총경 승진 예정자 교육 중
“이런 거 왜 하냐”

정부의 성평등 정책 정면 부정
경찰대는 조치 규정에 ‘묵묵부답’

인사혁신처 필수교육이었다면
승진자 명단서 제외

6월부터 전체 공무원 ‘성인지 교육’
…의무 규정 없어 실효성 의문

여성의 경찰직 진출을 막았던 성차별적 성별 분리 모집 관행이 폐지된다. 최근 3년간 여성 경찰 채용 경쟁률은 남성 경찰보다 평균 2.7배 더 높지만, 경찰 조직 내 여성 비율은 10.8%(9월 기준)에 불과하다. ⓒ여성신문 DB
여성의 경찰직 진출을 막았던 성차별적 성별 분리 모집 관행이 폐지된다. 최근 3년간 여성 경찰 채용 경쟁률은 남성 경찰보다 평균 2.7배 더 높지만, 경찰 조직 내 여성 비율은 10.8%(9월 기준)에 불과하다. ⓒ여성신문 DB

경찰총경 및 공공기관 임원 승진 예정자들이 성평등 교육에 반발해 강의실을 이탈하고 수업을 거부했다는 폭로가 제기되면서 공직자들의 책임감과 성인지 감수성 없음에 비판이 거세다. 

특히 교육 거부 사태가 여성 폭력 사건에 대응하기 위해 성인지 감수성이 필수적인 수사기관의 고위공직자라는 점과, 6월 19일부터 성인지 교육 대상이 전체 공무원으로 확대될 예정이라는 점을 고려할 때 심각한 문제라는 우려가 제기되고 있다.

문제가 된 성평등 교육은 지난 5월 29일 경찰서장급인 총경 승진예정자 51명과 일반 부처·공공기관 임원 승진 대상자 14명 등 총 71여명이 참석하는 ‘치안정책과정’으로 진행됐다.  경찰청이 지난해 연구용역을 의뢰해 개발한 ‘경찰 관리자 성평등 교육 프로그램’의 일환으로 7시간의 성평등 교육 프로그램을 이수해야 한다. 

이날 강사로 나선 권수현 여성학 박사는 2일 여성신문과의 통화에서 교육생들의 불성실한 태도로 인해 강의시간을 채우지도 못하고 서둘러 마쳤다고 밝혔다.

권 박사는 앞서 2일 페이스북을 통해 “교육생들은 처음부터 이 강의를 들을 준비가 되어 있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조별 토론 시작을 알리자 “귀찮게 이런 거 왜 하냐”며 불평하면서 15명 이상이 자리를 비워 토론도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다고 전했다.

권 박사가 “경찰 조직의 여성 비율이 11.1%라고 하자 한 교육생이 ‘우리 조직은 여성 비율이 50%다. 내가 왜 이런 이야기를 듣고 있어야 하냐’고 말했다”고도 했다. 이 교육생은 모  기관장 승진예정자라고 밝혔다.

경찰 측은 조사를 먼저 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민갑룡 경찰청장은 언론에 보도된 다음날 “교육생의 자세로 불의한 부분이 있기에 주의를 줬다”면서 “강연자가 말씀하신 부분에 대해서는 구체적으로 확인하라고 지시했다”고 말했다. 경찰 교육을 담당하고 있는 경찰대학교도 교육과정을 이수하지 않은 교육생에 대한 조치 규정이 있느냐는 여성신문이 질문에 “답변하기 어렵다”고 했다. 

인사혁신처에 문의한 결과 “이번 경찰 총경 성평등 교육은 경찰의 자체 교육이기 때문에 경찰대학 학장의 권한”이라고 밝혔다. 혁신처가 실시하는 승진대상 공무원 필수교육의 경우에는 이수하지 않으면 승진자 명단에서 뺀다고 설명했다. 혁신처의 기준을 경찰대학에 적용하면 거부 사태를 일으킨 경찰들도 승진을 취소할 수 있다.

정부가 추진하는 성평등 정책을 정면으로 부정한 태도라는 점에서 심각한 문제라는 지적도 나온다. 문제를 일으킨 교육생들의 사과나 재교육 차원을 넘어 재발 방지 대책 수립은 물론, 승진 취소 등 엄중처벌해야 한다는 요구도 있다. 

김영순 한국여성단체연합 공동대표는 “이번 사태는 경찰과 공공기관의 성평등교육에 대한 인식 수준을 드러낸 것”이라고 말했다. “교육은 들을 의사가 있어야 가능한 건데, 성폭력 범죄가 많고 묻지마범죄에 여성이 살해되는 등 문제가 되는데도 수사기관의 책임자들이 문제의 심각성을 모른다. 승진 취소로 엄격하게 다뤄야 한다”는 것이다. 또 “경찰조직이 성평등과 관련한 실시한 대응과 조치들이 얼마나 형식적인가를 보여준 것이기도 하다”고 했다.

정의당 박인숙 여성위원장도 “승진의 대상이 될 수 없다”면서 “경찰·공공기관이 성평등 관련 소양과 자질 갖춰야 공적 역할을 수행할 수 있다고 판단해 교육을 실시하는 것인 만큼 그 취지와 목적에 맞게 사건을 처리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평소 성폭력·성평등 관련 강의를 해온 교육자들도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수업에 불성실한 태도가 교육 현장의 대체적인 분위기이고, 고위직급일수록 더욱 심하다고 입을 모은다.

경찰청 성평등 교육 문제는 하나의 전형적인 사례이기에 다른 기관에서 실시하는 교육이 어떻게 진행되는지 들여다봐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당장 정부가 오는 6월 19일부터 공무원 전체로 확대되는 성인지교육도 허술하게 진행될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다.

양성평등기본법에 따라 성인지 교육은 그동안 담당 공무원만 대상이었지만, 법이 개정되면서 대상이 확대됐다. 그러나 교육을 이수하지 않을 경우 제재할 규정이 없다. ‘전체 소속 공무원 등에게 실시하여야 한다’고 해서 의무인 것처럼 보이지만 후속 조치는 법률에도, 시행령에도 없다. 기존에 실시되고 있는 4대(성희롱·성매매·성폭력·가정폭력)폭력 교육은 여성가족부가 점검·관리하고 있으나 성인지교육은 별도로 진행된다.

여성가족부는 제재 조항을 명시하기에 조심스럽다는 입장이다. 부작용을 고려하지 않을 수 없다는 것이다. 성별영향평가과 담당자는 “공무원을 대상으로 기존의 4대 교육을 4시간 하고 있는데 필요성은 인정하지만 피로도가 높아서, 성인지 교육 의무화 반발도 심하다”고 했다. 앞으로 “토론회 등을 열어 성인지교육의 실효성을 높이고 4대(성희롱·성매매·성폭력·가정폭력) 폭력 교육과의 관계를 정립하는 등 교육 대상자와 관계 전문가들과 논의를 진행할 것”이라고 말했다.

법 개정이 지난해 12월에 이루어졌고, 시행일은 올해 6월로 정해진 만큼 교육의 실효성을 높이기 위해 대책을 마련할 시간이 있었으나 준비가 부족했다는 지적도 나온다.

차인순 국회 여성가족위원회 심의관은 여성가족부가 양성평등기본법의 주무부처이지만 다른 부처들과 협력해 실효성을 높이는 방안을 고려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예를 들어 인사혁신처는 인재개발 영역에서 다양한 공무원 교육을 실시하고 있는 만큼 성인지 교육을 의무교육으로 통합시키고, 입법부 사법부 공무원의 경우도 각각의 교육체계 내에 의무교육으로 통합시킬 필요가 있다고 제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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