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의자 징역형은 10명중 1명
처벌 수위 여전히 솜방망이
피해자 절반이 “자살 생각”
외신 “한국의 관음증 스캔들”

지난해 5월 서울 종로구 일대에서 열린 ‘불법촬영 편파수사 규탄시위’에 참여한 여성 1만2000여명이 불법촬영을 비판하는 퍼포먼스를 벌이고 있다. ⓒ이정실 여성신문 사진기자
지난해 5월 서울 종로구 일대에서 열린 ‘불법촬영 편파수사 규탄시위’에 참여한 여성 1만2000여명이 불법촬영을 비판하는 퍼포먼스를 벌이고 있다. ⓒ이정실 여성신문 사진기자

 

성관계 영상을 불법촬영 및 유포한 가수 정준영이 구속되면서 성범죄 처벌 수위에 대한 논란이 거세다. 의사에 반한 불법촬영과 유포의 형량은 각각 5년 이하의 징역 또는 3000만 원 이하의 벌금이다. 피해자가 다수임에도 정준영의 형량이 최대 7년 6개월 형이 나올 것이란 전망이 나오면서, 처벌 수위가 너무 낮은 것 아니냐는 비판이 나오고 있다. 우리나라 형사법은 한 사람이 여러 개의 범죄를 저질렀을 경우 가장 무거운 죄가 양형의 기준(1.5배 가중)이 되는 가중주의를 채택하고 있기 때문이다.

불법촬영 등 디지털 성폭력은 갈수록 느는데 처벌이 여전히 솜방망이에 머물고 있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불법촬영 피해자들이 가장 두려워하는 것은 다수에게 유포되는 것이다. 그러나 온라인에 한번 게재된 영상물을 모두 찾아 삭제하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에 가깝다. 불법영상 범죄의 처벌이 가중되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오는 이유다.

한국여성정책연구원이 올해 발간한 ‘온라인 성폭력 피해실태 및 피해자 보호 방안’ 연구보고서에 따르면 불법영상이 유포(재유포 포함)된 피해자 45.6%가 자살을 생각했다고 답했다. 이 중 42.3%는 구체적인 자살 계획까지 세웠고, 19.2%가 실제 자살 시도를 했다. 불법 촬영 피해자가 가장 바라는 것 중 하나는 ‘범인 처벌’(27.2%)이다. 하지만 처벌은 솜방망이 수준이다.

대법원의 ‘성폭력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특례법 위반(카메라 등 이용 촬영) 1심 판결 현황’에 따르면, 2012년부터 2017년까지 6년간 불법촬영 혐의로 재판을 받은 7446명 가운데 징역형을 받은 피고인은 647명(8.7%)에 불과하다. 음란물 유포의 경우에는 더 처벌이 약하다. ‘정보통신망 이용촉진 및 정보보호 등에 관한 법률 위반(음란물 유포) 1심 판결 현황’에 따르면 1680명 중 징역형은 30명(1.8%)에 불과했다.

경찰청이 공개한 ‘최근 5년간 카메라 등 이용 촬영 범죄 검거인원 현황’에 따르면 2013년 2,832명이었던 불법촬영물 피의자는 2017년 5,437명으로 두 배 가까이 늘었다. 불법영상은 촬영물의 은닉이나 추가 유포 등의 위험성이 높은데도 불구, 구속 수사 비율은 2%대로 매우 낮은 실정이다.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 등 온라인에는 불법촬영 피해를 호소하는 게시물이 줄을 잇고 있다. 3년 간 남자친구로부터 불법촬영을 당했다는 한 여성은 23일 ‘거제도 조선소 성폭행 피해자입니다 제발 도와주세요’라는 제목의 글에서 “믿었던 남자친구가 제 알몸을 몰래 찍어 여러 사람에게 유포했다”며 “3년을 같이 살다시피 했기 때문에 55개의 동영상 말고도 훨씬 많은 동영상이 있을까 봐 두렵다. 그 동영상을 제가 모르는 곳에 유포하거나, 지인들과 돌려보며 낄낄댔을 생각을 하니 정말 죽고 싶다”며 고통을 호소했다.

1600명이 당한 모텔의 ‘초소형 불법촬영’ 사건도 있었다. 모텔 등 숙박업소 객실에 초소형 카메라를 설치해 투숙객의 성관계 장면 등을 인터넷으로 생중계한 일당이 경찰에 붙잡혔는데, 이들은 지난해 11월 말부터 이달 초까지 렌즈 크기가 1㎜인 초소형 카메라를 TV셋톱박스 틈새 등에 숨겨 사생활을 불법촬영해 유포하며 부당 이익을 올렸다. 불법촬영 사실을 모른 채 피해를 본 투숙객만 1600여명에 달했다.

이 사건은 해외에도 대서특필됐다. CNN은 홈페이지 첫 화면에 ‘수백 명의 호텔 투숙객의 모습이 실시간 방송됐다’는 제목의 기사를 실으며 ‘내 삶은 당신의 포르노가 아니다(My Life is Not Your Porn)’는 문구를 들고 거리 시위를 하는 한국 여성들의 모습을 조명했다. 영국 가디언은 “관음증 스캔들이 나라를 강타했다”며 “한국은 불법촬영이라는 전염병과의 전쟁을 벌이고 있다”고 보도했다.

김현아(법무법인GL 변호사) 이화여대 법학전문대학원 박사가 발표한 ‘성폭력 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특례법상 카메라 등 이용 촬영죄에 관한연구’ 논문에 따르면, 불법촬영이 전체 성폭력범죄에서 차지하는 비율이 2005년에는 3.0%에 불과하였으나 2014년에는 24.1%까지 증가했다.

불법촬영 범죄의 심각성이 해마다 지적되고 있지만, 이와 관련된 구체적 양형기준은 아직 없다. 대법원 양형위원회는 올해 중 불법촬영 범죄에 대한 양형기준을 만들기로 했다.

김현아 변호사는 “촬영물의 처벌이 강화되어야 하는 가장 큰 이유는 인터넷을 이용한 빠른 전파성을 인해 촬영물이 일단 유포된 경우 영구삭제가 거의 불가능해 피해 회복이 어렵다는 점”이라며 “빠른 과학 기술의 발전으로 촬영과 유포의 수단과 방법은 진화하고 있지만 법이 이러한 현실을 따라가지 못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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