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줌마, 그거 진짜 머리야?”

한의사 이유명호씨가 남강한의원이 있는 건물 복도를 지나가는데, 웬 남자가 대뜸 물었다. 그녀 뒤통수에 늘어진 꼬리머리를 가리키며. 그것도 반말로. 아는 사람? 물론 아니다. 생판 모르는 남자였다. 아는 사람이라면 물어볼 리도 없었다. 황당한 이유명호씨는 무례하기 짝이 없는 그 남자를 딱 쳐다보고 그냥 스르륵 고개 돌려 서서히 걸어갔다. 그 남자가 쳐다보건 말건. 그 남자도 좀 황당해 보라고.

~19-3.jpg

앞에는 짧은 커트 머리지만 뒷부분 일부만 길게 늘어뜨려서 자잘하게 땋은 꼬랑지머리를 한 이유명호씨에게 이런 이야긴 한 트럭이다. 머리 좀 특이하다고 별별 일을 다 겪는다고 했다. 그러나 머리 스타일뿐인가? 하긴 그녀가 좀 특이하긴 하다. 소위 중년이라고 하는 나이에다가, 말하지 않아도 왠지 권위적이고 묵직한 분위기가 풍기는 한의사 아닌가? 하지만, 꼬랑지 머리에 꽃분홍색 새파란색 연두색을 즐겨입는 데다 꽃무늬 바지만 몇 벌인지 모르겠다는 이유명호씨. 그는 사실 여성계 쪽에선 유명인사다. 워낙 마당발로 호주제폐지모임이나 한국여성장애인연합, 여성정치인경호본부, 여한의사회, 21세기 여성포럼 등에 열심인 탓도 있지만, 튀는 옷차림에 덩달아 튀는 헤어스타일 때문에 더하다.

약속이나 한 듯이 그 나이 또래나(그는 현재 만으로 마흔아홉이다) 그와 같은 직업에 종사하는 이들이 회색이나 검정색 아니면 베이지 톤의 점잖은 수트 차림 일색일 때, 꽃분홍에 꼬랑지 머리라니? 거기다 안경도 금테가 아니다. 카키빛 무색 뿔테나 컬러풀한 뿔테다. 이러니 눈에 안 뜨이려야 안 뜨일 수가 없다. 잘 아는 후배가 그녀더러 말했다. “언니는 꽃무늬도 아니고, 꽃가라야.” 그래서 붙은 별명이 바로 ‘꽃가라’다.

“제가 워낙 꽃을 좋아해요. 꽃무늬 양말에 꽃무늬 바지도 몇 개가 있어요. (한의원을 휘휘 둘러보며) 그래서 여기도 꽃무늬가 많죠? 도화살이 뻗친 색을 제가 좋아해요. 분홍, 초록, 연두색, 나뭇잎 색, 꽃색깔. (하늘색 가운을 가리키며) 가운도 연두색, 진한 꽃분홍색, 연두색 다 있어요. 색에 살아요. 후후. 그런데 여성운동 하는 이들 같은 경우엔, 꽃 그러거나 연분홍색 꽃분홍색 그러면 열등하고 나약하고 에로틱하다고 생각해서 그런지 기피했던 거 같아요. 그런데 다행히 이 색깔이 요즘은 제 모습을 찾은 거 같아요. ‘이프’에서 준 분홍색 숄 봐요. 그리고 이런 노래 있잖아요. 나의 살던 고향은 꽃피는 산골.... 복사꽃이 피는 고향 노래도 사실 자궁의 노래예요.”

그런데 왜들 그렇게 죽은 색을 사랑할까? 정장은 왜 모두 회색 아니면 검정색, 가라앉은 색 일색일까? 꽃분홍 정장은 왜 없지? 빨간색은? 이유명호씨는 딱 잘라 말했다. 당연한 거 아니냔 투로.

“이 사회에 여성이 진입하려면 드레스 코드가 있어요. 점잖고 위험하지 않고 지적으로 보여야만 하니까. 전문직 여성이나 여교수나 회사원도 모두 그런 색을 입잖아요. 여성운동하는 사람도. 아마도 여성성을 강조하는 옷을 입으면 왠지 폄하되는 것 같아서 그럴 거예요. 그래서 더 일부러 털털하게 입는 걸 테고. 그런데 그건 한쪽에서 보면 도리어 여성성을 억압하는 거 아닌가요? 어떤 사람은 그래요. TV에 나오면서 왜 그런 걸 입고 나오느냐. 정장 입지. 그런데 저 정장 한 벌도 없어요. 오래 전에 사놓은 게 있긴 있는데, 안 입어요. 그런데 왜 꼭 그렇게 입어야 해요?”

@19-4.jpg

▶‘여성정치인경호본부’ 속에서도 튀는 이유명호씨

TV쪽에서 옷을 갈아입으라거나 그러면?

“안 나가죠. 다들 그렇게 입는 건요, 우리가 군사문화, 가부장제의 수직적이고 억압적인 문화에 길들여져 있어서 그래요. 우리 모성을 많이 죽여버리는 거죠. 옷 입는 것도 맘대로 못 입게 하는 사회랑 똑같아요.”

그런데 이유명호씨는 어디서 옷을 살까? 도대체 저렇게 튀는 옷은 어디서 구할까? 한의사니까 돈 많이 벌 테고, 그럼 오일릴리나 겐조 매니아?

“저번에 어떤 사람이 대뜸 제 옷 목뒤 쪽을 뒤집어 상표를 보는 거야. 무슨 브랜드를 입었나 하는 거지. 그런데 저 백화점 안 가요. 두타나 밀리오레, 남대문서 사요. 이거 처음 말하는 건데, 브랜드는 이름도 몰라요. 그러고 보니 백화점 가본 지 꽤 오래 됐네. 만약 제가 백화점에서 옷 사 입으면 제가 여성운동 쪽에 후원금을 낼 돈도 없을 거예요.”

그럼 앞으로도 꼬리는 영원히?

“제 머리를 보고 반응하는 걸 보면 그 사람이 무례한지 안 무례한지를 딱 알 수 있어요. 제 꼬리를 보고 이걸 수용하고 인정해주는 사람과, 그걸 어떻게든 깎아내려 타박하는 부류로 나눠져요. 자르지 말란 사람과, ‘언니, 주책 맞게 그게 뭐야? 나잇값을 해야지’ 이러는 사람. 결국 자르란 소리죠 뭐. (꼬리를 가리키며) 이건 리트머스 시험지예요. 이 꼬리가 딱 사람을 알아보는 청진기라니까?”

조은미 기자cool@womennews.co.kr

저작권자 © 여성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