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양육비해결모임’ 활동가들

아이에게 미안해…더 일찍 싸웠어야
아동학대죄 고소, 헌법소원 제기
미지급 배우자 사진전 열고
양육비 대지급 제도 촉구 삭발식도
이혼 후 아이와 면접 강제화 필요

양육비해결모임의 강민서 부대표, 김희진·신지수 스텝, 박혜진 언론홍보팀장(사진 오른쪽부터) ⓒ이정실 여성신문 사진기자
양육비해결모임의 강민서 대표, 김희진·신지수 활동가, 박혜진 홍보팀장(사진 오른쪽부터) ⓒ이정실 여성신문 사진기자

1인 시위자들로 북적이는 서울 여의도 국회 정문 앞에 2m 정도 돼보이는 공룡이 나타났다. 화려한 색상의 피켓 사이에서도 시선을 사로잡은 그 인형 역시 손에 노란 피켓을 들고 있었다. 꼭 해야 할 말이 있어서 온 게 분명했다. 피켓에는 ‘양육비 미지급은 아동의 생계를 위협하는 살인행위입니다’라는 문구와 큼지막하게 쓴 ‘양육비해결모임’이 글씨가 눈에 들어왔다.

‘양육비해결모임(이하 양해모)’은 지난해 9월 포털사이트에 카페를 개설한 이후 양육비 지급 제도 개선을 위해 1인 시위, 촛불문화제, 아동학대죄 고소, 1월 1일 청와대 앞 삭발식, 양육비 안주는 부모 사진전, 헌법소원 제기 등 짧은 기간에 많은 활동을 하면서 목소리를 내고 있다. 이 단체 대표는 양육비를 주지 않는 부모의 신상정보를 공개하는 사이트 ‘배드 파더스(https://badfather540837381.wordpress.com/)’를 운영하는 구본창씨로, 사이트와 단체가 연결돼 있다.

양육비는 아동의 생존권과 직결된 문제지만 그동안 대부분의 양육한부모들은 전 배우자에게서 양육비를 받지 못하면서도 문제를 공론화하는 것조차 힘들었다. 이혼에 대한 편견과 금전이라는 예민한 문제 등이 얽히면서 부담감 때문이다. 당사자조차 목소리를 내지 못하다 보니 만들어진 제도도 부실하고 개선도 더딜 수밖에 없었다. 2018년 12월 기준 양육비 이행이 이뤄진 비율은 32.3%에 불과하다.

최근 양육비 지급 문제에 대한 공감대가 점차 확산되고 있지만, 반대로 아이를 볼모로 돈을 챙기려 한다는 비방이나, 아이를 키울 경제적 능력도 없이 양육권을 가지려 한 게 문제라는 맹목적인 비난도 따라다닌다.

지난달 28일 여성가족부와의 간담회를 마친 뒤 여성신문을 찾은 양육비해결모임 강민서 대표와 박혜진 팀장, 신지수·김희진 회원은 1시간 반 동안 잠시도 쉴 틈이 없이 이야기를 이어나갔다. 양육한부모로서 어떤 어려움을 겪고 있는지, 양육비를 지급하지 않으려 하는 전 배우자의 행태와 함께 양육비를 받는 제도가 얼마나 부실한지 등 이슈가 다양했다. 무엇보다 그들의 이야기를 듣고 공감해줄 사람이 절실해보였다.

양육비 해결모임 회원들이 1일 서울 종로구 청와대 앞에서 양육비를 지급하지 않아 ‘배드파더스’ 사이트에 신상이 공개된 남성 230명, 여성 23명의 얼굴과 신상을 공개한 사진전을 열고 있다. ⓒ이정실 여성신문 사진기자
양육비 해결모임 회원들이 지난 1월 1일 서울 종로구 청와대 앞에서 양육비를 지급하지 않아 ‘배드파더스’ 사이트에 등록된 남성 230명, 여성 23명의 얼굴과 신상을 공개한 사진전을 열었다. ⓒ이정실 여성신문 사진기자

 

통상 미취학 연령 때부터 엄마가 양육해 온 경우가 많아 친권과 양육권은 대부분 엄마가 갖게 된다. 이들에 따르면 약 90% 정도다. 그럼에도 경력이 단절된 여성들의 경우 이혼 후 혼자 아이를 양육하면서 경제적으로 큰 어려움을 겪게 된다.

“이혼하면서 아이 양육을 맡은 어머니 또는 아버지가 혼자서 경제활동과 돌봄을 책임져야 한다. 특히 어머니의 경우 임신과 출산, 육아로 인해 경력단절인 상태가 많아 이혼 후 갑자기 좋은 직장을 구할 가능성은 사실상 불가능하다. 급히 직장을 구하다보니 급여가 적고 경력과 무관한 일을 하는 경우가 많다.”

특히 아이가 어릴 경우 더 나은 직장을 구하는 것은 포기하다시피 해야 한다. 경력단절 여성이 많다. 경제활동과 양육, 살림을 혼자 하다보니 아이를 방임하지 않으려고 빨리 퇴근할 수 있는 일이나 알바를 할 수밖에 없다. 특히 문제는 아이가 아플 때다.

강민서 대표는 양육한부모 중에는 양육비가 절실하다고 해도 받으려고 노력하는 사람보다 포기한 사람이 훨씬 많다고 했다. 받기 위한 소송이나 절차가 복잡하고 힘들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양육비해결 활동에 나선 이들은 전 배우자가 형편이 넉넉하고 수입이 안정적인데도 지급하지 않기 위해 악질적으로 행동하기 때문이라고 했다. “먹고 살기도 바쁜데 양육비를 지급할 형편이 안 되는 사람이라면 시도조차 안 한다”는 거다.

박혜진씨는 이혼한지 3년이 훌쩍 지났지만 양육비를 한 번도 받지 못했다. 전 남편은 양육비를 지급하지 않기 위해 재산을 빼돌렸을 뿐만 아니라 회사와 짜고 일용직으로 신고했다. 차를 추심했더니 차량등록소로 정보가 넘어가는 3일 사이에 매각하고는, 조카 명의로 에쿠스를 사서 타고 다녔다. 박씨로선 법대로 하다가 결국 포기하고 말았다. 그러다 이혼 3년 만에 양해모 활동을 하고 ‘배드 파더스’에 남편의 신상정보를 올리게 된 결정적인 계기가 있었다.

“지인이 골프치러 출국하는 전 남편과 같은 비행기를 탔다며 사진을 몰래 찍어 보내왔길어요. 지인이 알려준 입국 정보에 맞춰 아이를 데리고 공항에서 기다리다가 우연히 마주친 척 했어요. 그동안 아이는 아빠를 보고싶어 했는데, 그 사람은 아이를 간단하게 인사만 하고 가버리더라구요.”

양육비해결모임은 공룡 인형을 쓰고 서울 여의도 국회 앞에서 피켓시위를 벌이며 문재인 대통령의 공약인 양육비 대지급 제도 도입을 촉구하기도 했다.
양육비해결모임은 공룡 인형을 쓰고 서울 여의도 국회 앞에서 피켓시위를 벌이며 문재인 대통령의 공약인 양육비 대지급 제도 도입을 촉구하기도 했다.

 

아이의 아버지이면서 아이의 양육비를 지급하지 않는 이유는 무엇 때문일까. 이들은 “안 좋은 감정에서 헤어지는 상황이다 보니 양육비를 주면 아이에게 안 쓰고 배우자가 다 쓸거라고 의심하기 때문”고 했다.

이들은 지난해 11월에는 양육비 미지급자들에 대해 아동학대죄로 검찰에 고소장을 제출하는가 하면 지난 2월에는 양육비 제도와 관련해 진정입법부작위 헌법소원을 제기했다. 법이 있긴 하지만 사실상 없다고 볼 만큼 양육비 제도가 부실하다는 것이다.

이들은 제재와 처벌 외에도 전 배우자와 아이가 더 자주 만날 수 있도록 제도 개선이 필요하다고 지적한다. “현행법은 이혼 후 양육권을 가진 한부모가 전 배우자에게 아이를 보여주지 않는 문제에 대해서만 제재하고 있는데, 면접을 지키게 하는 제도도 필요하다”는 것이다. 양육비 지급 의무가 있는 부모가 아이를 만나면 양육비의 필요성을 갖게 되고, 아이의 정서에도 좋다고 했다.

이들의 활동을 소개하는 기사의 댓글에는 아이를 ‘돈줄’로 삼아 뜯어낸다고 비난하거나 앵벌이나 꽃뱀이라는 악의적 댓글도 달린다. 경제적 능력이 없으면 아이를 데리고 오지 말았어야 한다는 비난도 흔하다. 아이 양육과 양육비 문제에 공감을 못하는 이들이 그만큼 많다.

신지수씨는 경제적 어려움에도 어쩔 수 없이 아이를 데려와야 했던 이유가 있다고 했다. “저는 가정폭력 피해자다. 아이 역시 직간접적으로 피해를 겪은 피해자다. 그런 배우자한테 아이를 어떻게 맡기나. 아이의 정서를 위해 어쩔 수 없이 데려오는 가정이 적지 않다”면서 “가장 중요한 것은 아이가 존중받고 보호받을 권리”라고 강조했다.

저작권자 © 여성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