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0회 서울퀴어퍼레이드’
주최 측 추산 참가자 15만명
74개 단체 및 기업·대사관 부스
인근서 퀴어축제반대집회 열려
물리적 충돌 없이 평화롭게 끝나

1일 서울광장에서 열린 제20회 서울퀴어퍼레이드에서 '평등의 무지개' 현수막이 광장을 가로지르며 펼쳐지고 있다. ⓒ이정실 여성신문 사진기자
1일 서울광장에서 열린 제20회 서울퀴어퍼레이드에서 '평등의 무지개' 현수막이 광장을 가로지르며 펼쳐지고 있다. ⓒ이정실 여성신문 사진기자

경찰의 방어벽으로 둘러싸인 서울광장 안은 무지개로 뒤덮혀 있었다. 사람들은 푸른 잔디밭 위를 신나게 뛰어다니며 노래하고 춤을 췄다. 누구를 사랑하든 자신이 어떤 모습이든 눈치 볼 필요 없는 공간이었다. 경찰의 방어벽 바깥에서는 “여러분을 사랑하는 가족의 품으로 돌아오십시오! 동성애는 죄악입니다!”라 말하는 절규가 울려 퍼졌다. 

제20회 서울퀴어퍼레이드(조직위원장 강명진)가 6월 1일 서울시 중구 서울광장에서 열렸다. ‘스무번째 도약 평등을 향한 도전’을 슬로건 아래 열린 이번 축제에는 주최 측 추산 약 15만여명이 참가했다. 이날 참가자들은 성소수자를 상징하는 6색 무지개 아이템으로 치장하고 축제를 즐겼다.

1일 서울광장에서 제20회 서울퀴어퍼레이드가 열려 광장이 인파로 북적이고 있다. ⓒ이정실 여성신문 사진기자
1일 서울광장에서 제20회 서울퀴어퍼레이드가 열려 광장이 인파로 북적이고 있다. ⓒ이정실 여성신문 사진기자

이번 축제는 △부스행사 △환영무대 △퍼레이드 △축하무대로 꾸려졌다. 

강명진 조직위원장은 이날 기자회견에서 “성소수자가 함께 살아가고 있다는 것을 알리고 싶었다”며 “축제에 반발심을 갖는 눈도 있지만 모든 사람이 조화를 이루고 함께사는 사회환경을 만드는 것이 중요하다”고 밝혔다. 

환영 무대에는 수많은 성소수자 모임과 아티스트들이 직접 무대에 올라 흥을 돋우었다. 수화통역과 문자통역 또한 함께 제공돼 청각장애인 역시 무대를 즐길 수 있었다. 

드랙퀸 아티스트 쿠시아디아멍과 보리의 공연은 참석자들의 큰 호응을 얻었다. 아티스트들은 남성의 신체적 특성인 가슴털을 감추지 않거나 굴곡지지 않은 몸매에 여성 패션 아이템으로 여겨지는 하이힐을 신고 여성 보컬의 노래에 맞춰 춤을 추는 공연을 선보였다. 외모와 복장만으로 여성과 남성을 구분할 수 없는 점이 퀴어문화축제에 어울리는 공연이었다. 

랩퍼 제리케리도 무대에 올라 축제를 축하했다. 그는 최근 퀴어퍼레이드를 모티브로 한 곡 ‘퍼레이드’를 발표했다. 제리케이는 데이즈 얼라이브의 대표로 데이즈 얼라이브는 그간 페미니즘 친화적인 행보를 취해왔다. 

환영 무대 중에는 15년 이상 퀴어퍼레이드에 참가한 사람들의 인사말도 있었다. 행동하는성소수자인권연대 활동가 웅은 “광장은 쉽게 드러내지 못했던 몸을 드러내고 사람을 만나는 공간이다. 축제는 취약한 삶의 환경에서 서로의 생존을 확인하는 자리”라고 말했다

1일 서울광장에서 열린 제20회 서울퀴어퍼레이드의 주한프랑스대사관·주한벨기에대사관에서 이벤트가 진행되고 있다. ⓒ이정실 여성신문 사진기자
1일 서울광장에서 열린 제20회 서울퀴어퍼레이드의 주한프랑스대사관·주한벨기에대사관에서 이벤트가 진행되고 있다. ⓒ이정실 여성신문 사진기자

 

부스는 오전부터 성소수자 인식 개선을 촉구하는 여러 기관과 단체의 부스 74개가 설치됐다. 국내 인권단체와 성소수자 동아리, 고교·대학 성소수자 모임, 캐나다 등 주요 대사관, 인권위원회 등이 참가했다. 구글코리아와 러쉬 등 기업과 정의당, 녹색당 등 정당 또한 부스를 차렸다.  

부스들은 다양한 성소수자와 관련된 스티커, 뱃지 등의 굿즈와 책을 판매하고 성소수자 인권과 관련한 브로셔를 나눠줬다. 포토 이벤트와 혐오발언에 물풍선 던지기, 설문조사 등 이벤트를 진행하는 부스들도 있었다. 

로뎀나무그늘교회 부스에 참가한 쌩씨는 “우리 교회는 6,7년째 부스로 참가하고 있다. 성소수자 신앙인들은 고민이 많다. 그래서 전문가들을 초청해 성경뿐 아니라 인류학적으로, 심리학적으로 어떻게 성소수자 정체성을 바라봐야 하는지 책자를 만들었다”고 말했다. 해당 부스에서 책자를 구입한 백모씨는 “모태신앙으로 오래 교회를 다녔는데 혐오발언에 안 나간지 오래됐다. 성소수자를 위한 교회가 있다는 사실을 안 것만으로도 이곳에 온 보람이 있다”고 말했다.

러쉬코리아는 퀴어문화축제를 맞아 성소수자 인권 평등 캠페인 ‘퀴어업 2019’을 진행하며 부스에서 제품을 판매하고 퍼레이드 트럭을 운영했다. 한주희 러쉬코리아 브랜드 커뮤니케이션 팀장은 “러쉬는 6년째 퀴어 퍼레이드에 참가하고 있다. 많은 사람들이 퍼레이드 참가로 인한 브랜드 이미지의 실추를 걱정하지만 부정적인 영향은 없다”고 말했다.  

1일 서울광장에서 열린 제20회 서울퀴어퍼레이드에서 레인보우 라이더스가 퍼레이드의 선두에서 행진하고 있다. ⓒ이정실 여성신문 사진기자
1일 서울광장에서 열린 제20회 서울퀴어퍼레이드에서 레인보우 라이더스가 퍼레이드의 선두에서 행진하고 있다. ⓒ이정실 여성신문 사진기자

 

퍼레이드는 오후 4시에 서울광장에서 출발해 소공동과 을지로입구, 종각역을 지나 광화문 앞에서 다시 서울광장으로 돌아오는 4.5km 코스로 진행됐다. 퀴어 모터바이크 부대 ‘레인보우 라이더스’를 선두로 11개 차량을 중심으로 주최 측 추산 7만여명이 2시간에 걸쳐 이동했다. 

참가자들은 트럭에서 나오는 음악에 맞춰 춤을 추기도 하고 무지개 깃발을 흔들기도 하며 즐겁게 코스를 걸었다. 퍼레이드 중 반동성애 집회 참가자들이 욕설을 하거나 야유를 보냈으나 큰 충돌 없이 무사히 진행됐다. 퍼레이드에 참가한 이모씨(51)는 “세상이 정말 많이 바뀌었음을 느낀다. 내가 젊은 시절에는 이렇게 나서는 것은 상상도 못 했다”고 말했다. 

서울퀴어퍼레이드는 축하무대로 끝이 났다. 한상희 서울시인권위원회 위원장은 무대에 올라 “오늘 여러분은 이곳에서 우리가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무엇이 참되게 사는 것인지 무엇이 더불어 사는 삶을 만들어가는 지 보여주고 있다”며 “이 힘을 모아 우리는 포괄적 차별금지법을 조속히 제정하기 위해 뜻을 모아야 한다. 힘을 뭉쳐 나아가 차별없는 세상, 모두가 더불어 사는 세상을 만들어야 할 것이다”라고 말했다.    

1일 서울광장에서 열린 제20회 서울퀴어퍼레이드 인근에서 기독교단체들이 반동성애.퀴어축제 반대 집회를 열고 있다. ⓒ이정실 여성신문 사진기자
1일 서울광장에서 열린 제20회 서울퀴어퍼레이드 인근에서 기독교단체들이 반동성애.퀴어축제 반대 집회를 열고 있다. ⓒ이정실 여성신문 사진기자

 

한편, 서울시청 광장을 둘러싼 경찰 방어벽 밖에는 반동성애자 단체들 또한 행사를 열었다. 동성애퀴어축제반대국민대회(대회장 이주훈 목사)는 서울시의회 건물 앞 거리에 행사를 열었다. 이들은 동성애 금지와 임신중절 헌법 불합치 반대, 전통 가족관 수호를 내건 부스들을 운영했다. 
 
이주훈 목사는 대회사에서 “한국을 향해 오는 동성애 합법화의 물결이 점점 더 거세짐을 느낀다”며 “인간의 몸과 마음을 파괴하는 행위를 인권으로 인정할 수 없다. 오히려 동성애자들이 진정한 자유와 행복을 누릴 수 있도록 도와주고, 우리의 양심과 학문, 표현의 자유를 지켜내는 데 최선을 다할 것”이라고 말했다. 

국민대회 측은 이날 오후 3시 대한문 앞에서 출발해 주한미국대사관과 세종문화회관을 거쳐 다시 행사장으로 돌아오는 거리행진을 벌였다. 참가자들은 “동성애 치유 회복이 정답이다” “남자 며느리 여자 사위 웬말이냐” 등을 쓴 피켓을 들고 행진에 나섰다. 

집회에 참여한 강영자씨는 “동성애가 어떻게 인권일 수 있느냐”며 “진정 동성애자들의 인권을 생각한다면 그들이 돌아올 수 있도록 도와야 한다. 오늘 퀴어퍼레이드를 막기 위해 진주에서 올라왔다”고 말했다. 

저작권자 © 여성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