샐러리맨들, 100만원대 가방 60만원대 구두 선호

강남구 청담동에 위치한 어느 재즈카페. 울트라 블루 빛이 감도는 간판 네온사인과 잿빛 벽으로 디자인된 건물 앞에 서자 주차 도우미가 차를 안전하게 인도해준다. 시간은 금요일 밤 9시 30분. 예약 손님만 받는 이 카페 정문엔 정장차림의 매니저가 정중하게 자리를 안내했다. 실내는 줄리 런던의 ‘풀라이 미 투 더 문’의 경쾌한 리듬 속에 금요일 밤을 즐기는 손님들로 가득 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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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담동 지역의 많은 재즈카페 중에도 이곳은 뉴욕의 재즈바를 옮겨놓은 듯한 실내디자인과 젊은 보보스와 모모스들이 좋아하는 재즈 선곡으로 유명한 곳이다. 간혹 유명 연예인의 얼굴을 만날 수 있는 것도 손님들이 이곳을 찾는 이유 중의 하나가 됐다. 젊은 보보스와 모모스들의 아지트 같은 이 곳의 단골 손님들은 대부분 몇 가지의 명품을 입거나 소지하고 있었다.

명품 선호는 자기 표현?

직원들과 회식 후 뒤풀이로 이곳을 자주 찾는다는 J 광고기획사 사장인 정영균(가명 41세)씨는 눈에 띄지 않는 명품을 선호한다고 말했다. 패션 광고기획을 주 업무로 삼는 탓에 외국 출장이 잦은 그는 명품 구매를 할 때 국내 명품관을 이용하기보다 현지에서 직접 구매하는 편이었다. 가격이 싼 탓도 있지만 그가 원하는 최신 디자인을 바로 바로 구입할 수 있는 이점이 더 끌린다는 것.

그는 구찌 정장이나 프라다의 캐주얼 정장을 입고 페라가모 구두에 액세서리는 프라다 제품을 선호한다. 월드컵 이후 축구광이 됐다는 그는 히딩크 감독과 같은 태그 호이어 시계를 차고 있었다. 명품을 좋아하는 이유에 대해 묻자 그는 “특별한 이유는 없다. 명품은 단지 물건을 떠나 그것의 역사와 이미지 그리고 삶의 격까지 소유할 수 있다는데 매력이 있는 것 같다. 하지만 무엇보다 편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가 말하는 명품은 사치품목이 아니라 자신을 표현하는 또 하나의 문화라는 것이다.

갤러리아 명품관에서 근무하는 김혁주(가명 28세)씨는 “주 5일 근무제가 확산되고 독신자층이 늘면서 남성 소비자들의 소비가 는 것 같다”고 말하며 “특히 남성명품 신장률이 최근 3년간 20~30% 상승한 것으로 추정된다”고 밝혔다. 인터넷 쇼핑몰의 명품 판매율도 여성의 구매단가보다 남성의 구매단가가 두 배로 높아졌다는 발표가 있었다.

이처럼 자신을 치장하고 쇼핑을 즐기는 남성들의 소비 증가에 대한 구체적 사례를 보자. 지난해 11월 삼성카드가 자사의 인터넷 쇼핑몰 프라이스퀴즈(ww.pricequiz.com) 이용 고객을 분석한 결과에 따르면 지난해 8월 프라이스퀴즈를 이용한 25~35세 회원 3만6097명 중 71%에 달하는 2만5628명이 남성으로 나타났다. 주로 이용 상품은 가전제품이나 PC 및 주변기기, 레저용품 등 고가품 위주의 쇼핑인 것으로 분석됐다.

백화점, 할인점 등 오프라인 업체에서도 남성 고객의 비중은 점차 커진다. 할인점 롯데마트가 지난해 자사의 마일리지카드 회원의 성별을 조사한 결과에 따르면 지난해 1월 25.4%였던 남자회원 비중이 5월 27.6%, 10월 28.5%로 꾸준히 증가하는 추세다. 지난해 10월말 롯데백화점의 DM(직접 우편)을 받는 남성 우수고객은 212만명으로 전체 고객 가운데 37.9%를 차지하고 있다. 롯데측은 “30대 남성 명품족이 크게 늘고 있다”며 “조르지오 아르마니, 보스 등 수입 신사복과 페라가모, 발리 등 명품구두는 남성 고객들의 증가에 힘입어 최근 3년간 20~30%대의 연평균 신장률을 보이고 있다”고 말했다.

명품을 즐기는 세대도 낮춰졌다. 4,50대가 주류를 이루던 몇 년 전과는 다르게 10대와 20대 등의 명품 소비자가 늘고 있다는 것. 발리 매장의 매니저인 고경란(가명 28세)씨는 “30만원에서 60만원대의 구두가 젊은 세대에 가장 인기있는 품목”이라며 “20대 비즈니스맨 중에는 100만원이 넘는 가방을 사기 위해 명품계를 들어 구입하는 것을 보았다. 남성전용 신용카드가 등장한 후로는 한달 월급을 명품 구입에 할애하는 샐러리맨들도 많다”고 전했다.

이들 명품족들은 선물을 받을 때도 어느 브랜드의 어떤 상품을 원한다는 의사를 밝힌다고 한다. 몽블랑 매장의 직원 임정희(가명 25세)씨는 “2,30대 경우 여자친구나 아내에게 자신이 선호하는 브랜드의 제품을 선물해 달라고 요구하는 경우가 많아 여자 손님들이 남성용품을 자주 사러 온다”고 말한다.

명품 전문 잡지의 영향도 크다. Y 대 기계공학 대학원생인 K군은 남성전용 잡지 〈에스콰이어〉, 〈GQ〉나 〈노블레스〉 잡지를 통해 명품 정보를 얻는다고 한다.

1999년 말부터 서서히 불기 시작한 명품 바람은 아직도 거세다. 성공을 지향하면서도 자신만의 자유로움을 추구하는 이른바 ‘명품족’들. 그들은 무조건 벌고 아껴 쓰는 것이 미덕이던 기존의 세대와 달리 번만큼 즐길 줄 알고 자신을 꾸미기 위해 투자한다. 여성들 못지 않게 남성들도 개성추구에 대한 욕구가 강하고 소비중심의 성향을 갖는 것이다. 그러나 한 전문가는 “분수를 잊은 과소비, 타인의 시선을 의식한 과시 소비를 자제하는 문화가 시급히 정착돼야 한다”며 “하지만 남성들의 사치는 스스로 벌었으니 쓸 권리가 있으며 한층 높은 품격의 매니아로 은근히 부추기는 반면 여성들의 사치는 힘들게 벌어다준 돈으로 가정생활도 돌보지 않는 몰상식한 행동으로 내모는 사회의 이중적인 잣대를 놓쳐서는 안된다”고 지적했다.

가정살림은 뒷전, 빚으로 유지하는 품위라니…

명품이 또 하나의 문화로 인정받고 있는 현실이지만 그 부작용도 만만치 않다. 신용불량자 양산, 소득격차 확대, 상대적 박탈감 심화 등의 암울한 현상과 더불어 가정생활에도 큰 영향을 미치고 있는 것이다.

중견기업의 부장인 박인수(가명 45세)씨는 IMF를 거치며 8천만원이던 연봉이 절반 정도로 뚝 떨어졌다. 그러나 씀씀이는 지난 5년 동안 변하지 않았다. 집도 보증금 3천만원에 월 40만원짜리 월세 아파트로 옮기고 열여섯살 딸과 열네살 아들이 있어도 가정생활은 항상 뒷전이다. 가끔씩 부서원들에게 기분도 내야 하고, 스스로 보보스족이라며 명품 골프세트에 스포츠카까지 굴리다 보니 품위 유지비가 만만치 않다. 가정에 신경 쓰라는 부인의 말은 항상 귓전에 흘리고 부부싸움도 잦다. 가끔 부부싸움 중 심한 욕과 손찌검까지 해 부인은 이혼까지 생각하고 있다고 한다. 절제를 하자고 다짐해 보지만 오히려 카드 빚만 늘고 씀씀이가 줄지 않는다고 한다.

한국가정법률상담소(소장 곽배희)의 ‘2002년 상담통계’에 따르면 남편들의 사치촵낭비로 가정파탄이 초래된 경우가 크게 증가했고, 카드로 고가의 자동차나 골프용품 등을 구입하거나 유흥비 등으로 수천만원을 탕진한 경우도 있는 것으로 밝혀졌다.

한국가정법률상담소 강정일 상담위원은 “남편들의 사치와 낭비로 이혼한 사례만 특별히 통계치를 낸 것은 없다. 하지만 면접 상담이 한달 평균 7~800건이고 그중 250건 정도가 부부들의 경제갈등에 관한 것이다”며 “경제갈등은 사치, 낭비, 카드, 빚 등 남성들의 경제문제로 발생한 것을 말하며 원인 제공자로 남편이 70% 정도 차지한다”고 설명했다.

특히, 신용카드 대금이나 대출금의 연체, 사채독촉 등 빚으로 인한 상담도 2000년 3.5%에서 2001년 6.1%, 2002년 6.4%로 계속 증가했다고 말했다. 그 이유에 대해서는 사치비용 자체보다는 그것을 갚기 위해 여기저기서 끌어다 쓴 카드비용이 눈덩이처럼 불어 감당하지 못한 것으로 분석했다.

강 위원은 “남편들의 경제적 무능력과 경제갈등으로 인한 부부문제는 단순히 경제적 차원을 넘는다”며 “이는 부부싸움으로 이어지고 부부싸움에서 가정폭력으로, 나중에는 가정파탄으로 이어지는 주요 원인이 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또한 “현행 부부재산제와 관련된 부부의 경제적 불평등을 해소하고, 무절제한 카드사용 등 경제적 신용 파탄 문제에 대한 사회적 대응이 요구되는 부분이다”는 말을 덧붙였다.

현행 부부재산제는 부부재산계약과 법정재산제 두 가지가 있다. 부부재산계약은 요건이 까다로워 사실상 이뤄지지 않고 있다. 실제 법정재산제가 적용되는데 이는 완전한 부부별산제다. 즉 자신의 재산과 혼인생활 중 자기 이름으로 취득한 재산을 각자의 특유재산으로 인정해(830조 1항), 각각 재산을 관리·사용·수익할 수 있도록 규정하고 있다(831조). 그러나 채무에 대해서는 부부가 연대책임을 진다.

특히 전업주부의 경우 부인이 돈을 관리하기는 해도 실제 경제권은 남편이 쥐고 있고, 남편의 카드사용을 부인이 통제하기 힘든 사항이다. 그러다 보니 남편이 ‘사업상’ 혹은 ‘품위 유지상’ 돈을 쓰다가 빚을 지고 도망가면 실제 빚독촉을 받거나 이후 해결은 집에 남아있는 부인과 아이들이 도맡는 결과가 발생한다. 강 위원은 “상담하러 오는 여성들의 대부분은 빚 독촉에 시달려 친정이나 친구들에게 빌리다 보니 더 큰 경제적 부담으로 다가온다”며 “부부 사이의 경제갈등이 현행 부부재산제와 연결되는 것이 이런 이유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동김성혜 기자dong@womennews.co.kr

윤혜숙 객원기자heasoo21@yahoo.co.kr

●보보스(Bobos) 부르주아(bourgeois)의 물질적 실리와 보헤미안(bohemian)의 정신적 풍요를 동시에 누리는 상류층을 지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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