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우일렉트로닉스 홍보팀 채경아 과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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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산도 변한다는 10년. 채경아(33) 과장이 대우일렉트로닉스에 발을 들여놓은 햇수이자 그가 ‘과장’ 직함을 다는 데 걸린 시간이기도 하다.

그가 입사한 1994년은 대우일렉트로닉스(당시 대우전자)가 삼성·LG전자와 3대 산맥을 이루던 시기였다. 그야말로 잘나가던 때였다. 그러나 대우전자의 워크아웃 이후로 대우전자의 아성은 사람들의 기억 속에서 소리소문 없이 사라져갔다.

“힘들어서 그만두고 싶을 때가 왜 없었겠어요. 결심도 여러 번 했죠. 그런데 아버지 덕분에 마음을 다잡을 수 있었어요.” 아버지가 어떤 역할을 해주셨기에? “해외에서 일하신 지 15년도 넘었죠, 아마. 한 번은 ‘힘들어서 더는 못하겠어요. 더 이상 버티는 게 나한테 의미가 없는 거 같아요’하면서 아버지께 메일을 보냈어요. 바로 팩스로 답장을 보내셨더군요. 바로 그 편지 내용이 나를 잡아주었어요.” 팩스 내용을 잠시 따라가 봤다.

‘네가 지금 겪는 일들은 돈을 주고도 살 수 없는 인생의 소중한 경험이다. 계속 해가 뜨는 집에서는 해가 뜨는 걸 보고도 행복을 느끼지 못한다. 해가 뜨고 지는 곳에 있어봐야 인생을 제대로 알 수 있다.’

막내라서 아버지께 귀여움을 담뿍 받았던 채 과장은 아버지가 보낸 글을 보고 ‘고통도 싫고 나만 편하고 싶다는’ 어린 마음에서 한 걸음 성장할 수 있었다. 물론 어릴 때부터 ‘여성들도 일해야 한다’고 늘 강조하셨던 아버지의 말씀이 그의 온몸에 체화됐기 때문이기도 했지만. 그러나 그것뿐이었다면 10년이라는 세월이 그렇게 훌쩍 지나지는 않았을 것.

현재 대우일렉트로닉스 마포 사무실에는 600여명의 직원이 일하고 있다. 그러나 여성 과장은 채 과장을 포함한 두 명뿐이며 이들이 여성 관리직 최고참이다.

“내가 들어오기 전에 홍보팀에서 일하셨던 박승애 차장님이 지금까지 대우일렉트로닉스 여직원 가운데 최고 관리직이었다고 들었어요. 이제야 과장 직함을 달았지만 제가 그분의 뒤를 이은 것이죠.” 서른세 살. 그와 함께 입사한 남자 동기들은 군 가산점을 받았기 때문에 채 과장과 비슷한 시기에 과장을 달았다. 나이로 보았을 때는 적절하다. 그러나…

“지난 1월에 대리에서 과장으로 승진했어요. 여자라서 그런 건지는 잘 모르겠는데 나를 바라보는 눈길이 의미심장할 때가 많죠. 그런 눈길이 느껴질 때마다 과연 내가 잘 해낼 수 있을까 하는 부담감이 나를 누르곤 해요.” 아직도 주위에선 무심코 그를 채 대리라고 부르곤 한단다. 과장으로 승진한 것이 주위에서는 아직 실감나지 않는 모양이다.

“제가 잘 웃고 편해 보였나봐요. 한 번은 신입 사원들을 교육하는 자리에 갔는데 한 남자 신입사원이 저를 같은 신입사원으로 생각해는지 툭 치며 언제 왔느냐고 묻더군요.” 어려 보여 그랬겠지 하고 넘어갔다는 그의 웃음이 시원하다.

“승부욕이 강해요. 내게 맡겨진 일은 몇 날 밤을 새더라도 제대로 끝내야 직성이 풀리죠. 홍보 업무가 나한테 맞기 때문이기도 할 거예요.” 일이 좋긴 좋았나보다. 대우일렉트로닉스에 판촉·마케팅팀으로 입사한 그는 1998년에는 서강대 언론대학원을 다니면서 기업이미지와 마케팅에 대한 공부를 했다. “일 하면서 궁금했던 것들을 공부하는 과정에서 풀어갔어요. 일이 곧 공부가 된 거죠. 직장을 다니면서 논문을 쓰려니 코피도 여러 번 쏟았지만 그 때 배운 게 참 많아요.” 스스로 전문성을 키우는 노력이 있었기에 지금의 그가 있는 것.

10년 동안 한 조직에서 일하면서 그가 가장 절실하게 느낀 게 무얼까. “어떤 조직이든 사람이 둘 이상 모인 곳이라면 문제가 생기기 마련이에요. 그 당시에 조화 지점을 찾아내지 못하면 같은 문제를 다른 직장에도 그대로 가져간다고 생각해요. 예측이 아니라 확신에 가까운 제 생각이죠. 조직 안에서 생긴 문제의 열쇠는 언제나 그 조직 안에 있기 마련이거든요.”

여성 관리직이 가뭄에 콩 나듯한 대우일렉트로닉스에서 채 과장이 지금의 자리에 오를 수 있었던 데는 이런 성찰 과정이 있었다.

“전 대우가 좋아요. 말로 표현할 수 없는 끈끈한 정이죠. 사람들이 지나치다고 할 정도로. 대우일렉트로닉스를 예전의 위치로 꼭 올려놓고 싶어요.” 한 상사가 채 과장에게 “채경아 쟤는 임원까지 할 애야”라는 이야기를 했던 것도 무리는 아닌 것 같다.

조혜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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