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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이 듦’에 대한 사람들의 관심이 커지고 있다. 빠르게 진행되는 고령화 현상과도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이 낯선 현실 앞에서 여성들은 어떻게 대처해야 할까? 나이 듦에도 ‘성공’이나 ‘행복’이라는 단어를 접목시킬 수는 없을까? 이 글들은 나이 듦에 대해 고통과 두려움을 느끼며, 심지어 혐오스럽게까지 여기는 많은 여성들에게 나이 든다는 것이 쇠락(衰落)만은 아니며, 밝고 긍정적인 또 하나의 성장 단계를 의미할 수도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자 한다. <편집자 주>

나에게는 오랜 동지들이 있다. 우리가 대학을 다녔던 70년대 초반과 중반을 같이 보냈던 친구와 선배, 그리고 후배들이다. 이른바 475세대. 당시에 우리는 70년대식 여성운동과 민주화를 위한 활동들, 그리고 연극 등을 하면서 많은 시간을 함께 보냈다. 그러나 70년대 후반부터 하나 둘 결혼을 하고, 각자의 일로 바빠지면서 우리는 어느 때부터인가 자주 만나지 않게 되었다. 숨가쁘게 돌아갔던 80년대와 90년대의 사회에서 각자 살아남으려고 안간힘을 썼던 우리에게 70년대의 동지와 70년대식의 만남은 이제 더 이상 의미가 없어 보였다.

그런데 20년만에 우리는 다시 만나기 시작했다. 그것도 70년대부터 자주 이용했던, 이제는 ‘pasta’로 이름을 바꾸었지만, 우리끼리는 아직도 옛날 식으로 ‘한마당’이라고 부르는 바로 그 레스토랑에서. 우리의 나이는 어느 새 40대 후반이고. 가장 나이 많은 선배는 올해로 쉰 살이 된다. 한 마디로 자타가 공인하는 ‘늙은 아줌마’들이 되었다. 우리는 지금 하고 있는 일들에 대해 이런 저런 얘기를 나누었지만, 일부는 “앞으로 뭐하지?”라는 70년대의 주요 레퍼터리를 여전히 반복했다.

그러나 70년대와는 분명 달랐다. 무엇보다 우리의 대화는 시공을 넘나들었다. 우리는 ‘역사’를 가지고 있었다. 누군가가 70년대에 우리가 가졌던 만남과 한 일에 대해서 기록을 남겨두어야 한다고 ‘학구적’으로 말하였다. 그런가 하면 연극을 하는 L선배는 어린 시절로 우리를 끌고 갔다. 사실 우리는 전쟁의 상처를 직접 받지는 않았지만, 초등학교에 다니던 시절은 전쟁이 끝나고 10년 밖에 지나지 않은 시기였다는 것을 생전 처음 깨닫고는 신기해했다. L선배는 당시의 초등학교 동창들 중에는 방공호나 심지어 폐차 안에서 살던 친구도 있었다는 것을 드라마틱하게 설명하였다. 그 말끝에 모두 서울내기인 우리들은 이제야 대학 시절에 지방에서 올라와 하숙하거나 자취하던 친구들이 ‘어린 나이에’ 얼마나 힘들었을까 하고 생각할 수 있게 되었다고 얘기했다. 우리는 너무 뭘 몰랐었다고. 그리고 얘기는 자연스럽게 요즘 사회 얘기, 특히 정치 얘기로 옮겨갔다. 사실 우리는 정치 얘기를 하고 싶지 않았고 큰 희망을 걸고 싶지도 않았다. 하지만 당장 우리의 생활과 일이 정치와 너무나 직접적으로 연관되어 있기 때문에 그 얘기를 하지 않을 수 없었다. 예를 들면, 우리 중 한 명은 청소년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학교사회사업을 제도적으로 정착시키기 위해 애쓰고 있는데, 이런 ‘비정치적’인 일에도 정치는 너무 많은 영향을 미치는 것이었다. 그 일이랑 연관이 있는 어떤 국회의원에 관해서 말하다가 그녀는 결론지었다.

“사실 가만히 생각해보면 그 사람도 우리 수준이에요. 우리보다 더 나을 것도 없죠. 기대하는 것이 잘못이에요.”

그 얘기를 시작으로 하여 우리의 화제는 전혀 예기치 않은 방향으로 흘러갔다. 한마디로 자화자찬의 성찬이었다. 이제 보니 우리 만한 사람도 많지 않더라. 그것도 모르고, 우리는 “나는 아니야. 그런 일은 더 능력 있고 특출한 누군가가 해야 할 거야”하고 생각해 왔다는 등등. 사실 우리는 여성운동에 일찍 관심을 가진 축에 속하지만, 개별적으로는 여전히 “나는 너무 부족해. 그렇게 하려면 공부도 더 해야 하고…”하며 자신 없어 했던 70년대식 모범생들이었다. 용감한 실천력을 가졌던 L선배는 조금 예외에 속했지만, 한때는 그녀가 너무 나선다는 느낌도 버릴 수가 없었다. 그러나 이제 보니, 아 우리는 완전히 속은 느낌이었다. 아니, 엄밀하게 말하면 속았다기보다는 우리가 미처 깨닫지 못했던 것이다. 바로 우리 자신들이 대단한 사람이라는 것을.

우리는 웃고 또 웃었다. 어쩌다 보니 우리가 스스로를 너무나 칭찬하고 있는 것이 낯설기도 했고, 또 한편 만족스럽기도 했다. 누군가 “이제 많이들 컸다”고 말했듯이, 우리는 우리가 컸다는 것을 처음으로 확인하였다. 나 자신 뿐 아니라 우리로서도. 만난 지 30년이 다 되어 비로소…

직업을 처음 갖기 시작하던 20대, 그리고 30대, 아니 40대 초반까지만 해도 우리는 왠지 남자들에 비해 손해보는 것 같은 느낌으로 살아왔다. 게다가 최근에는 ‘젊은’ 아줌마들의 야무진 생각과 당찬 행동을 보면서 ‘아줌마 사회’의 주도권마저 빼앗기는 기분이었다. 그런데, 인생에는 공짜가 없다고, 이제 드디어 우리는 자화자찬하면서 통쾌하게 웃을 수 있게 되었다니. 자신 있는 개인이 모인 집단. 앞으로 우리가 모이면 무슨 일이든 할 수 있을 것 같은 느낌. 정말 유쾌한 ‘늙은 아줌마들의 저녁식사’였다.

그렇다. 중년 후기가 되면 무언가 열심히 해온 여성들은 진정한 자신감을 갖게 된다. 사실 여성들 치고 열심히 일하지 않는 사람들이 있던가. 직업역할이든 가사노동이든 말이다. K선배의 동창 중에는 IMF로 살림이 어려워지자 피아노의 ‘피’자도 모르던 사람이 악보 보는 법만 열심히 익혀서 애들 피아노를 가르치며 돈을 버는 경우도 있고, 또 애들에게 과외를 시키기가 어렵다고 느낀 어떤 동창은 그 하기 싫어하던 수학 정석 1,2를 독파하여 직접 가르쳤다고.

집에 돌아오면서 나는 중년 후기 뿐 아니라 노년에도 남성보다는 여성이 훨씬 잘 적응할 수 있으리라는 생각이 들었다. 노년이 되면 더욱 중요해지는 것들, 가족, 친구, 그리고 자아를 통합하고 재조정하는 일은 모두 여성에게 더 익숙한 영역이기 때문이다. 반면 남성들이 상대적으로 더 중시해왔던 직업역할, 권력, 물질 등은 노년에는 어떤 식으로든 재조정해야 하는, 펙(Peck)의 표현대로 ‘분화’되어야 할 영역들이다. 물론, 이제 와서 남성들에게 이기고 싶다는 뜻이 아니라는 것쯤은 당신도 눈치챌 것이다. 사실 우리는 남성들도 이 사회의 희생자라는 것을 익히 알고 있으며, 어느 새 초라하게 늙어가는 그들도 포용할 태세가 되어 있으니까.

단지 우리는 할머니가 될 때까지 유쾌한 저녁식사를 나눌 것이다. 그리고 좀 더 살기 좋은 세상을 만들기 위해 ‘함께’ 일할 것이다.

한혜경/ 호남대학교 사회복지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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