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신경아 한국여성학회 35대 회장
페미니즘은 하나가 아니라
다양한 생각의 차이를 인정

20대 남성의 젠더 갈등은
정체성 혼란과 기득권이 원인

신경아 제35대 한국여성학회 신임회장
신경아 제35대 한국여성학회 신임회장

 

“2018년은 한국여성운동사에서 정말 중요한 시기였고, 2019년은 그 의미를 확장하고 심화시키는 시간입니다. 미투운동 이후의 제도와 문화의 두 축이 어떻게 변했는지, 과제는 무엇인지 짚어볼 계획입니다.”

한국여성학회 35대 회장으로 선출돼 2019년을 이끌어가는 신경아(58) 한림대학교 사회학과 교수의 각오가 남다르다. 한국여성학회는 1984년 창립 이래 한국사회에 여성학을 중요한 학문 분야로 정착시키는데 주력해왔다. 페미니즘의 물결 위에 올라탄 한국사회가 제대로 나아갈 수 있도록 점검하면서 방향을 제시하는데 힘쓸 것으로 기대된다. 일상화된 폭력, 구조적 성차별부터 페미니즘에 저항하고 부정하는 사회 현상이나 페미니즘 내부의 다양한 목소리에 관한 연구 등 과제가 산적해있다.

신 교수는 사회 참여에 적극적이면서 경청과 소통을 특히 중시하는 여성학자 중 한명이다. 서울대 영어교육학과(79학번)를 졸업 후 서울대에서 사회학 석사, 서강대에서 사회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 현재 경찰청 인권위원회 위원, 여성가족부장관 정책자문위원 등으로 활동하고 있다. 지난해 연말에는 민주노총이 개최한 자그마한 좌담회의 사회를 맡아 여성노동자들의 경험담을 통찰과 흥미를 더해 이끌어내는가 하면, 4차산업혁명과 노동이라는 주제의 국가정책기획회의에 참석해 젠더 관점을 중요성을 제시했다.

한국사회에 대한 신 교수의 진단은 분명하다. “미투운동이라는 중대한 변화를 경험했다. 이제 한국 여성들은 돌아올 수 없는 강을 건넜다. 돌아오고 싶어 하지도 않을 것이다. 앞으로 중요한 것은 헤게모니를 가진 주류집단이 이 변화에 어떻게 대응하고 함께 손잡고 나갈지 고민하는 것”이다.

올해 학회의 학술대회 주제는 무엇인지?

크게 두 가지다. 하나는 미투운동 1년이 지난 시점에서 성폭력 관련 제도와 구성원의 의식 문화 두 축에서 어떻게 변했는지, 성과와 과제가 무엇인지 짚어볼 것이다. 또 ‘페미니즘‘들’ 시대의 반페미니즘‘이다. ‘백래시’를 감으로는 알고 있는데, 엄밀하게 정의가 제대로 되고 있지 않다.

페미니즘‘들’의 시대는 어떤 의미를 담고 있나.

페미니즘은 하나가 아니다. 굉장히 복잡하다. 중요한 건 생각의 차이에 대해 억압하지 않는다는 거다. 말씀하시라, 듣겠다는 거다. 생각과 경험, 실천의 차이를 존중함으로써 한국사회에서 페미니즘이 좀 더 꽃을 피우고 성숙해야 한다.

10~20대 여성들이 특히 페미니즘에 관심이 많은데 소통이 쉽지 않다는 우려도 있다.

개인적으로는 적극적으로 활동하는 젊은 여성들 단체에서 연락이 와서 만나 이야기 나눴다. 억압의 경험, 분노의 감정서 출발하는 것은 좋은데 의미화하기 위해서는 페미니즘 공부하자, 이론을 보셔야 한다, 더 많은 토론이 필요하다고 했다. 광장에 나와서 함께 토론하자. 실제로 대학에서 여성학 수업을 하면 처음엔 몇몇 학생들은 마스크 쓰고 와서 말도 안하다가 한 학기가 지나면 생각을 열고 경험을 함께 공유하려는 모습을 보여주더라. 몇몇 대학의 학과 안에서 페미니즘 동아리가 만들어지고, 실천적으로 나아가고 있다.

신경아 제35대 한국여성학회 신임 회장 ⓒ이정실 여성신문 사진기자
신경아 제35대 한국여성학회 신임 회장 ⓒ이정실 여성신문 사진기자

여성학은 어떻게 시작했나.

페미니스트의 첫 번째 시작은 경험이다. 나의 경험이 내가 배운 지식과 이론과 언어로는 설명이 안 되는 거다. 내가 10~20대 때 한국사회는 이제 민주적이고 평등하고 좋은 사회라고 하는데 저는 계속 의문이 들었다. 여자들은 대학도 못가고, 대학 나와도 취업이 안 되고, 취업을 해도 결혼하면 그만둬야 하고 이건 어떤 언어나 지식으로도 설명이 안 되더라. 그래서 다른 지식 다른 언어를 찾겠다, 해서 삼삼오오 모여 책을 읽기 시작했고 페미니즘을 접했다.

현재 성차별이 가장 심각한 영역을 꼽는다면.

성평등한 노동, 일터에서의 성평등이 중요하다. 여성과 남성이 일방적인 의존이 아니라 평등하게 함께 가려면 기본적으로 의식주를 해결할 수 있어야 하는데, 여성들에게 가장 열리지 않는 영역이 일자리다. 일자리를 얻기도 어렵지만 승진이나 직업 훈련 등 여러 면에서 불평등한 상황이다.

여성도 남성과 똑같이 평생 일할 수 있어야 하고 동등한 수준의 대우를 받아야 하지만 한국의 여성 고용률은 여전히 50% 조금 넘는다. 성평등한 노동이 왜 필요한지, 일자리를 왜 얻어야 하는지, 경력단절 같은 걸림돌에 걸려 넘어지지 않으면서 퇴직 때까지 동등하게 일할 수 있게 문제의식을 확산하고 제도적 방안을 찾아보려고 한다.

20대 남성의 젠더갈등 문제를 심각한 사회문제라고 인식하는 이들이 많다.

두 가지 측면이 있다. 먼저 남성 정체성의 위기다. 아버지세대의 가부장적 남성성을 따라가고 싶지도 않고, 차별·억압적인 것도 싫어한다. 그렇다고 여성의 성평등한 정체성을 수용하는 것도 생물학적 차이 때문에 한계가 있다보니 혼란을 겪고 있다. 취업과 군대 문제로 인한 분노와 불안감을 투사할 곳이 없어 약한 곳을 뚫고 나온 것이 여성혐오다. 그러나 무엇보다 이 국면은 50대를 중심으로 한 주류 헤게모니를 쥔 남성 권력집단에 의해 조장되고 있다. 20대의 정체성의 위기상황과 생존적 불안을 젠더갈등으로 치환시키면서 젊은 여성의 문제로 몰아가려는 발상도 보인다.

개선 방안은 무엇인가.

궁극적으로는 남성들이 어떻게 건강하고 자유롭고 평등하게 살 것인가, 여성과 어떻게 함께 살아갈 것인가, 내 성정체성은 무엇인가를 성찰하고 답을 찾아갈 수 있는 지식과 언어를 줘야 한다. 이를 위해 필요한 게 페미니즘 교육이다. ‘비욘드 젠더(Beyond Gerder)’ 생물학적·사회적 젠더 억압에서 벗어나 자유롭게 살라는 게 저의 페미니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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