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양한 기대, 지지 쏟아져

참여정부 여성장관 ‘4인방’에게 거는 여성들의 기대는 대단하다. 그들이 단지 여성이어서가 아니다. 변화와 개혁, 평화를 바라는 온 국민의 열망으로 탄생한 새 정부 안에서 그들이 가장 진취적이고 역동적이란 사실을 보고 있기 때문이다. 그들의 입각이 여성 권익을 또 한 계단 높인 사건이었다면, 그들이 밀어붙이는 개혁은 양성평등 사회를 앞당기는 촉매가 될 터. 여성들은 든든한 지원군을 자처하고 있다. 업무를 시작한 여성장관들의 포부와 개혁 구상, 주변의 반응을 살펴본다.

통솔·기획력 두루 갖춘 강금실 법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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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오마이뉴스 권오성>

강금실 전 민변 부회장의 법무부 장관 입각이 알려지면서 장안을 시끄럽게 한 것은 ‘46세의 여성 장관’이란 보도였다. 땅에 떨어진 검찰의 위상을 높이고, 국민에게 다가가는 법무행정 구현이란 당면 과제를 풀 능력 여부를 제쳐두고 나이와 성이 관심사가 된 것. 물론 속내는 ‘젊은 여성이 과연 할 수 있겠냐’는 의심이었을 터. 강 장관은 24살이던 81년 사법시험에 합격, 83년부터 12년 동안 전국을 돌며 판사 생활을 했다. 서슬 퍼렇던 5공 때 ‘시국사건 관련 학생들을 풀어주는’ 판결을 많이 한 것은 그의 ‘시국관’이 반영된 것. 이 때문에 비교적 ‘한직’인 가정법원으로 자리를 옮겼다는 후문이다.

절친한 동료인 김영란 대전고법 부장판사는 “정치적 판결은 소신대로 밀어 붙였고, 일반 사건은 철저히 조사해 올바르게 판결했다”며 “굉장히 늦게까지 남아 일을 했고, 마무리를 철저히 했던 훌륭한 판사였다”고 이 때를 회고했다. 93년엔 김덕주 당시 대법원장의 부동산투기 의혹 사건 때 평판사회의를 이끌어 대법원장을 사퇴토록 하는 통솔력을 보였다. 강 장관은 사법연수원생일 때도 전 남편이 집시법 위반으로 구속되자 구명운동을 벌이는 등 남다른 강단을 갖고 있다.

96년 변호사로 개업한 뒤엔 민변 회원으로 시국사건을 도맡고, 양심수 석방 캠페인에 동참하는 등 사회문제를 푸는 데 활발했다. 작가 장정일씨 변론, 민혁당 사건 변론, 고문경관 이근안 고발 등을 주도해 ‘인권변호사’로 통했다. 2000년 법무법인 지평 대표 변호사가 됐을 땐 감췄던 ‘끼’가 발산됐다고 주변에선 입을 모은다. 전문경영인으로서 법인을 업계 최고 반열에 오르게 했다는 것. 이 덕에 세계경제포럼이 뽑은 ‘아시아의 미래를 짊어질 차세대 한국인 리더’에 뽑히기도 했다.

노무현 대통령은 강 장관의 이런 능력을 알아본 수많은 이들 가운데 한 사람일 뿐이다. 노 대통령은 지난달 서열을 무시한 여성 법무부 장관 임명에 대해 “검찰개혁이 최우선 과제로 떠오른 때에 종전의 검찰·법무부와는 다른 법무 문민화의 시대”열어야 하기 때문이라고 이유를 설명했다.

“법무부·검찰 위상 회복”

강 장관의 개혁구상은 ‘법무부와 검찰의 위상 회복’으로 요약된다. 검찰의 수사권 독립과 법무부의 적절한 견제를 뜻하는 말이다. 지난달 27일 취임사에서도 “법무부는 검찰의 상급기관으로 인사권을 통해 견제하고, 수사권은 검찰총장 이하 검사들에게 전적으로 속한다”고 밝혔다.

여성 현안에 대해서도 해박하다. 강 장관은 사법연수원 교수로 있을 때부터 호주제 폐지를 강의했고, 민변 여성특별위원장을 맡은 뒤에도 곳곳에 강연을 다니며 이를 강력히 주장했다. 본지와 인터뷰에서 “국민의 인권, 특히 여성과 아동 등 소수 인권을 보호하는 정책이 급하다”고 밝힌 것처럼 여성 현안을 풀겠다는 의지가 굳세다. “호주제 폐지 의지에 대해선 두말할 필요가 없다. 꼭 해야 할 일이라고 생각하면 반드시 해내는 사람이다. 법무부 장관으로서 호주제와 관련해 할 일이 있다면 꼭 완수할 것이다.” 김영란 대전고법 부장판사의 또 다른 증언이다.

딱딱한 ‘대쪽’ 같기만 한 걸까. 지인 최정순 웅진닷컴 이사는 “법조계뿐만 아니라 여러 후배들에게 두터운 신망을 받는 인간적인 사람”이라며 “흔히 말하는 밑바닥 인생들에게도 깊은 관심을 갖고 있으며, 사람을 만날 때 가식이 전혀 없다”고 말했다.

‘문화적 소양’도 만만찮다는 소문이다. <시민과 변호사>에 김수영 시인에 관한 시평을 써 이름을 날렸고, 경제신문에 칼럼을 연재하기도 했다. 가수 뺨치는 노래 실력으로 판사 시절 ‘대표선수’로 활약했고, 춤 실력도 전문 춤꾼 못지 않다는 것.

법무법인 지평에서 함께 일했던 후배인 양영태 변호사는 “권위를 앞세우지 않는 소박하고 털털한 선배로 기억한다”며 “일은 일대로 빈틈없이 처리하면서 취미를 즐기는 매력 있는 장관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지칼’로 불리는 지은희 여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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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민원기 기자>

지 장관은 긴 안목을 갖고 운동을 풀어 가는 ‘전략가’로 이름 높다. 순발력이 뛰어나 변화에 빠르게 적응하고 기획력이 탁월해 운동 현장에서 쉴새없이 제안을 내놓는 것으로도 유명하다. 조영숙 여연 정책실장이 “여성부 직원들이 게으르면 앞으로 좀 어려울 것”이라고 경고(?)할 정도다. 비정규직 문제 등 노동현안에 해박하고, 정대협 대표 시절 일본 위안부 문제와 관련해 북한 사람들을 자주 만나온 덕으로 남북문제에도 관심이 크다.

지 장관의 별명은 ‘지칼’. 시간을 아끼려고 회의를 칼같이 정리하는 데서 온 것. 지 장관은 취임 기자회견에서 “여고 시절 별명은 애교부장”이라며 손사레를 쳤지만, 시민단체 대표들이 모이는 회의가 있을 때 사회는 늘 지 장관의 몫이었다. 회의석상에서 날카로운 모습만 기억하는 사람이라면 3·8 여성대회에서 무대에 올라 어깨춤을 추는 지 장관을 한 번도 보지 못한 것이다. 조영숙 실장은 “합리적이고 논리적인 한편 흥을 아는 사람”이라며 “일을 할 때, 사람을 만날 때, 삶을 즐길 때 모습이 다 달라 지 장관을 한 마디로 규정할 수 없다”고 말했다.

건강은 어떻게 유지할까. 넘치는 에너지의 비결을 지 장관은 “‘방하’라는 마음공부를 한다”고 밝혔다. ‘방하’란 모든 사물을 있는 그 자리에 두는 것으로 마음과 육체의 구조를 바로잡는 공부다.

“여성부 확대·강화 주력”

지 장관은 이이효재 선생을 정신적 스승으로 꼽는다. 여성학의 산파이자 여성운동계 대모인 이 고문은 지 장관이 밟아 온 길 앞에 늘 서 있었다. 이 고문은 “대학에서 학생회장을 지냈고 여성운동, 위안부운동, 시민운동을 하며 능력을 발휘하고 여성 지위 향상에 기여한 경력이 쌓여 장관이 된 것 같다”며 “여성운동을 한 세대로서 기쁘다”고 전했다. 여성운동을 계속 하겠다는 확답을 받고서야 지 장관은 지금 남편과 결혼해 딸 하나를 뒀다. 남편은 의료보험관리공단에서 일하며 운동하는 아내를 외조했고, 역사학도 출신인 딸은 현재 중국 유학 중이다. 지 장관은 여성운동 뿐만 아니라 90년대 한국 시민운동을 이끌어 온 지도자답게 취임하자마자 호주제 폐지, 성매매방지법 제정 등을 우선과제로 지목했다. 애초 여성부가 제시한 3단계 호주제 폐지 방안은 홍보에 중점을 둬 시일이 오래 걸리리란 지적을 받았다. 지 장관은 그러나 취임 기자회견에서 “호주제 폐지는 대통령 공약 사안으로 홍보 단계 등이 그리 오래 걸리지 않을 것”이라고 밝혔다. 호적제 대안으로 1인1적제를 들었지만, 현행 제도나 국민감정 등을 고려할 때 만만찮을 전망이다.

여성부 위상도 크게 달라질 것으로 보인다. 지 장관은 여성부 확대에 대해 즉답을 피했지만 “총괄조정기능을 강화해야 한다”, “지금은 여성부 업무가 아니지만 비정규직, 영육아 보육문제를 가장 먼저 해결해야 한다”며 여성부 권한 강화에 강한 의지를 보였다.

시민단체 활동가 출신답게 여성부 ‘현장성’을 높이겠다는 의지도 밝혔다. “정책을 집행할 때 왜곡되는 경우를 많이 봤다”며 “현장을 뛰어야 한다”고 여성부 직원들을 독려했다. 지 장관의 포부처럼 여성계의 환영 목소리도 크다. 한국여성단체연합은 성명서를 내어 “여성부의 역할 강화에 크게 기여할 것으로 기대된다”고 밝혔다. 여성정치세력민주연대도 “여성운동에 오랫동안 헌신하면서 여성의 권익신장, 성차별 및 가정폭력 타파, 호주제 폐지를 위한 법·제도 개선과 민주화에 이바지한 지 장관의 발탁을 환영한다”고 밝혔다. 과거 여성장관들이 단명한 사례를 의식한 지적도 있다. 조영숙 여성단체연합 정책실장은 “남성중심 권위주의, 특히 언론과 야당의 성차별적 여성장관 흔들기를 용납하지 않겠다”고 잘라 말했다.

현장 활동 다양한 실무형 김화중 보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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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보건복지부>

보건·의료 쪽의 다양한 경력과 활동에도 불구, 시민단체의 반대 등 상대적으로 후한 평을 듣지 못하고 있는 게 사실. 이익단체들의 입김이 워낙 거세 줏대를 지키기가 몹시 어려운 보건복지 업무의 특성 탓이 크다. 하지만 다른 여성 장관들의 ‘화려한’ 경력을 비추는 빛이 너무 밝아, 김 장관의 활동이 가려진 탓도 적지 않다.

김 장관은 ‘현장’ 출신이다. 60년대 말 대학병원 간호사를 시작으로 수간호사를 거쳐 간호학 교수가 됐고, 대한간호협회 회장까지 오른 입지전의 주인공이다. 간호 관련 기구와 단체를 숱하게 거쳤고, 특히 99년 농어촌보건의료발전총연합회를 만들어 농어촌 의료환경 개선에 앞장, 특히 여성 농민들한테서 지지를 많이 받았다.

김 장관을 잘 아는 농민 이재이(42·충북 제천시)씨는 “정부의 농어촌 보전지소 통폐합 방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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