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디오21 진행자로 방송 복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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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석천·이민정의 커밍아웃>의 진행자 홍석천씨.

<사진·라디오21>

홍석천(33). 실로 오랜만에 다시 들어보는 이름이다. 3년만이다. 그가 돌아왔다. 동성애자임을 선언하고, 기존 방송계를 떠나야 했던 그였다.

그런데 3년이 지난 지금, <커밍아웃>을 통해 방송에 복귀했다. 라디오21의 <홍석천·이민정의 커밍아웃>. 대한민국에서도 동성애자가 방송을 할 수 있는 곳이다. 기존 지상파 라디오 방송의 대안 언론을 표방하는 인터넷방송 라디오21이 지난 2월 21일 개국했다. 사회적 주류에 대안 비주류 방송. 그 중에서는 꽤나 높은 청취율을 기록하고 있고 그를 보러 부산에서 서울까지 비행기를 타고 온 팬이 있을 만큼 인기 있는 방송이다. 여기서 그는 ‘소수자의 권리’를 이야기한다.

“왔어요∼ 왔어요∼ 커밍아웃이 왔어요∼ 소수에 귀 기울이고 소수가 주인 되는 이 시대 유일한 무차별 존(ZONE)! 주류는 가라.” 3월 3일 월요일 오후 4시 5분에 시작한 <홍석천·이민정의 커밍아웃> 프로그램의 오프닝 멘트다. 그도 외치고 싶었던 것일까? 어느새 흥이 들어간 모습이다.

‘빠리홍’을 기억하세요?

‘빡빡’깍은 머리에 여성스런 말투와 애교, 그리고 동그란 안경.

예전의 ‘빠리홍’을 기억하는지? 몸무게가 3㎏ 빠진 것 말고는 실제 그의 모습에서 달라진 건 하나도 없다. 하지만 내면적 성숙에 대해서는 변화가 느껴진다.

“방송에서 ‘커밍아웃’을 해 방송계를 떠났는데, <커밍아웃>으로 다시 돌아오다니, 처음엔 그렇더라구요. 그래도 내 행동이 드디어 인정을 받는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다소 진지한 그의 모습을 만날 수 있었다. “저도‘사회적 약자’임을 절실히 느끼고 있구요. 전파를 통해 나와 같은 ‘소수’에게 감동을 줄 수 있다는 게 가장 보람 있어요.” 금새 환한 웃음을 머금었다. “얼마 전 새로 카페를 개업했어요. 그리고 하루에 두 시간씩 지금처럼 생방송 하죠. 또 밤에는 클럽 일을 나가야 하니까 너무 힘들어요.” 무척 야윈 모습이다. 하지만 이렇게 해도 “수입은 얼마 되지 않는다”고 한다.

라디오21은 ‘돈벌이’를 위한 일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럼, 왜 이 일을 시작했을까? “우선은 일이 필요했고, 내가 하면 편하게 할 수 있고, 나와 같은 입장의 사람들에게 도움이 되겠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홍석천은 연기자다. 출신이 그렇고, 목표도 그렇다. “새로운 세계를 발견했어요. 지금 저는 제 인생나무에서 곁가지로 잘려져 나온 부분에서 살고 있지만, 여기서도 꽃을 피울 것 같아요. 그렇지만 연예계에 복귀해서 다시 연기를 하고 싶어요. 저와 가족을 위해서요.” 그의 바람은 너무도 간절했다.

그에게 ‘커밍아웃’에 대한 후회는 없다. “저의 ‘성적 정체성’을 찾았고, 그걸 굳이 숨기고 싶지 않았어요. 결혼할 여자가 있었다고 해도 ‘저’를 숨기면서까지 살고 싶지 않아요. 서로가 불행하잖아요.” 스스로를 ‘게이’로 칭하는 홍석천은 자신의 행동에 당당하다.

호주에서는 4년마다 한번씩 세계적 규모의 페스티벌인 ‘게이게임’이 열린다. 그곳에는 세계 각지에서 수천 명의 ‘게이’가 모인다. 그들에게 ‘한국’은 낯설지만 ‘Mr.홍’은 유명하다.

들리지 않았던 소리 들을 수 있게

“저는 성적 취향이 다른 소수자일 뿐이에요. 그런 면에서 하리수도 저와 같은 사람으로 인정해요. 하지만 하리수와 저는 출발점이 달라요. ‘트랜스젠더 하리수’는 처음부터 하나의 상품가치를 가지고 연예계에 데뷔한 거고, 저는 잘 나갈 때 커밍아웃을 한 거니까.” 그럼에도 방송을 통해 마음껏 자기 끼를 뽐내는 연예인들을 보면 어쩔 수 없이 부럽다고 한다.

그가 얼마 전부터 시작한 카페는 위치부터가 묘하다. 뒤쪽으로는 ‘게이 바’가 운집해 있고 앞쪽으로는 ‘일반 레스토랑’이 자리잡고 있다. 그리고 내국인과 외국인이 자유롭게 얽혀 다니는 이태원에 있다. “그 동안 보이지 않던 세계를 접하고 있어요. 이도 저도 아닌 곳에서, 일반인과 차별 받는 소수자 사이에서 말이에요. 하지만 이런 세계도 있어요.”

라디오 진행을 통해 그가 하고 싶은 일은 바로 그 중간의 세계를 알리는 ‘매개’의 역할이다. “매개가 되고 싶어요. 라디오21을 비주류, 운동권 방송이라고만 생각하는 사람들과 재미있게 듣는 사람들 사이에서요. 그리고 저 같은 성적 소수자뿐만 아니라 장애인, 여성, 왼손잡이, 외국인 노동자를 대변하면서 일반 청취자와도 잘 어울릴 수 있는 그런 매개의 역할요.”

방송이 끝나고 기자가 물었다. “오늘 방송에 만족하냐”고. 그는 “너무 만족해요. 보이진 않지만 우리 주변에는 좋은 일 하시는 분들이 많잖아요. 감동 받았구요. 저도 힘이 나요”라고 말하며 환하게 웃는다. 지금 그가 가진 아름답고 당당한 웃음은 지난 3년의 시간이 그에게 준 선물이다.

감현주 기자soon@women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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