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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민원기 기자>

“누가 그러더라. ‘남자를 어떻게 그리 잘 아냐?’

촬영감독님은 영화를 찍으면서 내내,

이건 확실히 여자가 보는 남자다 그러시더라”

영화계에 종사하는 4인방을 데려다 좌담을 빙자한 술판을 벌인 적이 있다. 이쪽 업계에서는 이름을 대면 알 만한 김모씨, 이모씨 등은 왕창 맛이 가서, “한국 영화가 말야…” 이러며 혀에 스프링과 꼬챙이가 달린 말들을 마구 뱉어낼 때, 유독 꼿꼿이 허리 펴고 앉아 멀쩡한 발음으로 가끔 한 마디를 던지며 ‘나, 신중’을 이마에 써붙이고 묵묵히 술잔을 기울인 이가 있었다. 바로 박찬옥이었다. 1회 서울여성영화제 수상작인 <있다> 등등으로 당시 그는 단편계에선 꽤 알아주는 인물이었다. 그녀가 드디어 단편계를 떠나 장편계로 입문했다. 그 영화가 이름 한번 들어봤음직한 영화 <질투는 나의 힘>이다. 박해일, 배종옥, 문성근이 나오는 이 영화는 아직 극장에 걸리진 않았지만 소문은 귀에 걸리고 발에 걸렸다. 본 이마다 이 영화를 말할 땐 침을 튀기는 게 예의인 양 인간수도꼭지 노릇을 하기 바빴다. 죽이더라. 진짜 잘 만들었다. 그 남자 진짜 재수 더럽더라. 이하 생략. 또 물건을 알아본 영화제들은 속속 그의 작품에 상장을 수여했다. 부산영화제 뉴 커런츠 부문 최우수 아시아작가상, 로테르담 영화제 최고상인 타이거상. 수상 소식이 난무한 가운데 영화는 드디어 4월말께 극장에 걸린다. “누나, 그 사람이랑 자지 마요… 꼭 자야 된다면 나랑 자요… 나도 잘 해요…” 이런 귀여운 카피를 달고. <공동경비구역 JSA> 박찬욱이 아닌 주민등록번호 뒷자리가 2로 시작하는 박찬옥 감독은 말했다. 다음과 같이.

- 영화는 오래 전에 끝났고, 요즘 뭐하나?

“영상원 대학원 다니고 회사일 한다. 청년필름 일.”

- 영화 끝난 게 언젠데, 개봉이 늦다?

“프로듀서의 판단인데 주연배우(박해일)가 신인이라, 인지도를 조금만 더 높인 다음에 가는 게 좋지 않을까 해서 그렇게 됐다.”

- 영화 만들기에 어려움은 없었나? 보통 만들기로 하고도 엎어졌다 뒤집어졌다 그러잖나.

“사람들이 나더러 운이 좋다고 그러더라. 처음 시나리오를 써서 친구한테 보여줬다. 그런데 그 친구가 여기 청년필름 광수형한테 보여줬다. 광수형이 관심 있다고 그래서 명필름에 보여주고. 명필름에서 영화 만들자고 하더라.”

- 이런 일.사.천.리네? 그래도 시나리오가 좋았으니 그렇지 않았나?

“사람들이 운이 좋다고 그러는 게, 그때는 우리 영화가 막 거품이 일던 시기였다. 한참 투자가 일던 시기. 지금 같으면 힘들지 않았을까?”

- <집으로…> 이정향, <고양이를 부탁해> 정재은 등, 요즘 들어 부쩍 여성감독이 많다. 여성들이 영화감독 하기가 좀 더 쉬워진 건가? 아니면 이들이 만든 영화가 성공해서 그런 건가?

“그런 면도 있겠지. 하지만 여자 A가 잘 만든다고 해서 여자 B가 잘 만드는 건 아니다.”

- 영화감독 하려면 연출부를 좀 겪어야 하진 않나? 감독을 하려면? 그리고 연출부 뽑을 때 보면 주로 남자들 뽑지 않나?

“나도 연출부 생활을 조금 했다. 그건 사람들, 감독님들 생각마다 다른데, 작업을 할 때 남자만 필요한 게 아니라 여자도 필요하다. 옛날엔 남자만 뽑았나봐?”

- 요즘 연출부 뽑는 광고 나온 거 못 봤나? 운전, 엑셀 잘 하는 남자. 그렇게 많이 나오던데.(웃음) 여자 남자 안가리면 요즘 감독을 지향하는 여자들한텐 희망이 있겠다. 그럼 영화에 대해 간단하게 소개해달라. 질투는 나의 힘. 기형도 시 제목 갖고 만들었다 들었다.

“제목을 거기서 따왔다. 영화는, 자기 애인을 뺏아간 남자한테 또 애인을 뺏기는 남자 이야기다.”

- 그럴 경우 보통은 복수를 하지 않나?

“그렇게 얘길 하면 ‘왜 복수를 안 하지?’ 그런다. 하지만 복수할 이유가 없다. 배신한 애인한테 복수를 하면 했지. 상대방이 무슨 잘못인가. 사람들이 왜 그렇게 생각을 하는지 모르겠다.”

- 그 동안 1년에 한 편씩은 단편영화를 만든 것 같다. 이번 영화가 단편 만들면서부터 원래 하고 싶던 영화였나?

“같은 사람이 찍어서 단편들이 유사한 느낌이 남아있는 거 같다. 사람들이 내 단편영화 보면 두 가지 부류가 있다고 그런다. <있다>와 <느린 여름> 같이 사실적인 것이 있고, 현실, 리얼리즘 이런 것보다는 다른 느낌을 주는 영화가 있고. 두 가지가 있다. 이 영화엔 그 두 가지가 다 들어갔다.”

- 이 영화 주연을 맡은 박해일에 대해 말해달라. 신인인데?

“그가 나온 연극을 보고 그를 떠올렸다. 그런데 다른 사람들이 그가 이미 영화 나왔다 그러더라. <와이키키 브라더스> ‘어. 안 되는데.’ 그러고 보니 다행히 고등학생이었다. 그가 신인상 받은 연극 <청춘예찬>에서도 고등학생이었다.”

- 홍상수 감독 연출부 생활을 한 걸로 안다. 홍상수 감독 영향을 받았나? 물론 홍상수 감독과 비슷하단 말에, ‘그럼 내가 이름 비슷하다고 박찬호냐?’라고 모 신문 인터뷰에 말한 건 봤다.

“하하하. 어느 감독 밑에서 수업을 받을까 하고 생각하고 연출부를 한 건 아니다. 영상원 대학원 수업 중에 현장 실습이 있었다. 그때 마침 홍상수 감독님이 영화를 찍을 거란 소릴 들었다. 그래서 연출부 일을 한 거고. 감독님과 연출부 개념이 요즘은 옛날과 많이 다르다. 옛날 감독들은 연출부를 하면서 연출을 배운다면, 요즘은 스스로 단편을 하면서 수업을 쌓는다. 난 연출부 하기 전 이미 5편의 단편을 했다. 단편도 영화감독이라고 인정을 해주고 그런 분위기 속에서 있었던 사람이다. 이전 연출부랑 다른 분위기다 생각했는데, 막상 영화를 개봉 앞두고 있으니까 난 홍상수 감독 연출부다. 그게 너무 크더라. 이전 내 단편영화를 알고 있고 활동한 건 전혀 없는 거 같고. 아까도 말했지만 난 이 영화가 단편영화의 연장선 상에서 만들었다 생각했는데, 사람들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 듯이 말하더라. 홍상수 감독님이 워낙 유명하시니까 그런 소릴 듣게 되었다고 생각하긴 하는데. 내가 운이 좋아서 다음 영화를 만들게 되면 그런 얘기들은 다 없어질 거라 생각한다.”

- 이 영화 보고 홍상수 감독이 뭐라더냐?

“‘사람들은 속일 수 있겠다’ 그러시더라. 하하하. 칭찬도 해주셨다. ‘시각이 좋다.’ 나한테 직접 하신 말은 아닌데 다른 사람한테 그러셨다더라. ‘걔로선 최선을 다했다’.”

- 그거 욕인가, 칭찬인가.

“나로선 재밌다. 진짜 그런 말씀을 하신 건지 여쭤보진 않았지만.”

- 감독님이 이전에 만든 단편 작업을 봤던 친구가 이번 영화에 여성의 자의식이 나올 줄 알았는데, 예상과 달랐다고 말하더라.

“내가 단편영화를 할 때 세 편이 여자 주인공, 두 편이 남자 주인공이었다. 내가 같이 작업한 <생강> 때문에 그렇게 생각한 거 같다. 나는 영화를 만들면 주인공이… (말하다 말고 문득, 청년필름 스태프 한 명이 테이블 위에 놓고 간 먹을 것을 가리키면서, 미안한 표정으로) 이거 갖다 줬는데 시선 한번 안 줬네… 얼마나 무안했을까… 주인공이 누구냐에 따라서 무게 중심이 달라진다. 이번엔 남성이 메인으로 나온다. 그에 맞춰 균형을 잡는 게 중요하다 생각한다. 영화속에서 여성의 페미니즘을 나타내야 한다기보다 그냥 만든다. 하지만 내가 여성이고 여성을 주인공으로 하다보니 이렇게 목소리도 자연스럽게 나올 거다.

- 예전엔 이현승 감독이 여성주의를 내건 영화를 만들고 그랬다. 혹시 앞으로 이런 영화를 만들 생각은 없나?

“이런 영화라니? 이성적으로 논리적인 뭔가를 내세우면 많은 어려움이 있다고 생각한다. 그렇게 가면 아마 도식적이고 기계적이고 앙상한 주제의식만 남아있는 영화가 되기 싶다. 그것보다 자기가 훨씬 더 본능적으로 영화를 만들어야 하지 않나. 그게 녹아들 수 있게. 영화를 만들면서 난 이런 목소리를 내야겠다 하는 것은 내가 원하는 영화 스타일은 아닌 것 같다. 내가 제일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은, 내가 내 자신이 여성이기 때문에 나한테 거짓말 안 하고, 내 시각이 제대로만 되면 제대로 된 여성 영화가 만들어질 거라 생각한다. 그건 나란 사람이 제대로 된 좋은 시각을 가지고 있어야지 되는 건데, 그걸 잘할 수 있을지 없을지는 모르겠다.”

- 마지막으로 이 영화를 볼 이들에게 한 마디. 많이 봐서 흥행에 성공하게 해달라, 이런 소리라도 좋다.

“주인공이 남자다. 그렇지만 남자가 남자를 보는 것과 좀 다른 면이 있다 생각한다.”

- 다른 이들은 뭐라 안 하냐?

“누가 그러더라. ‘남자를 어떻게 그리 잘 아냐?’ (웃음) 촬영감독님은 영화를 찍으면서 내내, 이건 확실히 여자가 보는 남자다 그러시더라. 그런데 확실히 범위를 나누긴 어렵지 않나? 내 속엔 여성성도 있고 남성성도 있다.”

조은미 기자cool@women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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