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47차 윈(WIN)문화포럼서 특강
등단 70주년…시 1000여편 써
“좋은 신앙시 쓰고 싶습니다”

김남조 원로시인‧숙명여자대학교 명예교수
김남조 시인이 20일 서울 강남구 더 리버사이드호텔에서 열린 제47차 WIN문화포럼에서 ‘삶의 축복’을 주제로 강연하고 있다.
김남조 원로시인‧숙명여자대학교 명예교수
김남조 시인이 20일 서울 강남구 더 리버사이드호텔에서 열린 제47차 WIN문화포럼에서 ‘삶의 축복’을 주제로 강연하고 있다.
김남조 시인이 20일 서울 강남구 더 리버사이드호텔에서 열린 제47차 WIN문화포럼에서 ‘삶의 축복’을 주제로 강연하고 있다.

김남조 숙명여대 명예교수가 6월 20일 서울시 강남구 신사동 더 리버사이드호텔에서 열린 윈문화포럼에서 ‘삶의 축복’이라는 주제로 강의했다. 올해 92세로 등단 70주년을 맞은 김 시인은 1927년 대구에서 태어나 일본 규슈에서 여학교를 마치고 서울대 사범대 국어교육학과를 졸업했다. 숙명여고, 이화여고 등에서 교편을 잡은 뒤 1955년부터 1993년까지 숙명여대 교수로 일했다. 한국시인협회 회장, 한국여성문학인회 회장 등을 역임했으며 현재 숙명여대 명예교수, 대학민국 예술원 회원이다.

첫 시집 『목숨』(1953)으로 시작해, 『나아드의 향유』(1955), 『정념의 기』(1960), 『귀중한 오늘』(2007) 등의 시집을 비롯해 140여권의 저서가 있는 다작 시인이다. 김 시인의 작품세계는 ‘기독교적 심연 가운데서 자아성찰, 인간성과 생명의 본질에 대한 탐구를 보여주며 갈수록 ‘더욱 심화된 신앙의 경지를 보여준다’고 해석된다(한국현대문학대사전. 권영민 문학평론가).

윈문화포럼 특강에서 김 시인은 강의라기보다 “좋은 분들과 살아가면서 느끼는 좋은 이야기를 나누고 싶다는 마음에서 강의를 수락했다”면서 “앞으로는 강의를 하기 힘들 것 같다”고 말했다. 김 시인은 이날 특강에서 나이듦과 함께 “시야가 달라지고 생각이 달라진다”면서 나이가 들고 보니 “세상은 훨씬 크고 넒고 깊더라”고 말했다.

강의 주제인 ‘삶의 축복’과 관련해서는 “인류가 오랫동안 축적해놓은 풍요로운 문화를 향유하는 것 자체가 큰 축복”이라고 말했다. 기독교의 세계를 천착해온 김 시인은 자신의 문학의 주제어는 신앙시이며, 앞으로도 “좋은 신앙시를 쓰고 싶다”고 말했다.

김 시인의 시 「좋은 것」 중 발췌된 시구가 교보생명 건물의 광화문 글판 여름편에 선정돼 걸려있다. “읽다 접어둔 책과 막 고백하려는 사람의 말까지 좋은 건 사라지지 않는다.”

다음은 강연 내용이다.

<김남조 시인 강연록/ '삶의 축복' 2019.6.20. WIN문화포럼 47차특강>

저는 93세라고 했는데 만으로는 92세라고 늘 말합니다. 하루가 8만 6400초입니다. 우리는 8만 6400가지의 생각을 할 수 있습니다.

오늘의 저의 인생만큼, 이 나이에서 할 수 있는 이야기를 해야 된다고 생각합니다.

이 세상에 사랑이라는 게 여러 가지가 있습니다. 제가 1000편 가까이 시를 썼습니다. 19권의 시집을 내고 다른 것도 썼습니다만 많이 쓴 건 사랑이었습니다. 사랑이라는 것은 모든 곳에 다 있는 것이고 음식에 소금이 필요하듯이 사랑이 없는 행동이 있을 수 없습니다.

또 사랑이 얼마나 다양하며 저희들도 느끼는 사랑의 강도, 사랑에 대한 해석도 달라집니다. 제가 여기에 『충만한 사랑』이라는 책을 가져왔고 한 두 편의 시들도 읽을까 합니다. 여기에 ‘순교’라는 시가 있습니다. 순교장에 나온 예순님이 뭐라고 했겠습니까. ‘고통은 순교를 생각할 때, 불가능한 일인데 주님이 계심으로 가능하다’, ‘가능하기에 이른다’라고 하는데 저는 좀 다르게...제가 뭔가를 다르게 보기 때문에, 다르게 보고 있는 오늘의 내가 보는 것을 여러분들게 말씀드려야 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이야기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현 시각의 진실이라고 생각합니다.

제가 이 책을 2~3년 전에 낼 때 순교현장에 나온 예수님이 이렇게 이야기 하는 겁니다. ‘하느님께서/순교 현장의 순교자들을 보시다가/기어이 울음을 터뜨리셨다/나를 모른다고 해라/(중략)/나의 고통이 부족했다면 / 또 다시 십자가에 / 못 박히겠다고 해라’('순교')

(제가) 90이 넘어서 오늘 보는 하느님은 완강한 분이 아닙니다. 위험에 가득 찬분이 아니라 우리처럼 발벗고 헐벗고 추우면서 배고픈 날 배고프면서, 우리와 함께 삶을 시시각각 나누는 분입니다.

‘오늘 예수님이 순교장에 오면 무슨 말을 할까’, ‘오면 무슨 말을 할까...첫째 말은 못 참겠다고 해라..그리고 살고 싶다고 해라. 내가 십자가에 치른 고통이 부족했다면 또 다시 십자가에 못 박히겠다고 말을 해라’ 내가 나이 먹고 보니 세상이 크다는 거, 깊다는 거 그만큼 심각하고 아프다는 걸 느낍니다.

여기에 다른 시도 읽어볼까요? ‘빈 의자’ 같은 건 사랑 이야기입니다. 여러분 사랑 이야기 좋습니까? 전에는 땅에 깔린 것, 그게 낙엽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그게 낙엽이 아니고 자기가 돋아 올랐고 줄기에서 물을 흡수했고 가지를 통해서 거기에 몸을 붙이고 살던 뿌리, 거기서 자기가 떨어져 나오는 거예요. 그래서 하늘에서 떨어지는 것, 낙엽. 결연하게 다짐하고 결심하고 툭 떨어지는 것.

제 바깥사람이 뭘 한다고...조각인가 한다고 작은 미술관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장동호(조각가)라는 이 세상을 떠난 사람의 유품을 전시하는데 아주 많이 사람이 왔습니다. 2000명 정도 됐습니다. 저는 그 사람 작품 앞에서, ‘예술이라는 걸 이런 걸 뛰어넘는 것이구나’라는 걸 느꼈습니다. 모든 기독교, 모든 천주교에서 주님의 상징을 십자가로 하는데, 그 사람은 주님의 상징을 못으로 했어요. 그 사람의 모든 작품은 못이 있습니다.

저는 평생에 좋아하는 계절이 여럿 있습니다. 어떤 것은 시의 계절이고 어떤 건 계절이다. 제가 제일 좋아하는 니코스 카잔차키스라고 희랍(그리스)의 소설가입니다. 그 분은 정말 사상가이고 철학자고 천재 소설가이고 시인이고 수필가입니다. 그의 마지막 수필 한 구절에 신이 ‘나 좀 도와주게’라는 구절이 있습니다. ‘하느님이 우리한테 와서 나 좀 도와주게.’ 왜냐면 나는 너를 돕고 싶으니까. 너를 구원하고 싶으니까. 의사가 환자를 고치려면 환자가 협조해야 하지 않습니까? 신이 풀과 나물와 이슬에게도 ‘나 좀 도와주게’라고 하신다고. 온 세상이 하느님이 전하는 ‘나 좀 도와주게’ 이 말로 가득 찬 겁니다. 그런 걸 처음에는 몰랐다가 80이 되고 90이 되면 알게 됩니다.

예수님과 막달라 마리아의 이야기입니다. 저는 그리스도와 막달라 마리아가 나의 문학의 수원지라고 말합니다. 저는 그리스도 같이 정말 제 영혼 속에 크게 절실하게 들어오신 분은 없었어요. 막달라 마리아처럼 저에게 매혹적이고 어떤 의미에서는 고통스러운 여자도 없습니다. (제가) 막달리나 마리아라는 시도 가져 왔습니다. 정확하진 않지만 막달라 마리아는 일곱 귀신이 들었다.(는 말이 있죠) 막달라 마리아의 기도는 참회예요.

(막달라 마리아가) 그리스도가 세상을 떠나시기 전에 기름을 발에 묻히고 검은 머리를 물에 적셔 (그리스도의) 발을 닦아드렸습니다. (그리스도는) 나의 장례를 미리 준비한다고 하고, 이 세상에 내 이야기가 전해지는 모든 곳에 이 여자의 이야기를 아울러 전하라고 (했다고) 성경에 나와 있습니다.

우리는 사랑할 때 특히 한국 남자는 부모의 교육으로 평생 부인에게 사랑한다는 말을 안해야 제대로 된 양반집 자식이었습니다. 서양 사람들은 아침 저녁으로 (사랑한다는 말을) 하다가 정말 그게 안 될 때는 헤어지고.

우리 집 남편은 나중에 보니 좋은 사람이었습니다. 미술대학 같은데 그림 방이 없어서 늦게까지 자기 조그만 교수실에서 흙도 만지고 그러는 거예요. 12시 통행금지시간에 딱 들어옵니다. 서울대학 미술대학이라는데, 특히 조각과 학생들이 자료가 많이 들면 도와주기도 하고 술값도 내고. (남편이) 나중에 보니까 여러 가지로 훌륭한 사람이었어요.

제가 굉장히 사랑시를 많이 썼죠. 사랑시로 인해서 책도 많이 팔리고, 사랑이라는 게 오늘은 사랑 시를 하나도 안 가지고 왔는데 책에는 있습니다만. ‘사막’이라는 시를 18편을 썼습니다. LA에 갔다가 네바다 사막을 자동차로 지나가게 됐는데 충격을 많이 받습니다.

'솔기 없는 이불을/빛의 가위로 실금 하나 열어/저편 노을이 길게 누워온다/그가 말한다/그대도 쉬고 싶거든 /예와서 누워라 /이 말이 좋다 / 내 노년기 깊은 이 시절엔/누워 벗하며 멈춘 바람처럼 쉬자는 말이/오로지 황홀하다/(중략)/성서의 한 구절 같다'('사막13')

‘상사병’이라는 시를 읽어볼게요. '웅장하던 사막도, 지평선으로 노을이 질 때, 노을이 땅에 와서 깔리면서 눕는 거예요./너도 쉬고 싶으면 옆에 와서 누워라. 나는 이 말이 좋아요./불치의 내 상사병/백년세월에도 못 고치는 만성질환이/죽을 죄로 부끄럽습니다/철거덕 철거덕 철로 위를 달리는/무쇠바퀴 한 틀도/더러는 멈추었다 가련만(중략)/저 아득합니다/아득합니다.'

사람에게는 감성과 지성과 영성이 있습니다.지성이 뛰어나면 이들은 사상가 철학가, 감성이 뛰어난 쪽은 예술가가 많죠. 저는 젊어서부터 『카라마조프 가의 형제들』 이런 러시아 대작을 읽기에는 너무 벅찼어요. 먹혀 들어가는 것 같고...명작들을 정독을 못했습니다. 그런데 감성은 자라났죠. 감성은 자랐는데. 감성이 내게 있어서는 너무 아팠습니다. 사람이 전부 측은하게 보입니다. 모든 사람 안에 그의 비극이, 그의 슬픔이 보이는 거죠. 그의 기도가 그의 속에서 흘리는 눈물이...그렇게 보입니다. 내 삶이 뭘 했나...나는 내 삶을 통해서 뭘 했다고 써보라 하면은 뭐라고 쓰겠는가.

사람을 만났다. 사람으로 살면서 사람을 만났다는 건 가장 큰 사건이고 가장 비극적인 사건이고, 가장 운명적인 사건입니다. 이거야 말로 잠시도 놔주지 않는 쇠고랑 같은 그런 거죠. 그런데 그 안에서 우리는 얼마나 많은 걸 배웠고 얼마나.

우리 문인들이 이야기할 때 우스운 이야기입니다. 사랑하는 남자가 있는데 사랑하지 않고 집에 열심히 들어오는 남편이 있고, 사랑은 하지만 통 볼 수 없는 애인 중 어느 게 더 좋으냐고 했습니다. 그게 참 이상하다. 젊은 사람들은 대개 잘 못 봐도 사랑이 극진한 사람을 생각합니다. 나이가 들면 그게 아니에요. 어쨌든 집에 들어와서 저녁을 먹고...젊었을 때는 배가 고파도 그 사람 한 번 보면 열흘을 굶겠다고 합니다. 지금은 한끼도 굶는 건 어렵습니다. 한 끼는 몰라도...하루 굶고 그 사람 만나겠습니까? 하루는 굶고 만나야죠. 며칠까지는 되지만 인간의 본질이 아사 직전이 되면 수정이 됩니다.

제가 정지용 문학상을 지난해 받을 때 제가 ‘상 받으면 안된다’고 했습니다. 제가 상을 아주 많이 받았고...그 심사를 할 때는 그해 나온 책을 갖다놓고 뽑는데 김남조의 ‘시계’를 꼭 해야겠다는 거죠. 안 받을 거라고 거절했습니다. ‘내일까지 생각을 해주십시오’라고 해서 내일 되서 받겠다고 했습니다. (그 동안) 정지용 고향에서 시상식을 하다가 내가 할 때는 세종문화회관으로 딱 한번 올라왔어요. 제 나이에 대해 예우를 해 준 거죠.

'그대의 나이 90이라고/시계가 말한다/알고 있어, 내가 대답한다/그대는 90살이 되었어/시계가 또 한 번 말한다/알고 있다니까/내가 다시 대답한다/시계가 나에게 묻는다/그대의 소망은 무엇인가/내가 대답한다/내면에서 꽃피는 자아와/최선을 다하는 분발이라고 그러나 잠시 후/나의 대답을 수정한다/사랑과 재물과 오래 사는 일이라고/시계는 즐겁게 한판 웃었다/(중략)/시계는 쉬지 않고 저만치 가 있었다.

저는 오랜만에 강의를 했고 앞으로는 강의를 안 할 것이기 때문에...몇 년 지나면 일체 외출을 안 할까 합니다. 그래서 앉아서 보내는 시간, 서서 보내는 시간이 조금밖에 안 남은 시간이기 때문에 내가 쓰고 싶은 대로 쓰려고 합니다.

제가 제일 좋아하고 사랑하는 분은 예수님입니다. 수십 년 간 위대한 거대한 신비로운 영혼의 낚시 바늘을 던지면 거기 걸리면 평생 피할 수 없습니다. (제가) 5~6살 때 할머니들에게 예배 하는걸 봤는데 그들이 고개를 숙이고 (있었습니다.) ‘저 사람을 참 바보다.’(라고 생각했습니다.) ‘하느님을 하늘을 보고 기도를 해야 하지’라고 한 기억이 난다. 기도를 하면 절로 고개를 숙이게 됩니다. 여러분 모두 반갑고 영광으로 생각합니다. 잘 지내십시오.

 

김남조 시인이 20일 서울 강남구 더 리버사이드호텔에서 열린 제47차 WIN문화포럼에서 ‘삶의 축복’을 주제로 강연하고 있다.
김남조 시인이 20일 서울 강남구 더 리버사이드호텔에서 열린 제47차 WIN문화포럼에서 ‘삶의 축복’을 주제로 강연하고 있다.

[인터뷰] 김남조 시인

등단 70년, 지금도 신작을 쓰신다. 끊임없는 창작의 힘은 무엇인가?

“시간이 펼쳐주는 하루하루는 늘 다르게 다가온다. 새로운 동기를 제공하고 새로운 감성을 유발시킨다. 시인은 천부적인 감수성을 가지고 끊임없이 변화하는 세계를 표현해낸다. 시간의 거울 앞에 앉아 있는 것이다.”

시인은 타고나는 천재성인가?

“타고나는 재능도 있겠지만 위대한 작가들은 돌을 쪼듯이 작품들은 끊임없이 고친다. 나도 지금도 고친다. 과거에 출간했던 시전집 15권을 다시 출간한다 해서 다시 보니 고칠게 많아서 몇 줄 씩 빼기도 하고 넣기도 하면서 개정판을 준비하고 있다.

시는 어휘로 쓰는 게 아니라 뿌리까지 사유하는 힘으로 쓰는 일이며 문학적인 책임이 뒤따른다. 시인의 눈은 본질적인 것을 과민하게 포착하는 힘이다.

특강의 제목인 '삶의 축복'이란?

“태어남 자체가 축복이다. 지금 태어난 아기가 있다고 치자. 그 아기는 지금까지 축적된 문명을 값없이 누리게 된다. 다양하고 풍요로운 이 문화의 유산 속에서 성장하게 되는데 그것을 받은 자체가 큰 축복이다. 그것을 갚으려고 나름 노력하면서 살아간다. 원망하기도 하고 눈물짓기도 하면서 각자의 삶을 지피면서 살고 있다.”

행복이란 무엇일까?

무엇을 소유했다는 게 중요한 게 아니라 가치를 수반해야 한다. 행복을 찾는 능력이 중요하다. 하루하루를 고맙게 느낄 수 있고, 스스로 가치를 발견할 수 있는 능력이다. 가치있는 승리가 되길 바란다.

한국여성들의 모성애는

모성애는 동서양이 똑 같다. 한국 어머니들에게는 지난 과정에서 많은 아픔이 있었다. 전쟁으로 징병으로, 사고로 자식을 잃어야 했고, 가난한 아들이 지하철 철로에 떨어져 죽는 고통도 있었다. 고통스러운 역사와 배고팠던 과거를 거치면서 자기 자식만 생각하고 일류학교에 집착하는 과욕을 갖게 되었다. 이제는 모성이 확대되어야 하지 않겠나? 더 가난한 자식들을 품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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