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보안법과 함께 폐지되어야 할 제도

이은경씨(44)씨는 지난 90년 사노맹(남한사회주의노동자동맹)사건 당시 국가보안법 위반으로 실형을 살았다. 하지만 그의 자유를 막았던 것은 징역살이가 다가 아니었다. 그는 ‘창살없는 감옥’인 보안관찰 대상자였던 것. 그는 남편이 같은 사건으로 조사를 받은 이후 ‘국보법을 위반한 범죄자들이 동거하고 있다’는 이유 하나로 자신이 운영하던 식당 카운터에서 자신을 감시하고 있는 형사와 마주쳐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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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안관찰제도는 국가보안법 등의 위반으로 3년 이상의 금고 또는 징역을 선고받은 사상범들 가운데 법무부장관이 재범의 위험성이 있다고 판단한 사람에게 2년간의 보안관찰처분을 내릴 수 있도록 한 제도이다. 악용될 소지가 있는 것은 2년 동안의 보안관찰처분이 무제한 갱신이 가능하다는 것. 특히 보안관찰처분의 ‘재범의 위험성’ 기준이 ▲준법정신이 희박하다 ▲이혼후 재혼하지 않고 있다 ▲무죄를 주장하며 재심청구를 제기했다 ▲활동능력이 왕성하다 등 자의적 기준에 따라 판단된다는 것이다.

김보람(가명·36)씨는 “이혼 후 결혼하지 않았는데 ‘결혼생활이 불안정하다’는 이유로 보안관찰을 당했다”며 “몇 번을 이혼하든 결혼을 하든 대통령도 침해할 수 없는 권리를 범죄 구성 여부의 잣대로 삼아 목을 죄어 왔다”고 토로했다. 김씨처럼 보안관찰을 벗어나기 위해 자신의 인생을 설계하기보다 ‘일상적인 삶’을 산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 결혼을 하면서 사회활동을 포기한 사례도 많다.

아이 셋을 키우고 있는 정유정(가명·36)씨는 “92년 국보법 위반으로 집행유예 선고를 받았는데 형사가 일거수 일투족을 감시했다”며 “남자친구를 만나러 가는 데까지 따라와 경찰에게 수첩에 뭘 적었나 보자고 해 봤더니 날짜와 시간별로 내가 했던 행동들이 낱낱이 적혀 있었다”고 말했다. 정씨는 감시의 눈초리에서 벗어나야겠다는 생각으로 결혼을 했으나 이후에도 형사와의 원치 않은 만남은 계속됐다. 정씨의 친구 안희정(가명·35)씨는 “1년 동안 보안관찰을 당하는 동안 사람이 반쪽이 될 만큼 피폐해졌다”며 “그렇게 당당하던 모습은 어디가고 항상 안절부절하는 모습만 보이더니 아이 셋을 낳고서야 안정을 찾은 것 같다”고 전했다.

민가협 김혜영 간사는 “보안관찰 결정사유 자체가 양심의 자유·표현의 자유·사생활의 자유 등을 침해하고 이중처벌에 해당한다”며 “국가보안법의 부당성에 대해서는 많은 논의가 되고 있으나 보안관찰법은 아직도 주목을 받지 못하고 있는 상태”라고 지적했다.

피해여성들은 자신이 보안관찰처분 대상자라는 사실과 출소 후 신고의무가 있다는 사실을 고지 받지 못한 채 경찰로부터 강요를 당해온 것으로 알려졌다. 박현신(가명·56)씨는 “보안관찰처분 결정이 내려지기 전인 ‘보안관찰처분대상자’ 신분일 때부터 경찰의 잦은 방문과 전화를 받아 노이로제가 걸릴 정도”라며 “출소하자마자 출소 사실을 신고하지 않으면 재구속될 수 있다는 말을 해 불안의 연속이었다”고 울분을 터뜨렸다.

특히 이 과정에서 경찰은 당사자가 아닌 가족들에게 ‘재구속될 수 있다’고 불안감을 조성해 가족을 출두시키거나 출소신고를 요구, 출소 사실을 신고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긴급체포한 사례도 있었던 것으로 드러났다. 또한 보안관찰처분 결정이 나기도 전에 집회 참가를 금지 당하거나 누구를 만났는지 대답하도록 강요하는 등 사생활 침해가 심각한 수준인 것으로 드러났다.

언제부턴가 ‘아, 이걸 하면

걸리지’라는 생각으로

스스로 사전검열을 하고

있는 나를 발견했을 때는

정말 치가 떨렸다

이은경씨는 “법적으로 형을 살고 나왔으면 그만이지 범죄자도 아닌데 경찰에 출소 신고를 하라고 강요했다”며 “행정적으로 처리하면 될 일이라고 생각하고 거부했는데 내가 경찰서 가기 전까지 몇 번이고 아버지를 출두시켜 조서를 작성하는 등 가족들을 고달프게 했다”고 말했다.

이씨는 “식당을 경영하고 있는데 형사가 찾아와 동향을 파악하고 보고해야 한다며 들락거려 큰 소리가 오간 적이 한두 번이 아니었다”며 “‘보안관찰처분이 되지 않도록 해주겠다’는 형사의 말만 믿고 있었는데 1년 후에 보안관찰처분장을 받고 나서야 당시 대상자 신분이었다는 것을 알게 됐다”고 전했다.

이씨는 98년 4월 보안관찰 취소소송을 걸어 1년후에 취소처분 결정을 받는다. 하지만 현행 법은 2년마다 재심 기간을 두고 검찰에게 결정권한을 둬 경찰이 이씨에게 ‘재범의 위험성’을 제기하면 다시 보안관찰처분이 내려질 수 있다.

인권사랑방 유해정씨는 “정부가 피보안관찰자들을 공개하지 않아 정확한 통계는 모르지만 약 7000명으로 추산하고 있다”며 “국가보안법 4조·6조와 관련 간첩죄와 내란죄에 해당하는 사상범들이 7∼8년 형을 살고 나와서도 보이지 않는 족쇄에 비인간적인 인권유린을 당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유씨는 가족이 간첩사건과 연관이 있거나 북에서 내려온 남편이 남한에 있는 아내를 만났을 경우에도 간첩으로 몰려 보안관찰을 당하는 경우도 있으며 사망한 이후에도 통지서가 날라와 보안관찰처분이 내려졌다고 하는 등 법 체계도 허술하기 짝이 없다고 강조했다.

피보안관찰자들은 보이지 않은 창살에 갇혀 피해망상증을 호소하고 주위사람들과의 관계를 끊으면서 ‘알아서 은둔’하는 생활을 해 왔다고 입을 모은다.

“항상 발목에 끈이 매여 있어 자유롭지 못하다는 생각이 든다. 친구들을 만나도 ‘다시 활동을 재개한다’는 의심을 받을까봐 결혼식에도 참석하지 않은 지 오래다. 언제부턴가 ‘아, 이걸 하면 걸리지’라는 생각으로 스스로 사전검열을 하고 있는 나를 발견했을 때는 정말 치가 떨렸다.”

40대를 넘어선 한 여성이 보안관찰이 이미 생활화돼 버렸다며 털어놓은 말이다. 보안관찰처분 결정이 난 피보안관찰자는 정기신고, 주거지 이전 및 여행신고 등의 의무를 지게 되는데 신고 사항이 광범위할 뿐 아니라 사생활을 보장받을 가장 기본적인 인권마저 박탈당하고 있다.

이은경씨는 “자신이 의도하지 않음에도 내 생활이 감시되고 있다는 것 자체가 비인적인 상황”이라며 “‘이 기간만 넘기면 된다’거나 ‘조용히 지내자’는 생각을 버리고 자신의 인권유린 실태를 드러내 ‘시민의 권리’를 당당히 얻어내는 적극적인 행동이 필요”하다고 당부했다.

민주화실천가족운동협의회 김혜영 간사는 “‘보안관찰’이 관찰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한 사람의 인생을 완전히 바꿔 놓을 수 있다는 점에 주목해야 한다”며 “국가보안법과 함께 시급히 폐지되어야 할 제도중 하나”라고 못을 박았다.

김 간사는 당장 인권침해 요소인 재범의 위험성에 대한 기준을 ‘결혼생활이 불안정하다’는 등 자의적인 해석에 두는 것이 아니라 처분의 근거를 명확하게 해야 할 것이라며 사람을 만나는 것 자체가 ‘왕성한 활동력’으로 판단되는 웃지 못할 일은 없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최근 국가인권위원회는 ‘보안관찰법의 위헌적 성격과 그에 따른 광범위한 인권침해’를 인정하는 보고서를 내놓았다.

인권위 임채호 담당관은 “피보안관찰자에 대해 활동능력이 왕성하다는 이유로 보안관찰을 하다가 2년후엔 ‘대인관계를 꺼린다’면서 처분결정을 내린다”면서 “기준이 자의적이라는 점과 보안관찰법의 반인권성을 국가 차원에서 확인했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고 밝혔다.

나신아령 기자arshin@women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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