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동조의 어쨌든 경제]

오래도록 다양한 현장 경제를 경험해온 김동조 대표가, 우리 생활에 너무 중요한 그러나 어려운 경제를, 여성신문 독자를 위해 쉽게 정리해 드립니다. <편집자 주>

Q: 서점에 갔더니 경제 분야에서 금리 인상과 인플레이션을 다룬 책들이 많이 보이더라고요. 지난 번 칼럼에서 미국 연준이 금리 인상을 중단할 것이란 설명을 기억하고 있었기 때문에 조금 당황했습니다. 한국은 미국과 상황이 다른 건가요? 얼마 전 은행에서 대출을 알아봤더니 변동 금리 대출 금리가 고정 금리 대출 금리보다 더 높았습니다. 은행에서는 이런 경우는 드물다면서 고정 금리로 대출받을 것을 권하더군요. 도대체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 건가요?

1월말 외환보유액이 4055억1000만달러로 사상 최대를 기록한 가운데 8일 오후 서울 중구 KEB하나은행 위변조대응센터에서 직원이 달러를 정리하고 있다. ⓒ뉴시스·여성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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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한국은 대외 의존도가 높은 경제 구조를 갖고 있습니다. 미국의 경제 상황에 자국의 경제 상황이 연동되는 것은 한국만의 문제는 아니지만, 한국의 경우는 특히 그 정도가 심하다고 할 수 있죠. 한국의 통화정책도 예외는 아니어서 미국 연준이 금리 인상을 하면 한국의 한국은행도 금리를 올려야 하는 게 아닐까 생각하게 됩니다. 한국도 금리 인상의 시대가 왔다는 책이 세상에 쏟아진 것은 그런 관성적인 사고의 결과죠. 2008년 금융위기로 연준이 공격적으로 금리 인하를 했을 때는 전 세계가 따라서 대폭 금리를 내렸어요. 한국도 마찬가지였죠. 하지만 이번 금리 인상 사이클 때 금리를 인상한 나라는 많지 않습니다. 이유는 간단해요. 미국을 빼놓고는 어느 나라도 금리 인상을 할 만큼 경제 상황이 좋지 못했기 때문이었죠.

작년 11월의 한국은행 기준금리 인상에 대해 저는 냉소적이었습니다. 미국이 글로벌 경제 상황을 우려해서 추가적인 금리 인상을 하지 못할 것으로 생각하기도 했지만, 한국의 경제 상황이 금리 인상은 고사하고 금리 인하를 해야 할 상황으로 가는 건 아닐까 생각했기 때문이었어요. 11월에 1.75퍼센트로 기준 금리를 인상한 후 한국은행은 지금까지 두 번에 걸쳐서 경제 전망을 하향했습니다. 가장 최근에 발표된 경제전망에서는 2019년 GDP 성장률 전망치를 2.7퍼센트에서 2.6퍼센트로 하향했죠. 특히 흥미로운 것은 물가 전망을 1.7퍼센트에서 1.4퍼센트로 하향 조정했다는 점입니다. 경제도 나빠졌고 물가 압력도 낮아졌는데 기준 금리를 올려버린 겁니다.

경제가 좋아질 것으로 보지도 않고 물가 압력이 올라갈 것으로 보지도 않는데 금리를 인상한 이유는 정치인들이 금리 인상을 하라고 압력을 넣었기 때문입니다. 한국은행은 독립적인 조직이지만 정치인들이 대거 나서서 그런 식으로 압력을 넣기 시작하면 올바른 판단을 내리기 어려워요. 정치인들이 그런 행동을 할 때는 여론의 힘을 빙자하기 때문이죠. 특히 지금처럼 부동산 가격에 정치적 운명을 맡긴 사람이 많은 예민한 상황에서 정치인은 소수의 강한 의견을 다수의 여론인 양 오도해 그릇된 행동을 하기 쉽습니다. 그래서 많은 나라는 중앙은행의 의사결정에 최대한 독립성을 부여하려고 해요. 어쩌다 간혹 뛰어난 판단을 내리는 경우보다는 일관적으로 전문적이고 독립적인 의사결정을 하는 게 낫다고 보는 거죠.

물론 정치인이나 대중이 중앙은행보다 좋은 판단을 내리지 말라는 법은 없어요. 12월 연준의 금리 인상 직전 미국의 트럼프 대통령은 지금은 금리 인상을 하면 안 될 때라고 비판했는데 래리 서머스 같은 저명한 경제학자도 같은 의견이었죠. 결국, 연준도 12월 인상 후 정책 스탠스를 전환하면서 트럼프 대통령의 비판이 옳았음을 인정한 셈이 됐습니다. 하지만 11월 한국의 금리 인상을 요구한 정치의 결과는 그렇게 좋은 것 같지 않습니다. 우선 정치적 압력 때문에 한국은행이 금리를 올릴 것이라고 시사하는 과정에서 시장 금리는 오히려 크게 하락했습니다. 3년 국채 금리는 금리 인상 전 6개월 동안 약 0.5퍼센트가 하락했고 10년 국채 금리는 약 0.7퍼센트가 하락했습니다. 10년 국채 금리가 2퍼센트가 안 되는 한국에서 0.7퍼센트의 움직임은 대단히 큰 거죠. 게다가 금리 인상이 이루어진 후에도 금리는 계속 하락한 걸 보면 경제 상황을 고려하지 않고 정치적으로 내려진 통화정책은 시장에게도 무시를 받는다는 걸 알 수 있습니다.

‘연준이 금리를 인상하니까 한국은행도 금리를 인상할 것이다’ 혹은 ‘중앙은행이 금리를 인상하니까 시장 금리도 올라갈 것이다’라고 많은 사람이 생각할 수 있지만 세상은 그런 식으로 관성적으로 흘러가지 않습니다. (그러기 때문에 세상에는 금융 전문가라는 존재가 필요한지도 모르겠네요) 한국은행이 금리를 올리면 안 되는 상황에서 금리를 올려버렸기 때문에 시장 금리는 오히려 하락해버렸고 특히 장기 금리가 단기 금리보다 더 크게 하락해버렸습니다. 그 바람에 지금 한국의 30년 국채 금리는 20년 국채 금리보다 더 낮아졌고 10년 국채 금리와 거의 차이가 나지 않아요. 은행에서 고정 금리 대출 금리를 변동 금리 대출 금리보다 낮게 책정한 이유는 바로 이렇게 장기 금리가 하락하는 현상 때문입니다.

아마 대출하러 은행에 갔더라면 은행이 은근하게 변동금리 대출 대신 고정금리 대출을 유도하고 있는 것 같다고 느꼈을 거예요. 돈을 빌려서 마진을 더한 후 대출을 해주는 은행 입장에서 변동금리보다는 고정금리 대출이 훨씬 남는 장사입니다. 대출해야 하는 소비자 입장은 조금 복잡합니다. 앞으로 금리가 떨어질 것이라고 보면 변동 금리 대출이 낫고 앞으로 금리가 오를 것이라고 보면 고정 금리 대출이 낫습니다. 너무 어렵다고요? 그럼 이렇게 말씀드릴게요. 수익률 곡선(채권 가격)에 반영된 시장의 예상은 변동금리 대출이 더 낫다는 걸 암시하고 있습니다. 그걸 감안해 좋은 결정하세요.

김동조
투자회사 벨로서티인베스터 대표. 삼성증권 애널리스트로, 시티은행 트레이더로 일했다. <거의 모든 것의 경제학> <나는 나를 어떻게 할 것인가>를 썼다. <한겨레신문> <조선일보> <에스콰이어> 등에 다양한 칼럼을 연재했다. 경제 블로그인 kimdongjo.com을 운영 중이다. dongjoe@yaho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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