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주의 문화운동의 두 산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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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혜경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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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혜란씨.

“여성문화예술기획은 남성중심적인 문화에서 여성 저변을 꾸준히 넓혀 왔고 극단 오름은 현장에서 일하는 여성들과 함께 해 왔죠. 여문과 오름이 역할을 나누어 충실히 일해 왔어요.”

극단 오름 이혜란 전 대표의 이야기에는 여성문화예술기획(이하 여문) 이혜경 대표와 그가 걸어온 삶이 있다. 우리나라 여성주의 문화운동의 양대 축인 이들이 ‘올해의 여성운동상’을 공동 수상한 사실이 당연하게 받아들여지는 이유다.

해마다 여성 권익이나 전체 여성운동 발전에 이바지한 개인이나 단체에 ‘올해의 여성운동상’을 준 여성단체연합은 3일 안국동 느티나무 카페에서 수상자 발표와 기자회견을 가졌다.

두 대표 모두 기쁨보다는 송구스런 마음을 감추지 못했다. “혼자만 (상을) 받아서는 안 되는데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함께 일한 사람들이 떠오르고요”라는 이혜경 대표와 “지역 여성단체들과 같이 하면서 열악한 상황 속에서 일하고 있는 지역 활동가들을 많이 봐 왔어요. (그들을 생각하면) 상을 받는 게 부담스럽게 느껴지죠”라는 이혜란 전 대표의 말에서 서로 기대고 이끌어주며 힘들게 한 발 한 발 내딛어 온 여성문화운동의 역사가 배어났다.

각각 여성민우회, 여성노동자회에서 문화운동을 담당했던 이들은 더 많은 여성들에게 ‘여성의 눈으로 문화 읽기’를 전하기 위해 여성문화예술기획을 만드는 일에 함께 참여했다. 이혜경 대표는 여문의 전문성을 길러 냉정한 대학로 문화 판에서 살아남았고 여문을 떠나 극단 오름을 만든 이혜란 대표는 단체와 현장 여성들 곁에서 운동을 펼쳐왔다.

<자기만의 방>,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라>에서 <버자이너 모놀로그>에 이르는 일련의 여성주의 연극과 여성미술제, 서울여성영화제 등 여문 이혜경 대표의 도전과 실험은 끝이 없어 보였다. “연극의 세계, 축제의 세계는 비록 현실은 아니지만 질서를 변화시키고 행복을 느끼게 해요. 그 체험이 새로운 세계를 만드는 힘이 되죠.” 여자로서의 정체성을 거부하며 나쁜 여자, ‘마녀’를 이야기하던 여문이 여성적 방식을 긍정으로 받아들이며 정체성을 ‘여신’으로 바꿔오기까지 이혜경 대표를 이끈 힘도 그 축제의 체험인지 모른다.

반면 이혜란 대표는 시린 3월의 거리에서 받은 힘으로 오름을 이끌어왔다. “3.8 세계여성의 날을 전후해, 3월이면 여성노동자대회가 열려요. 오름은 96년부터 함께 해 왔는데 꼭 꽃샘추위가 기승을 부려 거리에 서면 눈보라가 칠 때도 있었죠. 시린 느낌으로 열악한 현장 여성들을 만나 희망의 메시지를 전할 때 큰 보람을 느꼈어요.” 여성에 대한 탄압과 부당한 대우를 알려내기에 급급했던 시절, 선전선동에 가까웠던 공연은 이제 엄숙함을 탈피하고 소통의 중요성을 말하며 여성의 당당함을 코드로 즐겁게 다가선다. 내용 뿐 아니라 공연의 양식도 힙합, 테크노 댄스 등 대중과 더욱 가까워졌다.

사회의 변화에 따라 방식은 조금 달라졌지만 우리 사회 여성주의 문화를 심고 키워내는 일은 변함이 없다. 이혜경 대표는 오는 4월 열릴 제5회 서울여성영화제 준비로 바쁘다. “한국영화회고전에서는 처음으로 ‘도금봉’이란 캐릭터로 접근할 거예요. 딥 포커스에서는 페미니스트 아방가르드로 여성주의 영상에 대한 미학적 탐구가 있어요. 장르를 허물고 미술인과 영상인이 교류를 갖는 실험적인 도전이죠.”

이혜란 전 대표 역시 3·7 여성노동자대회 퍼포먼스와 3·8 여성대회 개막행사 공연 준비로 한참 바쁘게 보냈다. “여성노동자대회에서는 비정규직 차별을 주제로 설치미술 작가들과 함께 퍼포먼스와 노래공연을 가졌어요. 여성대회에서는 여성에 대한 차별·폭력에 대한 반대, 여성의 아름다움, 모성의 위대함 등을 아우르는 퍼포먼스를 진행했죠.”

여문에서 대표로 10년을 일했다며 그만 물러나고 싶다는 이혜경 대표지만 그의 최대 관심사는 여전히 후배들의 전문성을 기르는 일이다. “젊은 여성문화예술인들이 자유롭게 실험하고 창조할 수 있는” 최소한의 경제적 뒷받침과 함께 “관객이 대중교통으로 쉽게 다가설 수 있는 거리의 복합문화공간 조성이 절실하다”고 이 대표는 강조한다. 이혜란 전 대표는 “여성단체에서 필요로 하는 내용을 받아서 여론화하는 공연이 많았어요. 이제 우리들, 한국 여성들의 이야기를 가지고 한 번 해 볼 생각이에요.” 이 대표는 오는 9월 국립극장에서 공연할 여성의 성에 대한 유쾌한 시각을 담은 작품 ‘금지된 농담(가제)’의 연출과 기획을 맡을 예정이다. 여성주의 문화운동의 역사를 만들고 이어가는 데 여념이 없는 두 대표의 발걸음에 힘이 넘친다.

김선희 기자sonagi@women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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