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연속으로] ‘오욕의 세상’에서 살아가야 하는…
[공연속으로] ‘오욕의 세상’에서 살아가야 하는…
  • 강일중
  • 승인 2019.05.24 09:38
  • 수정 2019-05-24 09:3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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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유청 연출의 연극 ‘녹천에는 똥이 많다’
연극 ‘녹천에는 똥이 많다’ 중 한 장면 ⓒ강일중
연극 ‘녹천에는 똥이 많다’ 중 한 장면 ⓒ강일중

준식과 미숙은 천신만고 끝에 서울 변두리의 한 모퉁이에 23평형 아파트를 분양받는다. 둘은 막 이사한 집에서 ‘진짜 우리 집’을 갖게 되었다며 거실 한쪽을 수족관으로 장식하려는 꿈에 부풀어 있다. 이곳에 느닷없이 준식의 이복동생 민우가 나타나 함께 살게 되면서 이 소시민 부부의 삶에는 돌이킬 수 없는 균열이 생긴다.

연극 ‘녹천에는 똥이 많다’(연출 신유청, 5월 14-6월 8일, 두산아트센터 스페이스111)는 서서히 무너져가는 준식의 삶에 현미경을 들이대며 그의 과거 회상을 통해 파멸의 원인을 조명한다.

이창동의 동명 단편소설(1992년 발표)을 토대로 한 이 작품의 한 축은 명문대 운동권 출신에 “옳은 것을 옳다고 이야기하는 사람이 누군가는 있어야 한다.”라고 생각하는 동생 민우의 세계. 다른 한쪽은 어떻게 해서든 살아보려고 고군분투하며 때로는 불의마저도 별 죄의식 없이 행하는 교사 준식의 세계다. 그간 준식과 함께 앞만 보며 살아왔던 아내 미숙이 급격히 ‘순수한’ 민우와 가까워지면서 부부 사이의 파열음은 점차 높아진다.

연극 ‘녹천에는 똥이 많다’ 중 한 장면 ⓒ강일중
연극 ‘녹천에는 똥이 많다’ 중 한 장면 ⓒ강일중

작품의 내용이 지금 시점에서는 다소 진부하게 느껴질 수 있는 부분이 있기는 하다. 원작소설의 배경은 지금부터 약 30년 전. 아파트 개발 붐이 일면서 아파트가 욕망의 대상이 된 사회 분위기, 원주민과 사업자 간의 충돌이 빚어진 상계동 달동네 철거, 또 전교조 결성과 관련된 억압과 감시의 이미지가 이야기의 전개과정에 파편화되어 있다.

그러한 내용을 사실적이 아닌 해체적인 무대, 준식의 내면을 전하는 1인 다역 ‘소리들’ 배우의 연기 등을 통해 과거가 아닌 동시대적인 메시지를 전달한 점이 흥미롭다.

작품에서 동생 민우와 준식의 관계는 순수와 비순수의 대립으로 요약할 수 있다. 그런데도 이 연극은 이분법적으로 딱 부러지게 준식과 민우의 성격을 묘사하지 않는다. 그 점이 오히려 이야기의 설득력을 높인다.

 

연극 ‘녹천에는 똥이 많다’ 중 한 장면 ⓒ강일중
연극 ‘녹천에는 똥이 많다’ 중 한 장면 ⓒ강일중

준식은 충분히 도덕적으로 비판받을 수 있는 인물이다. 그는 학교장의 지시로 은밀히 진보성향 교사들의 동향을 감시하고 보고했다. 지명수배 중인 민우를 경찰에 끝내 밀고해 잡히게 한 것도 그다. 그러나 연극은 준식이 주변의 경멸 어린 시선 속에서도 급사 일을 하며 야간에 고등학교·대학교를 다닌 후 서무직원이 됐다가 교사자격증을 따게 되는 등 필사적으로 살아남으려 한 과정을 보여준다. 그는 처음 서울에 올라와 급사 때는 학교 안 계단 밑방, 나중에는 학교 근처 달동네의 월 3만원 짜리 사글셋방, 결혼한 뒤에는 부부가 함께 얻은 남의 집 지하 셋방에서 살았다. 극중 그가 사는 상계지구 녹천역 근처 아파트는 그가 아홉 번의 실패 끝에 가까스로 당첨된 주택이다.

그는 자기 집에 더부살이하면서 이제는 ‘순수함’ 때문에 아내의 마음마저 사로잡은 민우를 향해 부르짖는다. “그래, 난 인생이 뭔지도 모르고 살아가는 놈이야. 타락하고 비굴하고 그렇게 살아갈 수밖에 없었어. 그런데 넌 어째서 그 나이가 되도록 정의와 도덕을 외치고 있어? 너는 왜 나처럼 가족을 먹여 살리기 위해, 직장에서 쫓겨나지 않기 위해 요리조리 눈치를 보며 살지 않냐? 너는 무슨 자격으로 저 높은 곳에서 그 모든 것을 초월하여 있을 수 있냔 말이야?”

준식은 과거 고도성장기 또 지금, 주변을 돌아볼 틈도 없이 힘들게 살아온 소시민의 모습으로 다가오면서 연민을 불러일으킨다. 그는 민우가 형사들에게 붙잡히는 현장을 정신없이 빠져나오면서 '소리들' 배우가 대신 전하는 내면의 소리를 통해 “이 거대한 오욕의 세상, 이미 모든 순결함과 품위를 잃어버린 이곳에서 나 또한 살아야 하는 것이다.”라고 절규한다. 민우나 준식 모두가 시대 상황의 피해자이며 부조리한 삶 속의 인물들이다.

 

연극 ‘녹천에는 똥이 많다’ 중 한 장면 ⓒ강일중
연극 ‘녹천에는 똥이 많다’ 중 한 장면 ⓒ강일중

그런데도 작품은 준식이 추구해온 가치와 그가 품은 욕망의 끝이 어디인가를 분명히 상기시킨다.

마지막 장면에서는 인간의 뒤틀린 욕망을 정화하는 것을 나타내기라도 하는 듯 무대 천장에서 흙이 쏟아진다.

무대는 커다란 수족관의 모습을 띠고 있다. 미숙이 거실에 가장 놓고 싶어 했던 것이며 내용으로 볼 때 준식 부부가 품은 욕망의 상징이기도 하다. 아파트 내부의 소파, 의자, 화장대, 변기 등 가재도구나 설치물은 마땅히 있어야 할 곳에서 떨어뜨려져 뿔뿔이 흩어져 있다. 무대 자체가 와해와 균열의 상황을 암암리에 드러낸다.

‘소리들’ 배우 각자가 다역을 하면서 만들어내는 다양한 청각이미지나 움직임을 비롯한 시각이미지, 그리고 조명을 통해 벽에 생긴 음울한 느낌의 실루엣이 감성을 자극한다.

‘아파트’를 주제로 올해 두산아트센터가 기획한 두산인문극장 시리즈 중의 한 작품이다.

연극 ‘녹천에는 똥이 많다’ 중 한 장면 ⓒ강일중
연극 ‘녹천에는 똥이 많다’ 중 한 장면 ⓒ강일중

강일중 공연 칼럼니스트. 언론인으로 연합뉴스 뉴욕특파원을 지냈으며 연극·무용·오페라 등 다양한 공연의 기록가로 활동하고 있다. ringcycle@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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