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운동가 이희호] 축첩자 국회 입성 반대 시위 벌이기도
[여성운동가 이희호] 축첩자 국회 입성 반대 시위 벌이기도
  • 진혜민 기자
  • 승인 2019.06.12 13:52
  • 수정 2019-06-19 09:5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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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으로 보는 여성운동가 이희호 일대기

고 이희호 김대중평화센터 이사장은 한국 여성운동 리더로 평생을 여성 인권 신장을 위해 헌신했다.

1950년 대학을 졸업한 그는 친구 김정례 등과 함께 대한여자청년단을 결성해 여성운동의 첫 발을 내딛었다. 이후 1952년 여성계 지도자들과 함께 ‘여성문제연구회’를 조직해 남녀차별 철폐운동을 벌였다.

미국 램버스대학, 스캐리대학에서 사회학 석사과정을 밟은 이 이사장은 귀국해 ‘한국YWCA연합회’의 총무를 맡아 여성운동에 더욱 앞장섰다. 이때 추진한 캠페인이 ‘혼인신고를 합시다’이다. 그는 1960년 국회의원 선거에서 ‘축접자에 투표하지 말라’는 피켓을 들며 축첩반대 시위를 했다. 그 결과, 가족법 개정을 이끌어냈고 호주제 폐지에도 영향을 줬다.

여성운동가로 기억되고 싶다고 말한 이 이사장의 일대기를 사진으로 돌아본다. 

 

◇대한여자청년단을 결성하고 외교국장을 맡다

1950년 피난지 부산에서 대한여자청년단을 결성하고외교국장을 맡아다. 대구에서 합숙하던 시절 여청 간부들과 군부대 위문공연을 갔다. (왼쪽 셋째, 뒤편 장교 앞이 이희호) ⓒ김대중평화센터
1950년 피난지 부산에서 대한여자청년단을 결성하고 외교국장을 맡다. 대구에서 합숙하던 시절 여청 간부들과 군부대 위문공연을 갔다. (왼쪽 셋째, 뒤편 장교 앞이 이희호) ⓒ김대중평화센터

◇이화여대 교정에서 사회사업학과 제자들과 함께

이화여대 교정에서 이희호와 사회사업학과 제자들과 함께한 모습. 1958년 8월 석사학위를 받고 귀국한 이희호는 이화여대 모교에 출강했다. 그는 부설 사회사업관의 관장 자리도 맡았다. ⓒ김대중평화센터
이화여대 교정에서 이희호와 사회사업학과 제자들과 함께한 모습. 1958년 8월 석사학위를 받고 귀국한 이희호는 이화여대 모교에 출강했다. 그는 부설 사회사업관의 관장 자리도 맡았다. ⓒ김대중평화센터

 ◇한국YWCA연합회 총무로 여성운동에 앞장

이희호는 1959년 1월부터 YWCA연합회 초대 총무를 맡았다. 1962년 5월 김대중과 결혼한 뒤에도 4년간 적극적으로 활동했다. ⓒ김대중평화센터
이희호는 1959년 1월부터 YWCA연합회 초대 총무를 맡았다. 1962년 5월 김대중과 결혼한 뒤에도 4년간 적극적으로 활동했다. ⓒ김대중평화센터

  ◇‘혼인신고를 합시다’ 캠페인··· 축첩자 반대 시위

1959년 1월부터 대한와이더블유시에이연합회(와이연합회) 총무를 맡은 이희호는 가장 먼저 ‘혼인신고를 합시다’ 캠페인을 벌였다. 훗날 호주제 폐지와 가족법 개정으로 이어지는 여성인권운동의 물꼬를 튼 사업이었다. 1960년 4·19 혁명 직후 5대 총선을 앞둔 7월19일 와이더블유시에이를 비롯한 여성단체연합회 회원들이 종로 거리에서 축첩 반대 시위를 하는 모습으로, ‘축첩자에 투표 말라, 새 공화국 더럽힌다’ 등 펼침막의 글씨 중에는 이희호가 직접 쓴 것도 있었다. ⓒ김대중평화센터
1960년 4·19 혁명 직후 5대 총선을 앞둔 7월 19일 YWCA를 비롯한 여성단체연합회 회원들이 종로 거리에서 축첩 반대 시위를 하는 모습이다. 1959년 1월부터 한국YWCA연합회 총무를 맡은 이희호는 가장 먼저 ‘혼인신고를 합시다’ 캠페인을 진행했다. 이러한 움직임은 훗날 호주제 폐지와 가족법 개정으로 이어지는 여성인권운동의 물꼬를 텄다. ⓒ김대중평화센터

◇에큐메니칼(Ecumenical)··· 종교의 다름을 존중했던 삶

1962년 5월 10일 이희호 여사의 외삼촌 이원순씨 댁에서 치뤄진 김대중 대통령과 이희호 여사의 결혼식. 이희호 여사는 김대중 대통령과 재혼한다.
1962년 5월 10일 치뤄진 김대중 대통령과 이희호 이사장의 결혼식. 이희호 이사장은 모태 기독교인이었다. 그러나 김대중 전 대통령은 가톨릭 신자였다. 결혼하면 남편의 종교를 따라가는 당대 풍습과는 달리 이희호 이사장은 감리교 신자로 평생을 살았다.

◇당시 독재정권에 맞선 이들을 위한 양심수가족협의회(민주화실천가족운동협의회) 결성

1976년 김대중 전 대통령의 석방을 촉구하며 시위를 벌이는 이희호 여사. ⓒ김대중평화센터
1976년 김대중 전 대통령의 석방을 촉구하며 시위를 벌이는 이희호 이사장의 모습. ⓒ김대중평화센터
이희호 여사가 1977년 8월 1일 김대중 전 대통령이 '3.1민주구국선언사건'으로 구속된 경남 진주시 진주교도소앞에 서 있는 모습. ⓒ김대중 도서관
이희호 이사장이 1977년 8월 1일 김대중 전 대통령이 '3.1민주구국선언사건'으로 구속된 경남 진주시 진주교도소앞에 서 있는 모습. ⓒ김대중 도서관
1977년 12월 19일, 김대중 전 대통령이 '3.1민주구국선언사건'으로 구속된 진주교도소에서 서울대학교 병원 210호로 이감되었다. 사진은 이감 후 병원을 찾은 이희호 이사장의 모습.  ⓒ김대중 도서관

◇“여러분, 제 남편이 대통령이 되어서 만약 독재를 하면 제가 앞장서서 타도하겠습니다.”

1971년 ‘4·27 7대 대선’에서 찬조연설을 하는 이희호 여사 모습. ⓒ김대중 도서관
1971년 ‘4·27 7대 대선’에서 찬조연설을 하는 이희호 이사장. 당시 이희호 이사장의 찬조 연설은 대통령 후보 부인으로는 최초였다. ⓒ김대중 도서관

◇성평등의 상징, 이희호-김대중의 부부 문패

대통령 퇴임 후 안착한 DJ 동교동 자택에 예나 다름없이 나란히 붙어있는 ‘김대중 이희호’ 부부 문패. ‘이희호 없는 김대중은 없다’는 말이 나올 정도로 평생 민주화를 향한 역경을 함께 해온 ‘동지’의 표시이자 ‘평등부부’의 상징적 증거다.  gabapentin generic for what gabapentin generic for what gabapentin generic for whatsumatriptan patch sumatriptan patch sumatriptan patchwhat is the generic for bystolic   bystolic coupon 2013 ⓒ여성신문 정대웅 기자
동교동 자택에 나란히 붙어있는 ‘김대중 이희호’ 부부 문패. ⓒ여성신문

◇미국 페미니즘을 이끈 여성 운동가 글로리아 스타이넘과 오찬을 즐기는 이희호 이사장

지난 2002년 글로리아 스타이넘이 첫 방한했을 당시 청와대를 방문해 이희호 여사와 오찬을 함께 나누고 있는 모습.
2002년 글로리아 스타이넘이 첫 방한했을 당시 청와대를 방문해 이희호 이사장과 오찬을 함께 나누고 있는 모습.

◇여성이 여성을 존중하길 바랍니다.

이희호 여사가 여성신문 독자들에게 보내는 메시지.
이희호 이사장이 여성신문 독자들에게 보내는 메시지.

◇구순을 맞아 여성신문과 인터뷰

이희호 선생이 구순을 맞은 2011년 9월 서울 마포구 동교동 자택에서 김효선 여성신문 대표와 대담을 진행했다. ⓒ여성신문DB
이희호 이사장이 구순을 맞아 2011년 9월 서울 마포구 동교동 자택에서 김효선 여성신문 대표와 대담을 진행했다. ⓒ여성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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