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해자가 검찰 수사 의뢰하고
형 확정돼야
기간도 최소 1년 이상
‘성폭력처벌법’ 제14조
개선돼야 의견도

7일 서울 종로구 대학로에서 3차 불법촬영 편파수사 규탄시위 ‘불편한 용기’가 열려 참가자들이 피해자의 성별에 따른 차별 없는 동등한 수사와 처벌을 촉구하는 구호를 외치고 있다. ⓒ이정실 여성신문 사진기자
7일 서울 종로구 대학로에서 3차 불법촬영 편파수사 규탄시위 ‘불편한 용기’가 열려 참가자들이 피해자의 성별에 따른 차별 없는 동등한 수사와 처벌을 촉구하는 구호를 외치고 있다. ⓒ이정실 여성신문 사진기자

정부가 지난해 9월부터 디지털 성범죄의 불법촬영 영상 삭제 비용을 성폭력 행위자에게 청구하는 구상권을 행사하기로 했지만 아직까지 구상권을 청구한 건수는 단 한 건도 없는 것으로 나타났다.

영상물 삭제 비용 지원을 받은 피해자가 경찰 수사를 의뢰한 후 형이 확정되는 건수가 많지 않고, 기간도 최소 1년 이상으로 오래 걸려 구상권의 실효성에 대한 희의론도 대두되고 있다. 이와 유사한 제도인 범죄피해자보호기금의 구상금의 회수는 미비한 실정이라는 점을 감안할 때 디지털 성범죄에 대한 구상권 회수가 어려울 것이라는 의견도 제기된다.

디지털성범죄피해자지원센터는 지난해 4월 30일 개소 후부터 지난해 말까지 8개월 동안 총 2379명의 피해자가 피해사실을 접수해 총 3만3921건을 지원했다고 밝혔다. 이 가운데 삭제 지원은 2만8879건으로 집계됐다.

삭제 건수가 2만명이 넘었는데도 왜 아직까지 구상권이 행사된 건수는 한 건도 없을까.

이에 대해 장현경 여성가족부 권익지원과 서기관은 “구상권을 청구하기 위해서는 디지털성범죄에 대한 가해자가 특정돼야 하고, 형이 확정돼야 한다”며 “지원건수는 많지만 지원을 받은 피해자 중 경찰 수사를 의뢰하는 경우로 한정되고, 재판도 3심까지 거치다 보면 수년이 걸리기도 한다”고 답변했다.

장 서기관은 “지난해 비용 지원을 받은 경우 중에 구상권 행사 조건에 부합하는 건수가 나오면 올해 안에 구상권을 청구하겠다”고 밝혔다.

장 서기관은 구상권 회수에 대해 “구상권은 가해자가 저지른 범죄로 인해 형사상 피해 뿐 아니라 경제적인 손해도 발생할 수 있다는 것을 알려주는 차원도 있다”며 “범죄예방 효과를 가질 것”이라고 설명했다.

한국여성정책연구원의 박복순 연구위원 등 연구팀은  최근 ‘디지털 성범죄 행위자에 대한 구상권 행사 방안’ 보고서를 통해 구상권 청구에 한계가 있음을 지적했다.

연구팀은 유사한 사례인 범죄피해자보호기금의 구상금의 회수는 미비한 실정으로 구상권 행사와 집행을 전담할 담당기관의 전문성 강화와 함께 범죄가해자 재산에 대한 사전적 보전조치가 적시에 이뤄져야만 구상금의 회수가 적극적으로 이루어질 것으로 분석했다.

연구팀은 “현행법상 ‘성폭력처벌법’ 제14조에 구성요건 해석상 편입되지 않거나 입법공백으로 인해 무죄판결을 받는 경우, 디지털 성범죄 피해자임에도 불구하고 삭제 지원이 불가능하고, 또한 이에 대한 구상권 행사 역시 불가능하게 되는 문제가 발생한다”고 지적했다.

연구팀은 “촬영 주체가 본인이거나 사진이나 영상이 편집된 경우, 아동·청소년이 채팅 앱을 통해 유포의 피해자가 된 경우, 피해자가 성적 대상화됨으로써 성폭력 피해를 입었음에도 가해자를 현행법상 ‘성폭력처별법 제14조로 처벌할 수 없는 한계가 있다”고 덧붙였다.

연구팀은 이에 따라 “현행 ‘성폭력처벌법’ 제14조의 개정이 선행돼야만 삭제 지원을 받을 수 있는 피해자의 범위가 늘어나고, 성폭력 행위자에 대한 구상원 행사도 가능하기 때문에 이 조항의 개정이 시급하다”고 강조했다.

현재 국회에는 이 조항과 관련해 여러 개정안이 마련돼 있다.

연구팀은 ‘가정폭력방지법’의 치료보호비, ‘범죄피해자 보호법’의 범죄피해구조금, ‘양육비 이행확보 및 지원에 관한 법률’의 한시적 양육비 긴급지원금 등 기존의 구상권 제도에서 가해자에 대한 채권 확보가 현실적으로 어렵다는 문제가 동일하게 제기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연구팀은 또 구상권 규정이 실질적으로 작동할 수 있도록 불법촬영 영상물 삭제 지원에 소요되는 비용의 적절한 산정방안을 모색할 필요가 있다는 의견을 밝혔다.

저작권자 © 여성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