서 또 그런 거절을 당할까 봐 그랬는지 더는 그에게 회식에 오라는 명령을 하지 않았다. 그 후로 오랫동안 이 이야기가 회사에 떠돌았다고 한다.

신혼의 한 여성이 시집이라는 복병을 만나 억울한 일이 쌓이고 신랑과 싸움이 잦아지는 이야기를 잔잔하게 그린 ‘며느라기’라는 만화를 보았다. 주인공은 착한 마음으로 시집 일에 참고 봉사하지만, 자기를 지키지 못하는 것이 갈수록 속상해진다. 반대로 큰 동서는 주관을 지키면서 일찌감치 시어머니를 실망시키고 자신의 정신건강을 유지하며 살고 있다. 제사에 참석하지 않을뿐더러, 시집 제사 준비가 며느리 둘이 나눠서 할 일이 아니라서 작은 동서에게 미안한 마음도 없다고 말한다. 그런가 하면 새로 가족이 된 동서에게 친절히 대해 주는 사람이기도 하다. 인터넷 댓글에는 이 형님의 인기가 대단했다. “형님이 사이다”, “언젠가는 이 형님 말이 멋진 게 아닌 당연한 것이 되는 시대가 도래하길” 등.

‘12가지 인생의 법칙’이라는 베스트셀러의 저자인 심리학자 피터슨은 “부당한 일을 당했을 때 초기부터 단호히 거부하고 의사를 분명하게 밝히면 가해자는 심리적으로 위축되고 행동에도 제약을 받는다”면서 적극적으로 자기의 진실을 말하라고 권했다. 나는 평소에 온순하고 용기가 부족한 사람이라 부당하다고 생각해도 그냥 참고 넘어가는 적이 많다. 그러나 가끔 이건 정말 아니다 싶을 때는 용기를 끌어모아 “아니요!”라고 말해 보기도 했다. 내 시도는 때로는 원하는 결과를 때로는 불리한 결과를 가져왔지만, 아직 크게 낭패 본 적은 없다. 작은 정의라도 세운 듯 의외로 재미가 쏠쏠한 적이 더 많았다. 무엇보다도 내가 시도를 했다는 그 자체가 결과와 무관하게 심히 만족스러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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