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남] 조영숙 한국여성단체연합 국제연대센터 소장
11~22일 뉴욕 유엔본부서
63차 유엔 여성지위위원회
세계 150여개국 여성 전문가
모이는 ‘여성 유엔 총회’
여성단체 참가자 규모 늘려
“각국 우수 정책과 합의문으로
국내 성평등 현안 점검하고
정책·운동 방향 모색 가능”

조영숙 한국여성단체연합 국제연대센터 소장 ⓒ이정실 여성신문 사진기자
조영숙 한국여성단체연합 국제연대센터 소장은 “유엔 여성지위위원회가 제시하는 국제 기준은 우리가 도달해야 하는 목적지가 아니라 최소한 지켜야 할 ‘최저선’”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이날 3월 8일 세계여성의 날을 맞아 이 날을 상징하는 보라색 안경과 보라색 재킷으로 차려 입었다. ⓒ이정실 여성신문 사진기자

매년 3월이면 미국 뉴욕 유엔본부에는 세계 각국 여성 전문가들 수 천백 명이 모인다. ‘여성 유엔 총회’라 불리는 유엔 여성지위위원회(UN Commission on the Status of Women·CSW)에 참가하기 위해서다. 여성의 평등한 지위와 권리가 오늘날 상식으로 자리잡는 데에는 CSW의 공이 컸다. 한국 여성단체들은 올해 예년에 비해 참가자 규모를 늘렸다. 내년 북경여성대회 25주년을 앞 둔데다 산적한 국내 여성 현안을 국제무대를 발판 삼아 해결할 수 있다는 믿음이 커졌기 때문이다. 여성운동 국제연대 전문가로 손꼽히는 조영숙 한국여성단체연합 국제연대센터 소장은 “CSW는 다양하고 우수한 각국 여성정책과 여성운동이 모이는 세계 최대 여성 정책 시장”이라며 “글로벌 여성 인권의 틀에서 국내 성평등 현안을 점검하고 운동과 정책 방향을 모색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오는 11일부터 22일까지 10일간 열리는 제63차 유엔 CSW의 주요 주제는 성평등과 여성·여아의 임파워먼트(역량강화)를 위한 사회보호체계, 공적서비스에 대한 접근, 지속가능한 인프라 다. 이와 함께 60차 회의에서 제시한 ‘여성의 역량강화와 지속가능발전과의 연계성’을 검토 주제로 장관급 원탁회의, 고위급 상호대회, 전문가 패널 토론, NGO 부대행사 등이 펼쳐진다. 행사 마지막 날인 22일 최종 합의결론이 발표되고 올해 CSW는 막을 내리게 된다.

한국여성단체연합(여성연합)은 올해 회원단체 활동가 등 총 16인이 CSW에 참가하기로 했다. 백미순 한국여성단체연합 상임대표와 김정수 평화를만드는여성회 대표, 이미경 한국성폭력상담소 소장, 김민문정 한국여성민우회 상임대표, 김효선 여성신문사 사장 등이 참가자 명단에 이름을 올렸다. 보통 5인 내외 였던 참가자 수가 훌쩍 늘었다. 여성연합은 지난 2001년 유엔으로부터 특별자문단체지위(Special consultative status)를 부여받아 유엔 행사에 공식적으로 참여하고 있다. 여성연합 뿐 아니라 또 다른 특별자문단체인 한국여성단체협의회와 한국YWCA연합회도 각각 참가인단을 구성해 올해 CSW 여성단체 참가자는 25명 이상이 될 것으로 보인다.

조 소장은 올해 늘어난 여성단체 참가자 규모에 대해 “지난해 유엔 여성차별철폐협약이 한국 정부에 미투(#Metoo) 운동과 관련해 권고를 하고 그 중 일부를 한국정부가 받아들이면서 국제적 기준이 국내 정책 변화로 이어지는 경험이 주효했다”고 분석했다. 국제 사회가 제시하는 기준이 여성단체 활동과 단체가 정부에 요구하는 성평등정책에 대한 충분한 근거로 활용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지난해 유엔 여성차별철폐위원회(CEDAW)는 한국 정부에 모든 조치를 동원해 성폭력 피해자에 대한 ‘역고소’ 남발을 막으라고 권고했다. 미투 운동이 사회 전반으로 확산된 것은 한국정부가 추진해 온 성평등 정책이 실효적이지 못했고, CEDAW의 권고가 제대로 이행되지 않았다고 지적해 온 여성단체의 목소리가 반영된 결과다.

조영숙 한국여성단체연합 국제연대센터 소장 ⓒ이정실 여성신문 사진기자
조영숙 한국여성단체연합 국제연대센터 소장 ⓒ이정실 여성신문 사진기자

‘국제여성헌법’이라 불리는 유엔 여성차별철폐협약이 ‘권고’를 통해 각국 정부 정책의 변화를 이끄는 강력한 힘이 있는 반면, CSW의 합의문은 강제성은 떨어진다. 다만, 최종 합의문을 통해 여성정책과 성평등정책의 국제적 기준을 세운다. 조 소장은 “여성정책과 페미니즘에 대한 백래시(backlash·저항)가 심해지고 여성정책이 여성들의 이기주의로 매도되고 있는 현실”이라며 “정부가 들끓는 여론에 좌지우지되지 않고 합리적으로 필요한 여성정책을 추진하기 위해서는 보편적 인권과 평등의 관점에서 제시되는 국제 기준과 규범이 더욱 중요해지고 있다”고 강조했다. 여성연합은 올해 CSW에서 한국의 미투운동과 지역 성주류화 정책 등을 주제로 부대행사를 연다. 이번 발표와 토론을 통해 한국과 아시아, 글로벌 흐름을 비교하며 정책 방향에 대해 모색할 예정이다. 한국 외에도 행사가 열리는 2주 동안 수백 개의 부대행사를 통해 각국 여성정책과 여성운동의 현장이 뉴욕 한복판에 펼쳐진다.

미리 공개된 올해 CSW 회의 합의결론 초안에는 무보수 돌봄·가사노동을 인정하고 성과 재생산 건강과 권리 실현을 지원해야 한다는 내용이 포함됐다. 초안은 각국 정부의 의견을 받아 수정될 수 있다. 한국사회에서 본격적으로 논의되지 못하고 있는 이 사안을 어떻게 구체적으로 정책에 반영시킬 지는 이제부터 한국사회의 몫이다.

조 소장이 국제연대 영역에 처음 관심을 가진 것은 25년 전이다. 80년대 학생·노동 운동을 하다 대학에서 제적당한 조 소장은 인천지역에서 여성노동자운동에 참여하면서부터 여성운동을 시작하게 되었다. 인천여성노동자회 창립 멤버기도 한 그는 1996년 여성연합에 합류해 정책실장과 사무총장을 거쳤으며, 성매매방지법 제정이후 설치된 여성인권중앙지원센터(현 한국여성인권진흥원) 소장을 역임했다. 그가 처음부터 국제무대에 관심을 가진 것은 아니다. 정책실장을 맡아 당면한 여성 문제를 풀 방안을 찾기 위한 여러 시도 중 하나였다. 비슷한 상황을 겪은 다른 나라의 정책이 우리의 여성 이슈를 풀 수 있는 열쇠가 되지 않을까 라는 기대감이 컸다. 기대는 현실로 다가왔다. 호주제 폐지, 성매매 방지법 제정 등 여성계 숙원 과제를 푸는데 유엔이 제시한 권고문과 해외 정책 사례가 보탬이 됐다. 국제사회와 격리된 국내 상황의 한계를 느낀 조 소장은 뒤늦게 대학에 복학하면서 영어 공부를 시작했고 대학원에서 국제정치경제학과 여성학을 공부했다. 조 소장은 “이제 여성정책이 여성과 남성의 문제를 넘어 사회의 지속가능성, 평등, 정의, 인권 프레임과 통합적으로 논의되고 있다”며 “CSW가 제시하는 국제 기준은 우리가 도달해야 하는 목적지가 아니라 최소한 지켜야 할 ‘최저선’”이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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