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소현/ 한국가정법률상담소 상담위원

지난 4월 22일, 호주제폐지 운동사에 진일보한 움직임이 있었다. 호주제 폐지를 위한 시민연대가 호주제 폐지를 내용으로 하는 민법개정안을 마련하여 의원입법 발의를 추진하기로 하고, 국회 인권정책연구회와 공동으로 국회의원 초청 간담회를 개최한 것이다.

민법개정안은 현행 민법에 규정된 호주제가 호주에게 우월적 지위를 부여하여 호주를 정점으로 강제적이고 일률적으로 가(家)를 구성하도록 하는 것은 가족구성원들이 평등하게 가족공동체를 형성하는 것을 불가능하게 하며, 호주를 중심으로 그 가에 입적한 자를 가족으로 규정하는 것은 실제 가족공동체와 전혀 부합하지 않고 호주와 가족구성원과의 관계를 종적이며 권위적인 가부장적인 관계로 고착화시키고 부부를 차별하며 다양한 가족형태를 수용하지 못하므로 호주에 관한 규정을 삭제하도록 하였다.

또한 지금까지는 자녀의 성(姓) 선택시 부계혈통만을 강제하고 모계혈통을 부인하였으나, 앞으로는 자녀의 성을 결정함에 있어 부모의 협의에 의하여 아버지 또는 어머니의 성을 따르도록 하고, 다만 부모가 협의할 수 없거나 협의가 이루어지지 않은 경우에는 아버지 또는 어머니의 청구에 의하여 가정법원이 이를 정하도록 하며, 자의 복리를 위하여 자녀의 성을 변경할 필요가 있을 때에는 아버지, 어머니 또는 자의 청구에 의하여 가정법원의 허가를 얻어 변경할 수 있게 하였다.

이러한 민법개정안은 사회변화에 따른 현실의 가족생활에 부합하고 개인의 존엄과 양성평등이념에 일치하는 가족제도 구현이라는 사회적, 국가적 요구에 부응하는 산물이다.

그런데 간담회에 참석한 대법원과 법무부 관계자 및 일부 국회의원들은 호주제 문제와 성(姓)문제는 관계가 없으므로 양자를 연계해서는 안된다고 주장하여 인식의 한계를 드러냈다.

민법 제781조 제1항은 자녀는 아버지의 성과 본을 따르도록 함으로써 부계혈통을 우선하고 상대적으로 모계혈통을 무시하고 있으며, 이에 따라 아버지 성을 따르는 가족만이 정상적이라는 인식을 심게 하고 어머니 성을 따르는 가족이나 어머니의 재혼으로 성이 다르게 된 가족들을 비정상적인 가족으로 보게 한다. 즉, 부계혈통을 강제하는 동 조항이 바로 부계우선혈통주의와 남성우월의식으로 집약되는 호주제의 핵심조항인 것이다.

또한 이러한 점이 헌법상 평등권과 혼인과 가족생활에 있어서의 개인의 존엄과 양성평등 이념에 정면으로 배치되는 위헌적인 요소를 내포하고 있다. 따라서 자녀에게 아버지의 성만을 강제하는 현행법은 반드시 개정되어야 하는 것이다.

개정안이 통과되어 시행된다 하더라도 우리 사회의 통념을 고려해볼 때 대부분의 사람들은 자녀에게 아버지 성을 따르도록 할 것으로 판단되는데, 이는 적어도 법에서 강제하여 아버지 성을 따르는 것과는 다르다. 또한 이혼했거나 재혼하여 자의 복리를 위하여 성을 변경할 필요가 있는 경우 자녀의 성을 변경할 여지를 두었다는 점에서 현실적인 피해를 구제할 수 있다.

개정안의 의도는 현행법의 부성강제에서 비롯되는 위헌의 시비와 현실적 피해를 구제하자는 것이며, 사회적 혼란은 초래되지 않을 것이다. 자녀의 성 선택시 부성(父姓)만을 강제하는 것은 바로 호주제의 문제이고, 따라서 호주제 폐지 논의에는 ‘자녀의 성은, 부모의 협의로 부모 중 일방의 성을 선택할 수 있도록’ 하는 내용이 반드시 포함되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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