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 ‘루스 베이더 긴즈버그 : 나는 반대한다’

루스 베이더 긴즈버그는 1993년 미국 역사상 두 번째로 여성으로 연방대법원 대법관에 임명됐다. 그는 기혼 여성이 기혼 남성이 받는 주택 수당을 받지 못하자 소송을 건 프론티에로 대 리처드슨 사건(1973)을 시작으로 성 차별을 깨뜨리기 위해 목소리를 내왔다. ⓒ영화사 진진
긴즈버그는 성차별 소송을 맡았던 당시를 떠올리며 "성차별 따위는 없다고 생각하는 남자들을 관객으로 마주하면서 성차별이 있다는 걸 입증하는 게 내 일이었다"고 말했다. ⓒ영화사 진진

“여성에게 특혜를 달라는 게 아닙니다. 다만 우리 목을 밟은 발을 치워달라는 것뿐입니다.” 다큐멘터리는 루스 베이더 긴즈버그의 강렬한 말 한마디와 시작한다. 한 평생 미국의 성 차별과 맞선 긴즈버그의 확고한 소신을 엿볼 수 있는 대목이다.

3월 28일 개봉한 ‘루스 베이더 긴즈버그 : 나는 반대한다’(감독 벳시 웨스트·줄리 코헨)는 미국 연방대법원 대법관인 긴즈버그의 일대기를 생생하게 담아낸다. 긴즈버그의 어린 시절부터 최근 모습까지 다양한 자료로 보여준다. 1993년 연방대법원 대법관 자리를 승인받기 위한 대법원 인준 청문회 당시 장면도 볼 수 있다.

긴즈버그가 하버드대학 로스쿨에 재학 중이던 1950년대 여성은 2%에 불과했다. 콜럼비아대로 옮긴 그는 수석 졸업을 했지만 여성이라는 이유로 로펌에 취직을 거부당했다. 합법적인 성차별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깨달은 긴즈버그는 변호인으로 성차별 소송들을 맡으면서 법을 바꿔나갔다. 1973년 기혼 남성 공군에게 지급된 주택 수당을 받지 못한 기혼 여성 공군 샤로 프론티에로가 낸 소송을 승소로 이끌어낸 게 첫 승리였다. 긴즈버그는 대법원 제소 6건 중 5건에 승소하며 성 차별을 깨뜨리는데 앞장섰다.

젊은 시절의 루스 베이더 긴즈버그. ⓒ영화사 진진
젊은 시절의 루스 베이더 긴즈버그. ⓒ영화사 진진

영화는 긴즈버그의 성차별 소송에서 승소하는 과정에 초점을 맞춘다. 특히 긴즈버그가 변호인 시절 대법원에서 “대법원장님 변론 시작하겠습니다”라고 말하는 육성이 들리면 보는 관객들도 숨을 가라앉히고 화면에 집중하게 된다. 변론을 앞두고 “끔찍할 정도로 긴장했다”는 긴즈버그의 떨림이 스크린을 넘어 느껴진다.

특히 편모에게 지급되는 양육수당을 편부에게도 지급해야 된다고 주장한 와이젠펠드 사건은 성차별은 남녀 모두에게 적용된다는 사실을 보여준다는 중요한 사례다. 긴즈버그가 단순히 한쪽 편의 손을 들어주는 게 아니라는 걸 입증하는 부분이다. 1993년 미국 역사상 두 번째 연방대법원 대법관에 임명된 그는 지금까지도 성 차별 조항 폐지를 위해 노력하고 있다.

다큐멘터리는 긴즈버그가 걸어온 길을 통해 미국 사회가 얼마나 남성중심사회였는지 보여준다. 개교 이래 150년간 남성 생도들만 받은 버지니아 대학을 한 여학생이 위법이라며 소송을 제기했다. 2006년 굿이어 직원 릴리 레드베터는 같은 일을 하는 남성보다 자신이 임금이 40% 적다는 걸 알게 됐다. 2014년 한 회사는 신앙을 이유로 피임을 직원 건강보험에서 제외했다. 그때마다 긴즈버그는 여성들의 권리를 위해 단호하고 적극적으로 의견을 냈다.

영화는 긴즈버그가 학창 시절 만난 남편과의 로맨스를 풀어내고 그의 취미인 뮤지컬 관람, 다양하게 뽐내는 유머 감각 등을 보여준다. 성차별 앞에서 강인한 모습을 보여준 한 여성 영웅의 뒷모습이다. 98분. 전체관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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