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고등학교 때 난 수학, 물리를 어지간히 못했다. 수업시간에 하품만 나왔고, 활발히 움직여야 할 뇌는 활동을 정지했다. 시험만 보면 늘 수학, 물리 때문에 평균점수가 한없이 추락했다. 능력이 없나보다고 거의 포기했다. 후에, 물리학자인 동생이 다 학교에서 재미없게 가르친 탓이라고 위로해 주었지만, 내가 소질이 없다는 굳은 신념은 쉽게 바뀌지 않았다.

대신 영어는 잘했다. 영어가 재미나서 중학교 때는 교과서를 달달 외우고 다녔다. 재미를 붙이면 절로 잘하게 되는 것. 더 커서는 사운드 오브 뮤직 노래 가사나 프로스트의 시도 외우고 다녔다. 그러다 보니 매번 믿는 영어가 추락하는 평균을 끌어올렸다. 그 평균이란 게 뭐 그리 중요했는지.

대학 다닐 때 유학준비로 토플시험을 보았는데, 첫 번에 내 기대를 훨씬 넘는 점수를 받았다. 궁금해하는 친구들에게 이실직고했더니 소문이 나서, “너 000점 고지를 점령했다며. 대단하다!”고 여기저기서 칭찬을 해주는 게 아닌가. 쑥스러워서 “아니에요, 운이 좋았어요”라고 줄곧 대답했다. 그런데 문제는 스스로 한 말의 프레임에 갇혀서 실제로도 그렇게 생각했다는 것이다. 내 점수를 잘못 보냈다고 다시 연락이 오지나 않을까 몇 주간 공연히 마음을 졸였으니까. 토플점수가 운으로 나온다면, 그 시험을 주관하는 기관은 옛날에 문을 닫았을 것이다. 시험에 즈음해서 나는 두꺼운 토플책도 한 권 사서 다 풀어 보고 나름 준비를 열심히 했다. 그런데, 수학은 능력이 없어 못한다고 굳게 믿었으면서, 어찌 영어는 능력이 있어 시험을 잘 보았다고 믿지 않고 점수가 잘못 온 것일지 모른다는 엉뚱한 생각을 했을까?

어려운 일을 해내서 칭찬을 받고 ‘감사합니다’ 하면 자기가 실력 있다고 인정하는 것이다. ‘밤 좀 샜어요’는 평소에 실력이 좋지는 않은데 이번에는 노력해서 잘 되었다는 얘기다. ‘운이 좋았어요’ 하면 실력도 한 일도 없는데 어쩌다 잘 되었다는 뜻이다. 응답에는 개인차도 있지만 문화차도 있다. 대체로 서양문화에서는 ‘감사합니다’, 동양문화에서는 ‘아닙니다, 제가 뭘요’ 식의 응답이 많다. 개인주의 문화에서는 개인의 실력이나 공을 중시하는 반면, 집단주의 문화에서는 겸손과 화합을 더 중시하기 때문이다.

대학원에서 ‘성역할 심리학’ 과목을 듣는데, 자신의 성공이나 실패의 원인을 어디에 돌리는가에 성차가 있다는 것을 배웠다. 여성은 남성에 비해 자신의 성공을 내재적이고 안정적인 ‘능력’보다 외부적이고 불안정한 ‘운’에 더 돌리게 사회화되었고, 그 때문에 미래의 성공에 대한 자신감이 낮다는 것이다. 반대로 실패의 원인은 운이 아닌 능력에 돌려서, 이것도 역시 자신감을 낮춘다고 한다. 나는 머리가 띵 하는 충격을 받았다. 내 얘기 아닌가!

억울했다. 스물다섯쯤이던 그때까지 여성에게 강요된 겸손을 내재화하면서 내 자신감이 얼마나 쪼그라들었을까. 그간의 겸손을 후회했다. 나는 칭찬에 대한 응답을 “네, 감사합니다”로 바꿨다. 의연하게 대처하여 자아존중감을 지켜보자, 아자아자! 사소한 일이지만 나를 해방시키는 여성운동이었다. 해보니 은근히 기분 좋은 것이 아닌가. 왜 진작에 그러지 못했을까 싶었다. 후에 심리학 시간에 이 주제를 강의하면서, 특히 여학생들에게는 “아니에요, 아이 뭘요, 운이 좋았어요...” 등의 과도한 겸손 표현은 스스로에게 독이 되니 쓰지 말라고 권했다. 최근의 뇌과학 연구는 그런 습관이 뇌의 신경회로에 아예 길을 내며 자신감을 낮춘다고 밝혔다. 요즘 젊은이들은 성역할에 묶이지 않고 자신감이 넘치는데 내가 괜한 걱정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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