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지장애든 울화든
자식들과 영감에 대한
분노와 의심과 왜곡과 생떼는
한편 당연하기도 했다.

혹은 늙어 죽어감의
가차 없음에 대한
한 생명의 마지막 절규였으리라.

최현숙 구술생애사 작가 ⓒ이정실 사진기자
최현숙 구술생애사 작가 ⓒ이정실 사진기자

 

“이젠 당신하고 나하고 둘 밖에 없는 거야. 내가 누가 있어? 그런데 못 보게 하잖아. 당신이 아프다는 말만 하고, 저 못된 것이 데려다주지를 않는 거야. 죽더라도 나 보는 데서 죽어야할 거 아냐? 독감 옮으면 같이 죽으면 되지 머.”

휠체어에서 벌떡 일어나 달려 안기기라도 할 듯 엄마는 행복에 겨워 있었고, 여든여섯 아내의 손을 하염없이 매만지고 있는 아흔의 남편은 벌써 울음이 삐져나오고 있다.

인지장애증과 집착이 뒤엉켜 영감을 의심하며 모욕과 망신을 주는 아내를 다시 만난 것은 2주 만이었다. 그 2주를 두 양반 다 한 달이 넘었다고 우겼다. 아버지가 독감에 걸려 엄마한테 옮길까봐 당분간은 못 오신다는 핑계를 꾸며 자식들과 아버지와 직원들까지 입을 맞췄던 건데, 영감을 만나야겠다는 아내의 막무가내에 영감도 돌변을 한 거다. ‘다른 여자’랑 ‘애기’는 다 까먹은 듯 당장 뒤집어지지는 않을 것 같아, 예순 둘의 못 된 딸년은 자리를 피해주었다.

‘이제 너그 아버지 안 모실란다’며 별도 공간을 사용하겠다는 게 2012년 실버타운 입주 때 엄마가 제시한 조건이었다. 나는 몰래 반가웠다. 여든 나이에 마침내 ‘자기만의 방’을 갖겠구나 싶었다. 6.25 중이던 십대 말 좌익운동 여성부장의 짧은 경험은 ‘한 때 불장난’으로 후다닥 묻어버렸지만, 성차별에 대한 감수성은 지워질 수 없었을 거다. 1953년 휴전 직전 혼인해서 농촌봉건사회를 떠나 서울로 이주 후 다섯 자식을 키우며, 돈은 안 벌고 권위적이기만 한 서방을 무지 미워하면서 주생계부양자로 맹렬하게 살았다. 남편의 실버타운 보증금 2억 여 원을 선뜻 지불할 경제적 여유가 있었지만 ‘자기만의 방’은 언감생심이었다. 결혼생활 60년 만에 이혼이나 별거에 대해, 그것도 서방이나 두 아들은 빼고 세 딸들한테만, 말만 무성했지 실천은 불가능한 나름 양반이었다. 그렇다면 실버타운 같은 층 30미터 거리의 개별공간이 너무 늦었지만 합의 가능한 대안이겠다 싶었다. 의식주를 위한 노동을 제공받은 돈 덕, 피차의 ‘자기만의 방’, 아버지의 무조건적인 져주기 등으로, 2014년경부터 둘은 원앙 같은 부부가 되었는데, 그 때부터 엄마는 알츠하이머 성 예쁜 인지장애가 시작되어 심지어 서방에게 애교와 ‘어린양’까지 부렸다.

2015년 부산 가족여행에서 두 분 방문을 열었던 나는, “좋습니다!”만 민망하게 소곤대며 얼른 닫고 나왔다. 소변을 가리지 못하는 아내의 팬티를 갈아입히던 서방이, 아내의 엉덩이를 찰싹찰싹 때리며 둘이 좋아하고 있었다. 귀 잡순 할배도 인지장애인 할매도, 딸의 노크 소리나 ‘좋습니다!‘ 따위에는 관심이 없었다. 그 즈음 이미 영감은 아침식사를 위한 외출을 위해 이른 아침마다 아내에게 와서 샤워를 시켜주었고, 그 때마다 이 영감 마나님은 여러 놀이를 즐겼을 거다. 나는 방문 때마다 1박을 하며 엄마와 함께 긴 목욕을 했는데, 그 때마다 엄마는 내 늘어진 젖을 우스워하며 자신의 볼록한 젖과 뽀얀 피부를 자랑하곤 했다. 엄마가 독립생활이 힘들어져 공동 케어홈으로 옮겨야 했던 건 2017년부터였는데, 엄마도 엄마지만 아버지가 마다해서 따로 간병인까지 들이며 독립 공간 사용을 늘렸다. 그렇게 알콩달콩 하다말고 결국 2018년 1월 1일 공동 케어홈으로 갈 수 밖에 없었으니, 인지장애든 울화든 자식들과 영감에 대한 분노와 의심과 왜곡과 생떼는 한편 당연하기도 했다. 혹은 늙어 죽어감의 가차 없음에 대한 한 생명의 마지막 절규였으리라.

항상 아등바등 하는 엄마로만 생각했는데, 장례식에 쓸 영상을 준비하느라 뒤져본 앨범에는 화사한 생애 장면들이 챙겨져 있었다. 죽음 직전까지도 늘 주머니에 빗을 넣고 다니며 아내의 백발을 빗겨주던 영감은, 아내만 먼저 들어간 가족 납골묘에 그 빗을 넣어주었다. 대체 자식은 부모를 얼마나 아는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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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현숙 구술생애사 작가
최현숙 구술생애사 작가 / 이정실 여성신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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